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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ly Mar 16. 2024

소울(2020)

★★★★☆(4.5)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사실 무지와 착각 속을 유영하며 발견하는 작은 반짝임이다."


- 소울

 <소울>은 픽사의 23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독특한 세계관과 매력적인 캐릭터를 통해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이 작품 역시 픽사의 강점인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누구나 공감할 만한 메시지를 재밌는 이야기를 통해 모두가 이해하기 쉽게 전달한다는 점이 잘 드러난다.


- 반할 수밖에 없는 픽사의 세계

 이 영화에 대해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영화 속 세계관이다. 작중에선 태어나기 이전의 '생전세계(유세미나)'를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로 묘사하고 있다. 게다가 그 세계를 관리하는 '제리'와 '테리'라는 추상적인 캐릭터를 간단한 선의 형태로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그려내어 신비로움을 더했다. 두 눈을 가득 채우는 그 환상적인 세계를 처음 마주했을 때 '픽사는 아직도 보여주지 않은 게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죽음 이후의 세계, 즉 사후세계는 여러 작품에서 많이 묘사되어 왔지만 태어나기 이전의 세계인 생전세계는 좀처럼 본 적이 없어 그 발상만으로도 흥미로웠다. 그뿐 아니라 작품의 생전세계가 사후세계와 현실세계와도 모두 이어져 있다는 점이 눈여겨볼 만하다. 생을 마감한 영혼들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영혼들의 멘토가 되어준다는 설정, 살아있는 사람도 모종의 활동에 심취하면 그들의 영혼이 '유세미나'에 잠시 머무른다는 설정은 놀라움과 감탄을 자아냈다. 픽사의 또 다른 장편 애니메이션인 <코코>에서는 사후세계에 대해 다뤘는데 픽사는 <소울>에서 생전세계까지 다루어 사후세계뿐 아니라 그 어떠한 세계든 간에 훌륭하게 다루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 양날의 검이 된 음악

 영화에서는 음악에 관한 얘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사람들이 얼핏 보기엔 음악에 관한 영화처럼 보일 수도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음악을 다룬 방식이 독특해 보인다.


 먼저 음악을 아름답게 다루는 장면들이 있다. 가드너가 재즈바에서 원하던 공연을 하는 장면, 아버지와 함께 처음으로 재즈 음악을 듣고 재즈와 사랑에 빠지는 장면, 22와 헤어지고 나서 22를 그리워하며 슬픔에 잠긴 채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들이 그 예이다. 때로는 화려하게, 때로는 애잔하게 음악을 활용하여 음악에 대한 가드너의 열정과 애정을 보여준다. 음악이 그가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는 걸 여실히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가드너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장면들이 있다. 가드너는 오직 재즈에만 관심을 가지며 자신의 학생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머리를 잘라주던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시 말해 가드너는 음악에만 지나치게 몰두하여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작품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음악은 자유로움 혹은 열정을 상징하며 긍정적으로 비춰지는데 본작품에서는 음악이 오히려 등장인물의 발목을 붙잡고, 눈을 가리는 방해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새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 일상에서 발견하는 작은 불꽃

 '일상의 소중함'은 이 영화에서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테마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를 묘사하는 방식을 눈여겨볼 만하다. 영화나 만화, 책 할 것 없이 수많은 매체에서 꿈을 중요하게 다룬다. 그 꿈을 이루는 모험과 꿈을 이루었을 때의 성취감을 극대화해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소울>에서는 주인공인 가드너가 절실히 원하던 꿈을 이루었음에도 예상과 달리 크나큰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히려 허무함과 혼란스러움이 들이닥칠 뿐이었다. 재즈 밴드의 리더인 윌리엄스는 그런 그에게 자신이 바다에 있음에도 바다에 있는지 모르고 계속 바다를 찾아다니는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는 전부터 자신이 좋아하던 음악을 하고 있었음에도 음악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며 음악을 하고 싶어 했던 그, 나아가서는 이미 행복의 주변에 널려있음에도 그 행복들을 모두 보지 못하고 궁극적이고 이상적인 형태의 행복만을 추구하던 그에게 시야를 조금 확장하라는 의미로 해준 조언으로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일상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방식이 꼭 목표를 달성했을 때 느끼는 허무함이나 좌절감일 필요는 없지만 그럼에도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그것을 신선하게 묘사했다는 점, 작품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깨닫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 평범함에서 느껴지는 미학


 이 작품은 평범한 것, 일상적인 것, 독특하지 않은 것, 늘 볼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알려준다. 그러한 점은 캐릭터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작품의 주인공인 조 가드너는 그다지 특별한 사람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음악을 좋아해 음악을 직업으로 삼고 싶지만 현실적인 여건으로 인해 꿈을 이루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간디, 링컨, 테레사 수녀와 같은 저명하고 위대한 위인들도 실패한 22의 마음을 얻어내는 일에 성공한다. 이는 평범함을 소중히 여기는 작품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 22가 내딛는 용감한 걸음마

 22의 성장 과정을 보며 든 생각은 크게 두 가지였다. 먼저 '시작하기 전에 꼭 준비가 필요한가?'이다. 작중 가드너는 "인생을 살 준비가 되면 마지막 칸이 채워져"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는 모순이다. 왜냐하면 22는 비록 자신의 몸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미 인생을 살아봤기 때문이다. 22는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인생을 살아보았기에 비로소 삶을 살 준비가 되었다. 이러한 점을 통해 알 수 있듯 모든 일에 철저한 준비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먼저 부딪쳐 보면서 경험하다 보면 그 일에 필요한 것들이 갖추어질 때도 있는 법이다.


 다음은 '꼭 도착지가 필요한가?'이다.

"내 불꽃은 하늘 보기나 걷기일지도 몰라"

작중 22의 대사는 목적만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나 길을 걸어가는 일은 목표라고 보기엔 힘든 측면이 있다. 그러나 꼭 목표만이 중요한 건 아니다. 우리의 가슴을 채우는 작은 불꽃들은 우리도 모르게 지나치는 과정들 속에 놓여있을지도 모른다.


- 마치며...


 영화는 목표만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니듯 걸어가는 것, 즉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음을 전한다. 우리는 무지와 착각 속에서 헤엄치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것들을 알아가고 그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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