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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네씨 Sep 04. 2023

세탁기 하나 샀을 뿐인데 일상의 공포가 배송됐다

영화 <타겟>

중고나라, 번개장터, 당근마켓 등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한 물품거래가 일상이 된 시대다. 이를 악용한 사기 행위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접수된 중고거래 사기 피해는 8만 3,213건, 하루 평균 228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9년간 중고거래 사기 신고는 무려 81.4%나 증가했다. 중고거래 사기 피해는 계속되고 있지만, 피해 구제는 제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고거래는 현행법상 전기통신금융사기에 해당되지 않아 피해사건을 접수하는 절차부터 피해액을 돌려받는 절차까지 어려움을 겪곤 한다. 그러나 중고거래 피해 대책을 위한 논의가 더디기만 한 실정이다.


지난 2020년, 6년간 5,000여 명의 피해자들에게 무려 50억 원 규모의 중고거래 사기를 친 일당이 검거됐다. 일명 '그놈'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범죄 수법은 악랄하기 짝이 없었다. 필리핀 마닐라에 거점을 두고 서류·사진 등을 조작해 고가의 물건을 허위 판매했다. 자신들을 경찰에 신고를 했거나 추적한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알아내 집 주소로 수십만 원어치의 치킨, 피자, 중국음식을 주문하는 '배달 테러'는 물론, 신변 위협도 서슴지 않았다.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일당의 보복 과정 탓에 일부 피해자들은 자살 시도를 할 정도였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1199회 (2020.01.18 방송) 등에서 보도되며 이 범죄는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이러한 배경을 설명하는 이유는 <타겟>은 박희곤 감독이 TV고발프로그램에서 접한 중고거래 범죄 실화를 모티브로 삼아 영화를 제작했기 때문이다. <타겟>은 중고거래로 범죄의 표적이 된 한 여성의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서스펜스를 담아낸 스릴러다. 스릴러 혹은 공포 영화에서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것은 클리셰처럼 작용할 수 있지만, 이 영화는 주인공을 여성으로 택한 데에 명백한 근거가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박 감독은 21일 언론시사 후 간담회에서 "피해자 중 가장 적극적으로 저항한 실존 인물이 여성이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가장 용감하게 나선 게 시사점이 크다고 생각해 주인공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실재하지 않지만 실제와 닮은 주인공은 과연 어떻게 중고거래 사기꾼과 맞서 싸울지가 궁금증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 이 글은 <타겟>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 수현(신혜선). 이사하자마자 망가진 세탁기를 대신할 중고 세탁기를 구하기 위해 중고거래 사이트를 이용한다. 중고 세탁기를 구매하고 작동하는데, 알고 보니 고장 나 있는 세탁기. 중고거래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 수현은 판매자의 게시물들에 '이 사람 사기꾼이에요. 속지 마세요' 같은 댓글을 단다. 이를 확인한 판매자는 메신저를 통해 수현에게 그만두라고 협박하지만 수현은 이에 굴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쏟아낸다.


범인으로 의심되는 판매자와 실랑이를 벌인 후, 수현은 조금씩 판매자의 보복에 휘말리게 된다. 판매자는 수현의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는 SNS까지 털어버린 것이다. 수현에게 '무료 나눔' 물건을 받으러 가겠다는 전화가 수십 통씩 오고, 주문한 적 없는 음식이 계속해서 오는 '배달 테러'를 당한다. 게다가 한밤중 '초대남'이라고 일컬어지는 낯선 남자들이 수현의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기까지 한다. 협박의 순위를 단계적으로 높여가며 수현을 괴롭힌다. 수현은 수사가 더딘 경찰을 이끌고 범인을 검거하기에 애쓰지만, 확실한 단서를 잡아내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수사 과정 중에서 같은 범인의 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나는데…



한 꺼풀씩 벗겨내는 제도적 허점


영화 <타겟>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야기며, 대중적인 이야기며, 현재적인 이야기다. 박 감독은 시대적 분위기와 흐름을 읽고 이 영화를 제작했다. 작중 초반에 밀려 있는 중고거래 사기 피해 사건이 많다며 수현을 돌려보내는 주 형사(김성균)의 모습은 현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 형사를 통해 우리는 제도적인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간략히 서술하자면 아래의 단락과 같다.


