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봉준호 감독은 극과 극의 삶을 사는 두 가족을 중심으로 빈부격차와 양극화로 인한 계급/계층 간 단절을 다뤄낸 영화 <기생충>으로 4개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습니다.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는 정 감독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아칸소 주의 작은 농장으로 이사한 한국계 미국인 가족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앨런 김 배우가 정이삭 감독의 어린 시절인 아들 데이비드 역을 맡았고 윤여정 배우가 데이비드의 할머니, 스티븐 연과 한예리 배우는 아버지와 어머니 역을 맡았습니다.
미국 대중매체 버라이어티는 “버라이어티의 첫 번째 FYC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가족 이야기를 그린 봉준호 감독과 정이삭 감독의 만남을 주최해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보도했습니다. 버라이어티에서 공개한 영상에는 두 감독이 말하는 영화 <미나리> 그리고 영화에 대한 진솔한 얘기가 담겨있어 작품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봉준호 감독 가족분들 모두가 영화 <미나리>를 보셨는지 궁금하다.
정이삭 감독 그렇다. 가족 모두가 영화를 봤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작년 11월 추수감사절 즈음에 보셨다.
봉준호 감독 가족에게 큰 선물이었을 것 같다
정이삭 감독 그때 나는 추수감사절 저녁을 망칠 수 있다 생각했을 정도로 가족에게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 두려웠다. 솔직히 프리미어 상영 때보다 더 무서웠다. 하지만 가족들이 영화를 정말 좋아했고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봉준호 감독 자전적인 영화기 때문에 본인이나 가족에 대한 영화를 찍으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나에게 이 영화가 더 좋았던 이유는 자기 추억이나 향수에 젖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양한 캐릭터의 시선을 따라가고 보이스 오버나 나레이션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한국 이민 가정의 '이야기'이거나 '역사'가 아닌 전 세계 어느 가족들도, 엄마 아빠 기억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영화라고 느꼈다. 나는 영화가 자신의 이야기이지만 적절한 거리감이 존재해 보편적이고 아름답게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의도적이었나? 아니면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된 건가?
정이삭 감독 사실 책처럼 말하듯이 연출하고 싶어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서 나를 어린 소년 데이비드(아들)로 만 생각하지 않고 이야기와의 거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점점 스티븐 연이 연기한 아버지 제이콥 입장이 되어 많은 생각을 했고, 더 나아가 다른 캐릭터들과도 매우 친밀감을 느꼈다. 그래서 이 ‘거리’가 영화에 확실히 있기를 원하게 됐다. 왜냐면 스토리가 기억으로만 작용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가 가족 이야기 같아야 했다 그래서 약간 다르게 하기 위해 의도적인 선택이 있었다.
봉준호 감독 한예리 배우와 스티븐 연 배우를 부모님으로 캐스팅했는데 감독으로서 어려운 과정일 수 있다. 캐스팅할 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였는지 궁금하다.
정이삭 감독 그들과 대화를 나눴을 때 영감을 받아서 함께 일하게 됐다.
봉준호 감독 영화 <미나리>의 윤여정 선생님, 한예리 배우, 스티븐 연 배우, 아이들, 윌 패튼 배우까지 다 훌륭했다. 질투 날 정도로 완벽한 앙상블이다. 전반적인 과정을 알고 싶다.
정이삭 감독 세 주인공 배우는 비슷한 시기에 모이게 되었다. 캐스팅 디렉터인 줄리아 김이 오디션 공지를 전국에 뿌렸다. 한국어와 영어 둘 다 할 수 있는 배우들을 찾아야 했고 우리는 90여 개의 오디션 영상을 받았다. 다만 연기 경험이 대부분 없었다. 그러던 중 앨런 김(데이비드 역)의 영상을 봤고 귀엽고 재밌어서 계속 돌려 봤다. 또 영화에서 누나를 연기한 노엘 조 (앤 역)는 실제로 집에서 누나이기도 하고 같이 얘기 나눴을 때 진짜 가족 같았다. 영화 <미나리>의 가족이 현실적이어야 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영화 <기생충> 역시 가족의 케미가 중요했을 것 같다.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의 배우 박소담과 최우식은 외모가 닮아서 캐스팅한 면도 있다. 아무래도 가족은 닮아 있기 때문에. 영화 <미나리>에서 놀라운 점은 배우 한예리와 윤여정 선생님이 모녀지간으로 나오는데 두 배우의 연기가 뛰어났다. 특히 배우 한예리의 섬세함 때문에 '모녀구나', '가족이구나'를 느꼈다. 윤여정 선생님은 독보적인 배우로 전무후무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개인적으로 잊지 못할 캐릭터가 탄생했다 말하고 싶다. 스티븐 연도 섬세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배우이다. 그래서 영화 후반부에 스티븐 연기가 인상 깊었다.
정이삭 감독 봉준호 감독은 영화 <옥자>로 스티븐 연 배우와 함께 일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에 대해 묻고 싶다. 나는 스티븐 연이 영화에서 보여준 인물과 연기를 사랑한다. 제이콥(스티븐 연)이 가족을 아칸소 농장으로 데려오는 것이 안 좋은 일이라고 생각 들 수 있지만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봉준호 감독 영화 <옥자>에서 스티븐 연이 연기한 ‘케이’는 만화 같고 귀여운 캐릭터였다. 거짓말을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묘한 귀여움이 있다. 영화 <미나리>에서는 한 차원 높은 연기를 보여줬다. 젊은 아빠가 짊어지고 있는 짐, 그의 무거운 어깨, 그만큼 농장에 집착이 있는 인물이라서 배우의 새로운 경지가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아빠다운 아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이삭 감독 배우 스티븐 연이 관객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봉준호 감독 영화 <미나리>에서 미나리를 키우는 장소가 개인적으로 '올해 최고의 장소'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너무 아름답다.
정이삭 감독 감사하다. 그 장소는 로케이션 담당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장소다. 초반에 장소 찾는데 굉장히 힘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담당자가 어릴 때 놀았던 곳이 있다고 말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느낌이 왔었다. 실제로 가보니 완벽했다.
봉준호 감독 제이콥(스티븐 연)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바라보며 실제로 부모님은 그때 어떻게 느끼셨을지 생각해 봤다고 말했다. 그 당시 정이삭 감독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을 것이다. 어른이 된 후 각본과 촬영 과정 동안 부모님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는지? 그때 정이삭 감독이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있었는지?
정이삭 감독 지금 딸이 7살인데 제이콥이 농사를 짓고 꿈을 좇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나 또한 수년 동안 무책임하게 영화 제작의 꿈을 좇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가 추구하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올 수 있는 갈등을 이해할 수 있었고 나의 딸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의 아내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등을 지켜보게 되어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부모님을 좀 더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게 도와줬다. 그리고 나의 부모님이 영화 <미나리>를 보셨을 때, ‘너가 우리를 이해하는구나. 우리를 지켜봤구나’라고 말씀하셔서 굉장히 감동이었다.
영화 <미나리>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만장일치로 극찬을 받은데 이어 얼마전 윤여정 배우는 영화 <미나리>로 선셋 필름 서클 어워즈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미국 언론에서 2021 오스카 작품상, 감독상, 연기상, 각본상 부문에 유력 후보로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오스카 레이스의 청신호를 켠 영화 <미나리>는 2021년 상반기에 개봉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