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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네씨 Sep 08. 2023

용서를 향한 추락의 여정

영화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나타샤 메르쿨로바, 알렉세이 추포프 부부의 영화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가 8월 23일 정식 개봉했다. <모두를 놀라게 한 남자>에 이어 공동연출한 세 번째 작품으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 초청과 수상을 기록했다.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분 화제작이기도 했는데, 수상의 쾌거가 없어 아쉬움을 자아낸다. 당시 오드리 디완의 <레벤느망>이 황금사자상을, <화이트 빌딩>의 삐썻촌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상을 받는 것이 영화의 작품성을 전부 증명하는 것은 아닌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가진 힘을 믿고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데에 집중하려 한다.


영화에 대한 감상을 짧게 적어보자면, 이 영화의 훌륭함과 별개로 심정적으로 괴로웠다. 마치 무거운 추에 짓눌려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공포의 시대에 볼코노고프 대위를 바라보며 아이러니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영화의 형식과 역사의 형식이 교집합을 이루는데,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도덕적 혹은 인간적으로 어느 관점에 서야 할지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요동치는 감정을 부여잡고 영화를 관람한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이제 영화 깊숙이 들어가 보도록 하겠다.


※ 이 글은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줄거리는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러시아 비밀경찰 조직 NKVD(엔카베데, 내부인민위원부)의 표도르 볼코노고프 대위(유리 보리소프)는 소련 형법 제58조에 의한 반역 세력을 색출해 처형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출근하던 길에 직속상관인 그보즈데프 소령(알렉산드르 야첸코)의 투신을 목격한다. 이로 인해 부하 직원들에게 심문이 행해지고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한 후 탈출을 감행한다. 그러나 그는 곧 자신의 예전 동료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밀문서를 들고 피해자 유가족들을 방문해 용서를 구하러 다닌다. 과연 가해자인 그가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


영화는 2차 세계대전 직전 스탈린의 '대숙청 시기'라 일컬어지는 1938년을 배경으로 한다. "무고한 시민 열 명이 처형돼도 한 명의 스파이를 놓쳐서는 안 된다"라는 표어 아래 NKVD는 1년 사이 무려 최대 120만 명을 처형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더라도 영화를 봄으로써 NKVD가 얼마나 잔혹한 조직인지를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새로 부임한 골로브냐 소령(티모시 트리분체프)에게 지카레프 대령(블라디미르 에피판체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발 나를 실망시키지 마. 너무 많이 죽여서 일 시킬 사람도 없어." 이 말을 통해 당시의 인민들뿐 아니라 NKVD 조직원들도 숙청 대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는 서사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추격 스릴물이다. 시종일관 추적-도피의 형태는 외형적으로는 장르 영화처럼 보이게 하지만, 그런 외피를 벗어던지면 볼코노고프가 도시를 돌아다니며 용서를 구하는 일종의 종교적인 순환극으로 비치기도 한다. 용서를 구하는 이야기는 기독교적 서사와도 일치한다. '단 한 사람만 날 용서하면 천국에 갈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볼코노고프의 모습은 마치 성서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와 음각의 형태로 닮아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는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용서를 구하러 다닌다는 것이다.


영화는 역사의 형식을 빌린 도피와 용서의 혼합극과도 같다. 작품 초반에는 체포도 기소도 되지 않은 채 조직원들에게 쫓기는 볼코노고프의 탈출을 따라가며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빠른 전개가 돋보이는 한편, 섬세한 심리 묘사도 놓치지 않는다. 피해자 유가족들은 하나의 방식으로 각자의 삶이 부서졌다. 볼코노고프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마주하기 고통스러워하는데, 이러한 복잡한 감정은 관객에게도 전이된다. 이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행위를 바라만 보면 비극적으로 보이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희극적인 요소도 존재한다. 세 번째 방문한 가정인 학생비밀테러조직에 가담한 아들 알렉세이의 아버지에게 전화로 얻어맞고 쓰러진 다음 또 한 대 또 맞는가 하면 전화기 줄에 꼬인 볼코노고프의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영화의 중반쯤 되면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는 과연 비극인지 희극인지 의문이 든다. 앞선 상황과 달리 만약 볼코노고프가 NKVD 조직원들에게 잡혀서 심문당할 것을 상상하면 마냥 웃을 수 없을 것이다. 상황이 웃기다고 해서 행위가 웃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희극과 비극의 간극을 매듭짓는 것은 바로 부조리한 상황이다. 그 시대에 행해진 그 부조리함이 어떤 장면을 희극으로, 어떤 장면을 비극으로 보이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로서 영화는 정치적 고발극이자 무자비한 역사극이자 리얼리즘 드라마로 승화된다.