현행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약칭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스미싱 등 전기통신금융사기의 경우 '사기이용계좌 지급정지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자들은 범죄 피해사실을 소명할 필요가 없다. 반면에 통신사기피해환급법상 중고거래 사기는 전기통신금융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중고거래 사기의 경우, 신고접수 즉시 계좌지급정지가 가능한 피싱사기와 대조적으로 계좌정지까지 통상적으로 7~10일이 소요된다. 경찰이 사건을 접수해 금융계좌 압수수색 영장을 받고, 은행에 계좌 지급을 신청하는 등의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적 토대 위에 박 감독은 영화의 플롯과 구조를 세웠다. 이를 통해 영화가 대중적인 예술이라는 사실도 함께 일깨운다. 사회적 공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현실이었으나 다소 아쉬운 건 영화의 중반부에서 후반부 사이다. 단호하기 짝이 없었던 주 형사가 어떤 동기로 수현을 적극적으로 돕게 되었는지 설명되지 않았다. 주 형사와 나 형사(강태오) 모두 범인에게 공포탄 한 번 쏘지 못하는 경찰로 그려지고 있는 점도 의문이 든다.



켜켜이 쌓여가는 공포감인가


<타겟>은 중고거래 사기로 시작해 범인과의 육탄전으로 전개된다. 주제의식은 좋았으나 후반부에 이르러 소위 범인의 '피지컬'이 너무 비대해서 묻히는 기분을 받았다. 그래서 중고거래에 대한 공포감은 범인이 얼굴을 드러나기 전까지 살아있다가 범인의 정체가 공개되고 경찰과 전면전을 할 때 순식간에 사라지는 인상을 받았다. 영화를 끝까지 본 관객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심에서 카레이싱을 하다가 사망에 이르는 경찰, 범인을 껴안고 고층에서 맨몸을 날리는 경찰, 철저한 준비 없이 맨몸으로 범인과 싸우는 경찰. 언뜻 보면 경찰을 비난하는 것 같지만 말도 안 되는 전투력을 가진 범인에 대해 꼬집고 싶은 것이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경찰을 무능력하게 묘사하는 게 아닌 이상, 범인의 비현실적인 피지컬에 대해 좀 더 현실적으로 그려낼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신혜선이라는 연기자의 저력


'현실 공포'라는 소재에 비해 캐릭터 묘사가 다소 현실적이지 못하다. 범인의 피지컬, 경찰에 대한 행위적 묘사 등이 대표적이다. 출연작마다 존재감을 발산하는 배우 김성균의 연기력 문제가 아니다. 극을 위해 단편적으로 소비되는 게 아쉬운 것이다. 이는 직장 동료인 오달자를 맡은 이주영도 마찬가지다. 후반부에 들어서서 중고거래 사이트 계정 하나 빌려주는 게 전부인 점에서 캐릭터의 단순 소모라고 느꼈다. 이처럼 주연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음에도 조연에 머물게 하는 캐릭터 활용 방식이 안타까움을 안겨준다.


캐릭터로 인해 구조와 플롯이 엉성해질 뻔했으나 또 그걸 살리는 캐릭터가 있다. 정확하게는 주인공 수현이 이 영화에 심폐소생을 한다. 조금 과장된 캐릭터와의 대결에도 섬세한 연기력을 자랑하는 신혜선이라는 배우 때문에 러닝타임이 끝나기 전까지 자리를 뜨지 않을 수 있었다. 관객에게 다가오는 현실감과 공포감을 놓치지 않게 하는 것은 배우 신혜선의 연기다. 첫 번째 스릴러 영화 주인공으로 도전했다고 하는데, 점점 자신을 옥죄어오는 범인으로 인해 공포를 느끼는 내면 연기는 관객으로 하여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강하게 몰아치는 전개와 배우의 연기력을 통한 감정 이입이 맞물리는 영화다.




도시괴담은 현대인에게 일상의 공포를 선사하기에 탁월함을 지닌 장르다. 있음 직한 이야기는 허구의 대상보다 더욱 무섭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단골 소재로 많이 쓰여왔다. 영화 <타겟>이 담고 있는 주거침입, 사이버 범죄, 개인정보 문제 등을 다른 관점에서 풀어낸 영화 네 편 정도를 추천하려 한다. 낯선 사람이 자신의 집에 숨어 살고 있다는 실화 바탕의 영화 <숨바꼭질>, 혼자 사는 여성이 남성 범죄자로부터 지속적으로 위협을 받는 <도어락>, 전자기기를 활용해 사이버 범죄를 파헤치고 실종된 딸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서치>,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범죄를 다룬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를 관람해 보는 것도 어떨까.


끝으로 영화 <타겟>에 대한 별점과 한줄평을 남기려 한다.



★★☆

현실이란 두 번째 손을 빌린 일상의 공포.




참고자료

김원태, "지난해 중고거래사기 하루 평균 228건 발생", 「대한뉴스」, 2023.03.14.

조재완, "중고거래 사기 피해 '기승'…지난해 하루 평균 228건 발생", 「뉴스핌」, 20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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