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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프레소 Nov 21. 2022

연애에서의 '네거티브 스크리닝'과 '포지티브 스크리닝'

[씨네프레소]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리뷰


토요일마다 매일경제 온라인 코너에 연재 중인 '씨네프레소'를 브런치에 옮겨 담는 작업을 합니다. 이번에 올리는 글은 2022년 10월 22일 게재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리뷰입니다.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세기의 커플로 불렸던 두 사람이 결혼 후 몇 년도 안 돼 결별하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이유를 들어보면 두 사람은 헤어지는 게 맞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많지만 '생활 습관' '성격 차이'처럼 상대적으로 사소해 보이는 사유도 꽤나 있다. 온 세상의 아름다움을 모두 본인들의 것으로 취한 듯했던 완벽한 한 쌍이 헤어질 땐 '양말을 뒤집어서 벗어놓는다' '우리 부모의 잔소리에 싫은 표정을 지었다'와 같은 다소 시시하고 지질한 이유로 돌아서는 것이다. 어쩌면 서로에게 빠진 원인이 '완벽'이었기 때문에 이처럼 작은 단점도 치명적인 결함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주인공이 길 잃은 이웃집 강아지를 처리하기 위해 주변을 살피고 있다. [사진 제공 = 워터홀컴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7)의 여자 주인공은 연애의 시작을 놓고 고민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본인과 '세기의 커플'을 이룰 수 있을 만한 완벽한 상대를 찾는 게 아닌데도 연애가 쉽지 않다. 그녀는 다만 좀 '정상적'인 사람을 만나길 원한다. 그 정도면 연애 상대에게 바라는 것치고는 꽤나 소박한 조건일 텐데도 이 여성은 쉽게 연애에 발 들이지 못한다. 그것은 그녀에게 최근 구애하기 시작한 남자가 강박증이 있고,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막말을 일삼는 비범한 인물이어서다.

소설가인 주인공은 작업에 대한 몰입이 깨지는 상황을 극도로 꺼린다. 문을 두드린 이웃집 남성에게 동성애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이유다. [사진 제공 = 워터홀컴퍼니]

"이웃집의 귀찮은 강아지, 쓰레기통에 버려야지"


영화 초반부엔 이 남자의 괴팍한 성격이 묘사된다. 소설가 멜빈 유달(잭 니컬슨)은 손을 한 번 씻는데 새 비누 여러 개를 버릴 정도로 강박증과 결벽증이 심한 인물이다. 또 이웃과 도통 화합할 줄 모른다. 어느 날 복도에서 길을 잃은 이웃집 강아지를 공용 쓰레기통에 버릴 정도로 인정이 없다. 강아지가 혹시나 바닥을 더럽힐까 봐 걱정된다는 이유로 비상식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멜빈 유달은 괴팍하기 그지없다. 자신이 선호하는 테이블을 차지하기 위해 기존에 앉아 있던 손님을 내쫓는다. [사진 제공 = 워터홀컴퍼니]

강아지의 주인은 이웃집 화가 사이먼 비숍(그렉 키니어)이다. 쓰레기통에서 개를 발견한 사이먼이 자신에게 항의하러 오자 그는 "집에서 사람이 죽어서 썩은 냄새가 진동하거나, 당신의 동성애 파트너가 첫 번째 퀴어 대통령으로 당선돼서 축하하고 싶더라도 이 문은 두드리지 말라"고 막말을 한다. 소설에 집중하고 있던 자신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가장 상처가 될 만한 말만 골라서 쏟아낸 것이다.

유달은 이웃집 화가 사이먼(사진)에게 동성애 혐오 발언을 쏟아낸다. 영화엔 이처럼 차별을 일삼던 그가 조금은 더 다정한 이웃이 되는 이야기가 담겼다. [사진 제공=워터홀컴퍼니]

혐오 발언 일삼으며 남을 밀어내는 소설가도, 사실은 외롭다


여자 주인공인 캐롤 코넬리(헬렌 헌트)는 멜빈이 단골로 방문하는 식당의 종업원이다. 자기밖에 모르는 멜빈은 식당에서도 진상 고객이다. 자신이 선호하는 테이블에 앉아 있는 고객에게 "언제까지 죽치고 앉아 있을 거냐. 당신 식욕도 당신 코처럼 크냐"고 물으며 자리에서 쫓아낸다.

캐롤은 진상 고객인 멜빈 유달의 이야기에도 귀기울인다. [사진 제공 = 워터홀컴퍼니]

까탈스럽기 그지없는 그가 이 식당의 단골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캐롤이 상냥하게 받아주기 때문이다. 캐롤은 멜빈의 출입을 금지시키라는 지배인의 말에 "한 번 더 기회를 주자"며 만류한다. 난치병 환자인 아들을 둔 캐롤 앞에서 "나나 당신이나 당신 아들이나 다 죽는다"는 말을 무심히 내뱉어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캐롤은 그에게 기회를 준다. 그것이 그의 진심은 아닐 것이란 믿음을 마음 한구석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달은 사이먼의 개를 억지로 떠맡게 된다. 정작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엔 강아지와 깊게 교감하게 된다. [사진 제공 = 워터홀컴퍼니]

아들 치료비 내준 부유한 소설가, 이제 나에게 연애하자고


캐롤의 고민은 멜빈이 종업원·손님 관계를 넘어 연인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뜻을 내비치며 싹튼다. 오랫동안 높은 의료비용 때문에 아들의 병을 고치지 못했던 캐롤은 유명 소설가로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멜빈이 치료비 일체를 부담하기로 하면서 인생 최대 고민을 해소하게 된다. 모든 이에게 날카롭게 반응하는 멜빈은 캐롤에겐 다정하다. 캐롤의 다크서클을 걱정해주고, 캐롤이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일지 고민한다.

