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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네씨 Sep 02. 2023

침범하는 인간, 경계선의 이웃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영화 <카모메 식당>, <안경>, <그들이 진심으로 엮일 때> 등 사소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그려내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신작 <강변의 무코리타>가 8월 23일 개봉했다. <강변의 무코리타>는 연립주택 주민들의 일상이 담긴 영화로, 작은 마을의 공장에 취직한 한 청년이 무코리타 하이츠에서 지내며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 이웃들과 함께 서로의 상처를 다독여간다.


들어가기에 앞서 이 영화의 외적인 쾌거를 짚어보자면,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 사영과 아시아영화의 창 - 지석상 후보에 올랐다. 또한 제41회 벤쿠버국제영화제, 제12회 북경국제영화제, 제46회 홍콩국제영화제, 제34회 도쿄국제영화제, 제10회 무주산골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 노미네이트 된 바 있다. 작품의 어떤 요소들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하는지 살펴보고, 함께 보면 좋을 영화 몇 편을 추천하려 한다.


※ 이 글은 <강변의 무코리타>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삶을 위해 작은 어촌 마을로 이사 온 야마다(마츠야마 케이치). 연고도 없는 마을에 자리한 수산물 가공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오징어 젓갈을 손질하는 일을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지만 근처에 묵을 만한 곳을 찾던 끝에 사와다 공업 사장에게 무코리타 하이츠를 소개받는데. 그렇게 야마다는 무코리타 하이츠의 새 주민이 된다. 작고 단출한 방이지만 자신만의 공간이 생긴 야마다는 조금 안정감을 느낀다.


혼자 조용히 지내고 싶었지만 그에게 불청객이 찾아온다. 옆집 이웃 시다(무로 츠요시)는 야마다에게 이사 왔냐며 인사를 건네곤 자신의 집 온수기가 고장이 나 며칠간 씻지 못했다며 대뜸 욕실을 빌리겠다고 말한다. 당황스러운 야마다는 거절하고 문을 닫아버리지만 시마다는 끈질기게 야마다의 방 근처를 맴돈다. 시마다는 자신을 미니멀리스트라고 지칭하며 자신의 텃밭에서 가꾼 채소를 건네주는 대신 야마다의 욕실에서 목욕을 한다거나 반찬을 같이 먹는 엉뚱한 모습을 보인다. 시마다(무로 츠요시) 때문에 골머리를 앓지만 넉살 좋은 시마다의 성격 때문에 야마다는 점점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어느새 둘은 다다미 바닥에 누워 있다.


한편, 무코리타 연립주택의 주인 미나미(미츠시마 히카리)는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월세를 제때 내는 주민에게는 귀여운 상을 준다. 어딘가 종잡을 수 없는 그에게도 어떤 사연이 있어 보인다. 아들과 함께 묘석을 방문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는 미조구치(요시오카 히데타카). 벌이가 시원찮지만 값비싼 맛있는 음식을 먹는 상상을 하곤 한다. 주인공 야마다는 시마다를 포함한 무코리타 하이츠 주민들과 새로운 유대 관계를 만들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야마다는 인연을 끊고 살았던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접하게 되고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에 혼란을 느끼게 되는데…



침범의 경계선



<강변의 무코리타>는 경계선을 침범하는 영화다. 침범이라는 단어에는 두려움이라는 인간의 감정이 내재되어 있다. 나의 영토를 나의 허락 없이 넘나 든다는 것에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순리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영화의 전개는 '침범'으로부터 시작되고 인물 간의 유대를 형성한다. 무코리타 하이츠에 이사 온 야마다의 경계를 넘은 시마다, 말수가 적은 야마다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거는 미나미, 스키야키를 먹으려고 식탁 앞에 나란히 앉은 미조구치 부자 옆에 착석하는 야마다와 시마다의 모습은 인간미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처럼 인간관계는 타인의 구역에 침범함으로써 형성되고, 침범의 경계선을 허무는 것은 '인간미'다.


영화는 한발 더 밀고 나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해 다룬다. 이는 모든 인간이 통과해야 할 가장 힘든 경계일 것이다. 사회복지과로부터 아버지의 고독사 소식을 전해 들은 야마다는 유골을 회수해 오면서 여러 생각에 잠긴다. 시마다와 식사를 하던 도중 시마다가 "야마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라고 묻자 야마다는 "변변찮은 인생이었을 게 뻔하죠."라고 답한다. 이는 야마다의 자기고백적 답변이기도 하다. 나와 상관없다는 생각하는 아버지의 죽음이 와닿지 않아서 그리 말한 것일 수도 있지만 아버지의 삶이 자신과 닮았을 것이라는 추측, 자신도 언젠가 저렇게 죽을 수 있겠다는 유전적 공포도 기저에 깔려 있었을 것이다. 전과자라는 과거의 족쇄 때문에 그는 자신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행복을 누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골함을 가져오고 어느 날 밤, 지진이 일어나 유골함이 깨져버린다. 야마다는 임시방편으로 아버지의 유골을 사와다 공업 사장에게 받은 젓갈통에 아버지의 유골을 보관하게 된다. 여기서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돌아볼 수 있다. 유골은 죽은 사람의 뼈이고 젓갈은 죽었지만 냉장고에 넣어두는 음식이다. 밤마다 아버지의 유골함에서 빛이 난다며 공포에 떨던 야마다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관되는 젓갈이 담긴 통에 유골을 옮겨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버지의 고독사를 그저 나와 상관없는 죽음이라고 여겼다가 마침내 나의 삶의 경계로 넘어온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한다.



