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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네씨 Mar 14. 2024

우리의 최애곡을 기억해줄래?

영화 <로봇 드림>

역사상 첫 번째 애니메이션 영화인 에밀 콜의 <팡타스마고리>(1908)의 탄생 이후 한 세기가 흘렀다. 우리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무엇을 보려 하는 것일까? 애니메이션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점과 선, 면을 활용해 이미지를 창조한다는 것이야말로 애니메이션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과도 맞닿는다.


이런 고민에서 태어난 애니메이션이 있다. 바로 <로봇 드림>이다.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의 첫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작가 사라 바론의 동명 그래픽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대사 없이 이야기를 구성하고 표현한다는 것이 <로봇 드림>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로봇 드림>은 제76회 칸영화제 특별 상영 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후 여러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올해 당신이 보게 될 가장 사랑스러운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무엇이 이토록 <로봇 드림>을 사랑스럽게 만들었는가. 그 면면을 자세히 파헤쳐보도록 하겠다.


※ 이 글은 <로봇 드림>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Do you remember?
기억해?



1980년대 뉴욕, '도그'는 맨해튼에서 홀로 외롭게 지내고 있다. 우연히 TV 광고를 보다가 홀린 듯 반려 로봇을 주문한다. 그렇게 '도그'와 '로봇'과 단 하나뿐인 짝꿍이 되어 행복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해수욕장에 놀러 간 '도그'와 '로봇'. 여름 휴가를 즐기던 와중에 예기치 못한 상황에 휩쓸린다. '도그'는 '로봇'에게 다시 데리러 올 테니 기다려달라고 부탁한 채 이별하게 되는데… 과연 둘은 재회할 수 있을까?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수한 장르


영화 <로봇 드림>은 제한된 그림자와 단색 그리고 깔끔한 선을 사용해 표현됐다. 이러한 기법은 전통적인 스타일을 유지하되, 오늘날 관객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스타일이다. 어릴 적 넘겨 본 만화책의 그림체처럼 낯설지 않다. <로봇 드림>은 프레임 하나하나 평면의 그림체로 완성되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야기와 캐릭터를 단순하게 그려내기 위해 '선'을 주요한 요소로 사용했는데, 이는 각 캐릭터의 눈을 묘사하는 것부터 표정을 나타내는 것, 현실적인 풍경을 담아내는 것까지 충실하게 해내고 있다.


<로봇 드림>에서 캐릭터들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는 것은 비언어적, 반언어적 표현이다. 의성어, 휘파람 소리 등을 통해서 각 캐릭터의 특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겁 많고 소심한 '도그'와 사려깊고 호기심 많은 '로봇'이라는 캐릭터를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도그'와 '로봇' 말고도 영화 속에 여러 동물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파충류와 영장류, 말, 다른 종의 강아지들, 코뿔소, 황소, 코끼리까지. <로봇 드림>의 세계관은 각기 다른 성격의 동물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단박에 알아차리게끔 한다. 이해하기 쉬운 애니메이션은 <로봇 드림>이 관객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가도록 한다.



감성적인 음악과 적재적소의 음향


'도그'와 '로봇'의 꿈같은 일상은 추억의 디스코 음악인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September'와 만나 그 자체로 큰 즐거움을 준다. 'September'의 가사처럼 '도그'와 '로봇'도 9월에 만나 우정을 나누고 추억을 쌓았다. 이들의 이야기가 노랫말과 만나 특별한 사연을 일구는 듯하다. 서로에게 "그때를 기억하니?" 질문하는 듯한 다정한 안부는 '도그'와 '로봇'의 인연이 영원하도록 해준다. 그렇기에 사운드트랙 선곡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로봇 드림>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음악뿐만 아니라 음향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로봇 드림>의 사운드 디자인은 마치 동물들이 모여사는 정글처럼 짜여져 있다. 일상적인 소음부터 뉴욕의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요란하고 북적거리는 소리까지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애니메이션에서 사운드 디자인은 비주얼적인 요소만큼 신경써야 할 부분임을 증명하고 있다.



정성스럽게 연출된 스토리


<로봇 드림>은 뉴욕 맨해튼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외로운 '도그'와 '로봇'의 우정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다. 끊임없이 관계를 형성하고, 관계가 끊어지는 현대인의 일상을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많고 많은 동물 중에서 주인공이 '개'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예로부터 개는 인간의 곁을 함께하는 동물인데, 그런 개가 사람의 형상을 닮은 로봇을 반려의 존재으로 택한 것이다. 이러한 지점은 역설적으로 다가오는 한편, 우리가 관계 맺는 존재들에 대해 고찰하게끔 한다. 영화는 인간성과 공감능력을 발휘하여 외로운 현대인들에게 따뜻한 포옹을 건네는 듯하다.


'로봇'은 '도그'와의 이별 후 세 번의 꿈을 꾸고, 세 번의 인연을 스친다. '도그'를 꼭 만나고 싶다는 바람은 '로봇'의 꿈을 통해 실현되는 듯하다가 끝내 좌절된다. 우연찮게 만난 동물들은 '로봇'의 옆에 있다 영영 떠나게 된다. 추억 속에 묻힌 '도그'를 기다리는 '로봇'과 모래 속에 묻힌 '로봇'을 구하러 가는 '도그'. 둘은 새로운 인연을 맞이하며 상실을 받아들이고 슬픔에서 벗어난다. 감독은 두 캐릭터를 통해 사랑했던 사람들을 잃은 상실감으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끝으로 <로봇 드림>에 대한 별점과 한줄평을 남기려 한다.



★★★★

기억할 수 있다면 인연은 영원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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