(왼쪽부터) 사이먼, 캐롤, 유달은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강도에게 습격당한 사이먼이 돈이 필요해 아버지를 찾아가게 되면서다. [사진 제공=워터홀컴퍼니]

문제는 연애 상대로서 멜빈은 결격 사유가 여럿이라는 데 있다. 강박증으로 도로에서 금을 밟지 않고 걸어야 하기 때문에 캐롤과 나란히 나아가지 못한다. 생각을 필터링 없이 그대로 내뱉는 성격 때문에 뜻밖에 불쾌한 상황을 맞닥뜨릴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캐롤은 그와 함께해보고자 마음먹는데 그의 흠 대신 장점에 주목하기로 결심하면서다.

캐롤은 흠 많은 유달의 장점에 주목해보기로 결심한다. [사진 제공 = 워터홀컴퍼니]

당신은 나를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어 하게 만들었어요


캐롤이 생각하는 멜빈의 장점 중 하나는 자신에게 멋진 칭찬을 건넨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언어에 갖고 있는 장기를 십분 발휘해 캐롤을 감동시킨다. "당신은 나를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었다"란 말이 대표적이다. 멜빈의 칭찬이 더 진실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가 평소에 스테이플러에 찍혀도 피 한 방울 안 흘릴 것 같은 독설가란 점과도 관련 있다. 평상시 입에 발린 소리를 절대 하지 않는 성격이기에 그녀에게만 건네는 찬사가 더욱 진정성 있게 전해지는 것이다.

잭 니콜슨은 이 영화로 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사진 제공 = 워터홀컴퍼니]

무엇보다 멜빈은 그녀를 궁금해하는 사람이다. '애가 있는 웨이트리스' 정도로 지나쳐지던 그녀의 삶은 멜빈에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여성의 이야기로 기억된다. 누군가와 사랑할 때 상대가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지만큼 그가 나를 얼마나 특별하게 여기고 있는지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공허 속에서 잠시 먼지처럼 떠다니다 사라지는 것이나 다름없는 인생에서 기꺼이 의미를 부여해줄 사람이 바로 연인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모든 생각과 얘기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는데 항상 솔직하고 감동적이었어요. 남들은 그걸 잘 알지 못해요. 당신이 음식을 나르거나 식탁을 치울 때 남들은 당신의 참모습을 놓쳐도 나는 당신이 훌륭한 여성이란 걸 알기에 언제나 흐뭇했어요."

유달은 캐롤의 친절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늘 감탄하며 바라본다. [사진 제공 = 워터홀컴퍼니]

연애에 있어 네거티브 스크리닝을 할 것인가, 포지티브 스크리닝을 할 것인가


연애 상대를 발견하는 과정을 네거티브 스크리닝(negative screening)과 포지티브 스크리닝(positive screening)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부정적 요소가 발견될 때마다 상대를 인생에서 걸러내는 것이 네거티브 스크리닝이라면, 내게 긍정적으로 여겨지는 요소에 적극적으로 가점을 부여해 그를 받아들이는 것은 포지티브 스크리닝이 될 것이다. 네거티브 스크리닝을 적용하면 절대 누군가의 짝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를 독설가 멜빈은 캐롤의 포지티브 스크리닝을 통해 한 사람의 옆에 설 수 있게 됐다.

캐롤을 연기한 헬렌 헌트도 이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안았다. [사진 제공 = 워터홀컴퍼니]

연애를 시작한 다음에도 우리는 네거티브 스크리닝과 포지티브 스크리닝의 갈림길에 자주 서게 될 것이다. 물론 연애는 모두 개인적인 것이라 남들이 모르는 사정이 가득하지만, 그래도 한 번 더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춰보라는 게 이 영화의 메시지다. 허공에 대고 "왜 난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는 평범한 남자친구를 가질 수 없는 거죠?"라고 묻는 캐롤에게 그의 모친이 건네는 답변은 짧지만 무게감이 있다. "누구나 원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어." 결국 연애도 우정도 상대가 완벽은 고사하고 어딘가에 정상적이지 않은 부분을 지녔을 것이란 전제를 갖고 있어야 순탄하게 진행될 수 있다. 내 옆의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란 것을 받아들였을 때 우리는 그에게 미처 있는지도 몰랐던 매력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캐롤의 기다림이 멜빈을 좀 더 상냥한 이웃으로, 그리고 좀 더 멋진 남자로 만들었듯 말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포스터. [사진 제공 = 워터홀컴퍼니]

장르: 코미디·로맨스·드라마

관람가: 15세 이상 관람가

감독: 제임스 L 브룩스

출연: 잭 니컬슨, 헬렌 헌트, 그레그 키니어

평점: 왓챠피디아(3.9/5.0), 로튼토마토 토마토지수(85%) 팝콘지수(86%)

※2022년 11월 20일 기준.

감상 가능한 곳(OTT): 넷플릭스, 왓챠, U+모바일tv


OTT 영화와 드라마를 리뷰하는 '씨네프레소'는 다음과 네이버 등 포털 뉴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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