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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외자 Nov 17. 2018

현실이라서 더 아픈, 영화 <박화영>


이환 감독/ 김가희, 강민아, 이재균/ 99분/ 청소년 관람불가/ 2018



며칠 전 집단폭행당한 뒤 추락사한 중학생의 소식이 온종일 뉴스를 뒤덮었다.


도대체 요즘 청소년들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삶을 사는 건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하루가 멀다고 미성년자들의 집단폭행 사건은 상상의 범위를 벗어나

뉴스로 접할 때마다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우리 때는 말이야….”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꼰대’ 혹은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라는데

필자 역시 미성년자들의 무서운 행태를 보면

 ‘우리 때도 저랬나?’라는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과거 필자의 학창 시절은

선생님들과 친구들 속 기억에 다르게 저장되어 있다.

두드러지게 ‘공부만’ 하는 학생도 아니었고,

누군가에게 들킬 만큼 ‘놀기만’ 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기억하는 필자는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고,

친구들에게 필자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땡땡이치고

자신들과 노래방과 대학가 주위를 배회하는 친구였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도 누군가가 학창 시절을 물어보면

상대가 누군가인가에 따라서 두 가지 버전 중

한 가지를 선택해서 이야기한다.


두 가지 버전 모두 필자의 과거이니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굳이 학창 시절을 회상하게 된 이유는 분명히 필자의 반에서도 

(필자와는 다르게) 모두의 눈에 띄게끔 놀아나는 친구가 있었다.

급작스러운 사물함 검사에서 소주병이 발견되기도 했었고 잘 알진 못했지만,

그 친구가 지나가면 진한 화장품 냄새와 뒤섞인 담배 냄새가 나기도 했다.

오토바이를 탄 남자 친구가 야간 자율학습 시간 중간에 운동장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

화장을 고치고 급하게 뛰어나가서 오토바이를 올라타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부앙~소리와 함께 사라지곤 했다.

그리고 다음 날 하교 시간까지 엎드려 잤다.

그 친구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고 사실도 있었고 아닌 것도 있었지만

필자가 아는 ‘노는 애’ 수준은 그 정도였다.

    



최근 접하는 미성년자 관련 뉴스만큼

필자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온 영화가 한 편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검색하다 우연히 알게 된 영화 <박화영>이 그것이다.


자주 접했던 10대 청소년들의 성장통에 관한 영화라 생각했지만,

청소년 관련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받은

이 영화가 궁금해서 기대 없이 보게 되었다.    


영화 초반 욕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의 불편함은

안타까움과 속상한 마음으로 변화되었고

영화를 보는 내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영화 속 인물들처럼

필자도 “저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런 도움도 방법도 모르는 무지함과 두려움에

영화를 본 후 여운이 길게 남았다.    


영화 <박화영>은 부모에게 외면받아 홀로 남겨진 문제아 박화영(김가희)이

더는 그 누구에게도 외면받기 싫어 

친구들 속에서 함께 어울리며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혼자 사는 화영의 집은 어느 순간 가출 청소년들의 집 혹은 쉼터의 기능을 하는 장소로 변했고

화영의 집은 항상 사람으로 복닥거린다. 

따로 사는 엄마에게 험한 말과 협박을 통해 얻어낸 용돈으로

집에 오는 모든 이들에게 라면을 끓여주는 등 숙식을 제공하고

자신의 집임에도 불구하고 일진 선배의 눈치를 보며 생활한다.


갈 곳 없는 친구들에게는 - 물론 화영이만 친구라고 생각하는 거지만 – 쉬어갈 수 있는 편안한 집이지만

반대로 화영에게 집은 모든 친구에게 폭행당하고

홀로 남겨지는 아픈 공간으로 변질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화영이를 이용하는 여러 친구 중

가장 가까운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연예인 지망생 친구 은미정. (강민아)  

  

“미정이는 조금이라도 화영이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건 맞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의문이 들었고,

끝까지 필자는 미정의 심리상태를 파악하지 못했다.


여전히 미정이는 어떤 마음으로 화영이 주변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화영이를 이용만 했다고 하기에는

화영이에게 살짝살짝 내비쳐지는 감정이 다 거짓은 아닌 듯했다.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영화 속 인물 중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캐릭터는 미정이라고 하던데

상황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그냥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가고 있는

불완전한 인간 미정이었던 걸까.    




화영은 불합리한 상황 속에서도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라고 외치며 마지막에는 웃어버리며 넘긴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화영이 내뱉는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는


“나는 니들 없으면 죽어!”


라는 말처럼 들렸고

호탕하게 버릇처럼 해대는 말은 점차 자신을 혼자 내버려 두지 말라는

처절한 매달림으로 들리기 충분했다.     


앞서 언급한 필자의 학창 시절 ‘노는 애’,

그 친구를 대학 진학 후 지나가다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학창 시절 화장을 진하게 하고 머리를 염색하고

동급생 중에서 가장 눈에 띄던 그 친구는

성인이 되어 만난 우리 중 가장 초라했고 외로워 보였다. 


이유는 모르겠다.


사실 그 친구가 대학을 진학했는지 안 했는지 뭐 그런 것은 모른다.

별로 관심이 없었기도 하고 다만 대학생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초라하게 볼 정도로 필자가 쓰레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모르겠지만,

날이 추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혼자 있어서 그랬는지

어색한 듯 웃는 그 친구는

학창 시절 빛나던 친구의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다.    


미정이와 다시 만난 화영은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미정의 태도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만나고 헤어짐에 충격을 받은 화영의 모습은

필자가 그날 보았던 친구의 표정과도 흡사한 듯했다.

그래서 알게 된 그 날 그 친구의 표정은 화영이와 같은


 “허함”


이었던 것 같다.    




10대 청소년 ‘일진’에 대해서 


가장 현실적으로 그려낸 영화라는 평을 받고 있어 더 속상했고


화영이에게 해줄 것이 없어 더 미안했던


영화 <박화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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