비언어적 선행과 용서



영화는 사흘동안 벌어지는 단순한 이야기로 구조화되어 있다. 다섯 번의 용서를 구하는 시퀀스를 중심으로 영화는 선행 방향으로 진행되나 플롯은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용서를 구하러 다닐 때마다 NKVD에서의 심문하는 장면으로 플래시백(flash-back) 하는데, 이는 볼코노고프가 끝없는 죄의식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이다.


영화의 긴장은 볼코노고프의 기대와 현실에서 마주하는 유가족의 상황 사이에서 팽팽해진다. 나쁜 것과 훨씬 나쁜 것, 상상과 현실 사이에서 긴장은 극대화된다. 그런 긴장의 매듭을 중재하는 건 볼코노고프의 꿈이자 환상이다. 숙청당한 베레텐니코프(니키타 쿠쿠시킨)가 무덤 속에서 튀어나오는 장면이라든가. 다시 등장한 베레텐니코프가 천국을 가게 된 볼코노고프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장면이라든가. 현실과 환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정도로 영화는 볼코노고프를 밀어붙인다. 이러한 주관적 세계는 볼코노고프에게 베레텐니코프를 대신해 천국에 가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아니었을지라도, 영적 구원의 동기부여가 되었을 것이다.


이전에는 기밀문서에 있는 사람들을 만난 것과 달리, NKVD의 통제로 볼코노고프는 자신의 명단에도 없는 한 사람을 만난다. 그 노파는 딸이 체포되고 주위 사람들에게 외면당한 채 다락방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볼코노고프는 노파를 업고 씻긴다. 이때 노파는 남은 힘으로 볼코노고프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의 품에서 목숨을 다한다. 그리고 자신을 추적해 온 골로브냐 소령에게 알 수 없는 웃음과 함께 추락한다. 영화는 왜 볼코노고프가 탈출했는지, 왜 용서를 통해 구원을 받고 싶은지 직접적으로 설파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언어적인 행위를 통해 탈출의 계기와 용서의 과정을 보여준다. 탈출은 말보다 몸이 먼저 튀어나오는 본능의 영역에 가깝고, 용서는 이해의 영역보다 한 수 위에 있는 관용적 태도인 것이다.



무한의 굴레처럼 반복되는 역사


나타샤 메르쿨로바, 알렉세이 추포프 부부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역사적 드라마가 아니라 역사적 맥락을 차용한 환성적인 우화'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스탈린 시대의 압제를 고발하지만 NKVD가 입은 군복 대신 새빨간 유니폼을 착용하는 등 조금 헐거운 고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고증이 다소 느슨할지라도 스탈린의 시대를 푸틴의 시대로 연결지을 수 있고, 과거 소련 NKVD가 지금 러시아 KGB의 뿌리를 두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렇듯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는 지금 살고 있는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영화이며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영화의 중요한 지점은 역사적 재현이 아닌 우화적 재현이다. 그리고 1938년과 2023년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를 찍은 러시아인 부부 감독들은 작품을 공개한 이후 러시아를 떠나 망명했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 활발하게 내한 오는 감독들과 달리 수입·배급사인 슈아픽처스가 대신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또한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장철수 감독이 영화 수입을 강력하게 권유하고 투자까지 하여 수입배급이 이뤄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현재 영화는 10여 개국에 상영했는데 무척 아쉬운 숫자이다.




이러한 현실적 상황에 맞닿아 있는 영화 세 편 정도를 소개하려 한다. 첫 번째, 두 번째 영화는 현실의 상황과 동일하기 때문에 나온 작품이라 설명할 수 있다면, 세 번째 영화는 해당 작품을 제작한 것 때문에 정부를 피해 감독과 배우들이 목숨을 걸고 자신들의 나라를 떠났다. 비밀조직의 일원이 탈출해 숨 막히는 추적전을 벌이는 <본 얼티메이텀>, 완벽하다고 믿었던 체제 안에서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마이너리티 리포트>, 그리고 종교라는 이름의 탄압으로 발생한 히잡 시위 등 이란 현실과 밀접히 결부된 <성스러운 거미>를 추천하며 글을 마친다.


끝으로 영화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에 대한 별점과 한줄평을 남기려 한다.



★★★★

탈출하지 못할 지옥, 용서받고 떠날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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