무코리타, 애도하는 시공간



영화가 시작과 끝에서 궁금해졌다. 왜 '무코리타'를 사용했을까. 무코리타(모호율다, 牟呼栗多)는 일본어로 음차된 불교의 시간 단위인데 약 48분 정도다. 자막 화면에는 '세츠나'도 등장하는데, 세츠나(찰나, 刹那)에 해당하는 1.6초보단 긴 시간이다. 인물들의 입을 통해 무코리타에 관한 대사는 두 번 등장한다. 첫째는 미나미가 집을 나간 줄 알았던 야마다가 돌아왔을 때 화단에 물을 뿌리면서 "세츠나, 타세츠나, 로바쿠, 무코리타"라고 읊조린다. 둘째는 미조구치가 장례식을 준비하던 야마다에게 검은 정장을 빌려줄 때다. 야마다는 미나미도 그런 말을 했다며 그게 무슨 뜻인지 묻는다.


이내 미조구치는 "돌아가신 오카모토 씨가 이 말을 자주 중얼거렸어요. 무코리타. 나도 잘은 모르지만 아마 오늘 같은 하늘의 빛깔이 사라지는 그런 시간의 흐름이 아닐까요."라고 답한다. 실제로 무코리타는 낮에서 밤으로 바뀌는 경계선 혹은 노을빛으로 하늘이 물들어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영화는 마치 석양으로 붉게 물들어가는 이 시간을 죽음을 애도하는 찰나의 연속을 빗대어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찰나, 달, 납박, 모호율다"를 일본어로 음차한 "세츠나, 타세츠나, 로바쿠, 무코리타"라는 불교의 시간 단위를 주문을 외우듯이 입으로 내뱉는다는 건 죽은 자를 떠올림과 동시에 살아있는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무엇보다 이들이 사는 연립주택의 이름이 '무코리타'다. 죽음은 삶과 마찬가지로 이들이 마주하는 현주소이기도 하다.



최소한의 장면이 주는 최대한의 행복



영화에서는 인물들이 식사를 하는 모습에 유독 집중한다. 우리는 흔히 가족을 식구(食口)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같은 입으로 밥을 먹는다는 뜻이다. 무코리타 하이츠는 저마다 다른 이로부터 태어났지만 '단층 연립주택'이라는 나열적 관계에서 또 다른 의미의 가족이 된다. 처음에 야마다는 혼자 식사하지만 시마다가 찾아온 뒤로 둘이서 식사를 줄곧 하게 된다. 밥은 혼자 먹는 것보다 둘이 먹는 게 맛있다는 것을 역설하듯이. 미조구치 부자가 고급 묘석을 판매한 후 스키야키를 먹으려 하자 야마다와 시마다, 미나미 모녀는 그걸 지나치지 않는다. 주민들이 모두 모여 함께 스키야키를 먹는 장면은 보는 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따뜻하게 물들인다. 이처럼 모두 함께 둘러앉아 식사하는 장면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식구나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금 확립한다.


'밥'을 '삶'으로 치환하면 영화의 주제의식은 더욱 명확해진다.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은 계속해서 나온다. 마을에 태풍이 불어닥치자 시마다는 잔뜩 겁에 먹는다. 이때 야마다는 구구단 7단을 거꾸로 외우면 괜찮아질 거라면서 시마다라를 진정시킨다. 결국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기로 마음먹은 야마다는 이웃들과 강변으로 향한다. 주황빛과 보랏빛이 섞인 노을 아래에서 야마다는 아버지의 뼛가루를 흩뿌리며 무코리타 하이츠 주민들과 퍼레이드를 하듯이 아버지를 하늘 위로, 강 아래로, 풀 속으로 멀리 보내드린다. 마지막까지 기분 좋은 여운으로 가득한 장면이다. 감독 특유의 일관된 감성이 삶의 소박한 장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렇듯 세심한 연출력을 통해 소소한 행복을 잘 찾는다면 외로운 삶일지라도 어떻게든 견딜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전작 <카모메 식당>, <안경>, <그들이 진심으로 엮일 때>도 마찬가지로 사소한 행복을 전하는 힐링 무비의 형태로 전달하고 있다. 신작 <강변의 무코리타>는 그보다 조금 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기에 다른 감독의 작품과도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전혀 다른 두 주인공이 서로의 슬픔을 들여다보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괴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낙인찍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이상일 감독의 <유랑의 달>을 추천한다. 등장인물들끼리 피로 이어진 관계가 아닌 유대감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 세 영화의 공통점이다.


끝으로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에 대한 별점과 한줄평을 남기려 한다.



★★★☆

상실의 아픔을 딛고 함께할 행복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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