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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네씨 Apr 01. 2024

하마구치 류스케 스타일의 정점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3월 27일 국내 개봉했다. 본국인 일본보다 한 달 가량 빠른 공개인데, 이는 이례적인 일이다. 영화는 2023년 제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수상하였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이콘부문,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이기도 하다. 이렇듯 국제적인 주목을 받으며 한국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새로운 작품이라니. 기대감을 품지 않을 수가 없다.


※ 이 글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대째 하라사와라는 일본의 작은 산골마을에 거주 중인 야스무라 타쿠미(오미카 히토시)와 그의 딸 하나(니시카와 료). 타쿠미는 마을 상류의 깨끗한 물을 길러 우동가게 부부에게 전해주는가 하면, 집에서 땔감을 직접 만드는 등 자연에서의 소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하교하는 딸을 데려가는 것을 잊어버릴 만큼 건망증이 심하다. 그러던 어느 날, 히라사와 마을에 글램핑 사업을 목적으로 플레이모드의 직원들 타카하시(코사카 류지)와 마유즈미(시부타니 아야카)가 찾아온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사업 설명회를 열게 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플레이모드라는 회사가 본래 연예기획사이고, 정화조 설치와 관리인 문제 등으로 자연환경이 훼손될 수 있다는 부분에 우려를 표하며 대책을 요구한다. 이에 두 사람은 마을 사람들의 소중한 의견을 잘 들었다며 한발 물러난다.


도쿄로 돌아온 타카하시와 마유즈미는 회사 사장과 함께 사업 기획자와의 회의를 갖지만, 회사는 이미 글램핑 사업을 하기 위한 토지를 매입한 상태이고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사업을 그대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며 타카하시와 마유즈미에게 글램핑장 관리인으로 현지인 타쿠미를 영입할 것을 지시한다. 결국 두 사람은 타쿠미를 설득하기 위해 하라사와로 다시 가게 된다. 연예계에서 일한 지 17년째인 타카하시는 갑작스레 글램핑 사업을 맡긴 회사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되고 차라리 자신이 글램핑장 관리인이 되고 싶다 말하게 된다. 연예계에 들어오기 전에는 요양보호사 일을 했던 마유즈미는 연예기획사에 들어온 것은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이었지만, 예상했던 대로 쓰레기 집합소라고 타카하시에게 토로한다.


타쿠미의 집에 도착한 타카하시와 마유즈미. 두 사람은 타쿠미에게 관리인 일을 제안하지만 타쿠미는 글램핑장이 세워질 자리는 야생 사슴들이 이동하는 길목이라며 사업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낸다. 이때 또 하나를 픽업하러 갈 것을 잊어버린 타쿠미는 뒤늦게 하나를 찾지만 하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하나를 찾기 위해 나서게 된다. 타구미는 실종된 딸, 하나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시선의 주인을 찾아서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오프닝부터 흥미롭다. 숲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이동하는 장면이 롱테이크로 촬영되었는데, 자연스레 어떤 인물의 시선일까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는 하나의 시선을 담은 듯하다가 자연의 일부가 되어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감상을 자아낸다. 이렇게 영화는 어떤 시선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데 그 주체가 누구인지를 특정짓지 않고 있다. 타쿠미가 장작을 패는 모습을 쭉 지켜보며 어딘가 오싹한 분위기를 드러내는가 하면, 타쿠미가 차를 운전할 때 쿵-하며 유리를 통해 보여주는 장면은 오묘한 시선의 긴장감을 일으킨다. 


영화는 여러 시점쇼트를 통해 관객이 시선의 주인을 찾아가기를 바란다는 인상을 준다. 어떤 인물이 될 수 있고, 자연의 일부와 같은 영적인 존재가 될 수 있기도 한 '시선'은 영화를 따라가는 데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장면들과 눈을 맞추고 영화적으로 상상하는 관객을 기대하는 듯했다. 여기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음악이 어우러지면서 영화는 미학적인 순간들을 빚어낸다. 사운드와 이미지의 조화는 문법적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 자체가 긴밀한 서사를 짜내고 있다.



대립과 공존 그 어딘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코로나19 이후의 일본 사회의 현실, 삶의 조건, 자연과 환경, 자본의 문제를 건들이고 있지만 그런 문제의식을 넘어서는 일렁임이 있는 영화다. 감독은 모호함과 은유를 자연과 인간, 그리고 상류와 하류라는 계급을 통해 이야기한다. 상류와 하류, 도시와 자연, 자연과 인간이란 키워드를 영화 속에 풀어놓고 대립적인 구도를 펼치는 한편 공존하고 있는 요소임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상류에서 하류로 흘러 내려가는 물의 이미지를 잘 녹여냈다.


이번 영화는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필모그래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러닝타임의 차이가 있다. <해피 아워>는 317분, <드라이브 마이 카>는 179분이라는 장대한 러닝타임을 달리고 있는 데에 반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106분이라는 그의 영화치고 다소 짧은 상영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압도적으로 줄어든 대사량. 인간 내면의 심리를 파고드는 극영화의 성격을 띠고 그의 전작들과 달리 이번에는 '자연'이라는 대상을 고요히 탐구하려 든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카메라의 독특한 움직임, 인물들의 특이한 존재감이 빛나는 작품이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자연에는 선과 악, 그리고 정의가 없고 악은 어디에든 존재하지만 이러한 통념에 카운터 펀치를 날리고 싶었다며 이렇게 제목을 지은 이유를 밝혔다. 그런 맥락에서 떠오른 영화가 있다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이다. 또 상류와 하류라는 물의 이미지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연상케 한다. 두 영화를 참고하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 대한 별점과 한줄평을 남기려 한다.



★★★★☆

류스케가 빚어낸 대화론적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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