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① 실사 영화 '인어공주'를 둘러싼 논란
온라인 영화 매거진 '씨네리와인드'
(www.cine-rewind.com)
이 세상은 수학으로 이루어져 있다지만, '해답'의 문제에 있어 그것이 완전히 옳은 명제는 아니다. 세상에 정답은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의 상황을 두고도 수백 수천 개의 해석이 이루어질 수 있다. 문화 산업에 있어 그 양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작품에 대한 '비평'과 '비판'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신념과 시각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은 어느 하나의 메이저한 이슈나 주장에 묻혀 일관될 것이 아닌, 다양하고도 다채로운 모습으로 세상에 존재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나 역시 글을 쓴다.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는 때로는 삐딱하게, 때로는 놀랄만큼 신선하게 새로운 주장을 펼쳐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칼럼이다. 야심차게 시작한 첫 번째 주제는 최근 가장 논란이 이는 실사 영화 '인어공주'를 둘러싼 논란이다.
7월 4일(한국시간), 디즈니가 실사 영화로 제작을 준비 중인 ‘인어공주’의 주인공 에리얼 역에 신예 할리 베일리가 캐스팅되었다. 이번 영화의 감독을 맡은 롭 마샬은 에리얼 역에 걸맞은 배우를 찾기 위해 “광범위한 수색”이 있었으며 할리 베일리가 이 “상징적인 역할을 맡기에 충분한 내재적 자질을 갖추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녀의 풍부한 영혼, 감정, 순수함에 더불어 빼어난 목소리가 에리얼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이 공개된 이후, 세계 각국의 디즈니 팬덤은 그야말로 ‘공황상태’에 놓이고 말았다. 연기 경력이 많지 않은, 검증되지 않은 어린 가수를 ‘인어공주’라는 거대한 무대에 떡하니 올려놓은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할리 베일리가 붉은 머리의 백인 소녀가 아닌,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에리얼 역을 맡은 할리 베일리에 대해 디즈니 팬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까닭은 근본적으로 이 ‘인종의 문제’에 기인한다. 에리얼은 1989년 ‘인어공주’로 첫 선을 보인 이래 ‘인어공주 2’, ‘인어공주 3’, 그리고 ‘주먹왕 랄프 2’에 이르기까지 붉은 머리카락과 푸른 눈, 그리고 창백한 피부를 가진 백인으로 묘사되어왔다. 이야기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한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에서 묘사된 공주의 모습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지난 30년 동안 에리얼은 그녀를 보고 자라온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명백한 백인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런데 이번 실사 영화를 제작하면서 그 주인공을 흑인으로 캐스팅하였으니, 사람들이 당황스러움과 괴리감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전까지 오랫동안 인식되어왔던 에리얼만의 이미지, 그녀만의 고유한 아이덴티티가 갑작스레 ‘강제적인 변신’을 강요받았으니, SNS 상에서 #NotMyAriel과 같은 해시태그가 유행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물론, 기존의 컨텐츠를 재해석하는 데 있어 에리얼을 흑인으로 그리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주장도 존재한다. 애초에 ‘가상의 인물’을 변주하는 데 있어 별도의 제약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흑인 에리얼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 뿌리 깊게 남아있는 인종 차별과 연결되는 것이라며, 편견을 가지는 것 자체가 시대 착오적이라는 비판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는 최근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이하 PC) 요소와도 연결된다. 한편으로, 롭 마샬이 언급한 바와 같이 에리얼은 그녀를 보고 자라온 아이들에게 ‘상징적인 역할(Iconic role)’로서 존재해왔다. 흑인 에리얼은 오늘날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발언권이 커지고 있는 African-American들에게 있어 이제 새로운 ‘상징적인 역할’로서 기능하기에 충분하다. 다시 말해 새로운 에리얼은 곧 새로운 시대, 유색인종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의미한다. 일부 평론가들은 디즈니의 야심찬 프로젝트 아래 새로운 에리얼에 부여된 역할이 흑인을 넘어 아시아계, 히스패닉 계에게까지 희망을 줄 수 있음을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이 ‘희망’의 가능성은 상대적이며 또한 주관적이다. 변화의 시대를 맞아 기존 다수였던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을 얻지 못하고 희생되어야 하고, 그 피해의 양상은 어떠한 방향으로든 파문이 일어나게 된다. 더욱이, 기존 시대에서도 소수자였던 사람들이 변혁의 시대에서도 소수자로 머문다면, 게다가 같은 소수 집단에 의해 자신의 역할을 박탈당하는 상황과 마주친다면 그 갈등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흥미롭게도 이번 ‘인어공주’의 논란은 바로 이 문제와 직결한다. 에리얼이 흑인으로 대체됨으로써, 그동안 차별의 대상으로 존재해왔지만 에리얼 등을 통해 긍정적으로 묘사되었던 ‘빨간 머리 백인’ 캐릭터가 삭제되었고, 이것이 다시 말해 ‘진저 지우기(Ginger Erasure)’ 이슈와 결부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에 이른 것이다.
진저: 영국식 속어/경멸적 의미로써 붉은 계통의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들.
‘빨간 머리’는 전 세계 인구 중 약 1~2퍼센트만이 가지고 있는 희귀한 머리 색깔이며, 서양인에 한정한다 하더라도 5~6퍼센트 남짓에 불과하다. 단,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로 무대를 옮겼을 때 그 비율은 10% 이상으로 치솟는다. 이는 서구권에서 빨간 머리가 외형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뚜렷하게 구분된다는 특징과 더불어 두 지역에 대한 역사적 억압, 특히 아일랜드계에 대한 박해와 연계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 각종 차별의 대상으로 존속되어온 까닭이 되었다.
흔히 ‘진저(Ginger)’로 뭉뚱그려져 표현되는, 빨간 머리 백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 내용도 굉장히 많다. 유전적 특성 상 빨간 머리를 가진 사람들은 창백한 피부와 주근깨를 가진 경우가 많아 ‘못생겼다’는 스테레오타입에 시달리고는 한다. 이는 또한 ‘악마적 상징’인 피와 사탄을 연상시킨다는 터무니없는 중세적 미신과도 연결되어 오늘날까지도 붉은 계통의 머리 색깔을 가진 사람들의 주된 별명이 ‘마녀’이며 ‘불결한 성정’을 가지고-실제로 중세 시대의 사람들은 이를 진지하게 믿어 빨간 머리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무고한 빨간 머리 여성들을 창녀로 취급하거나 화형대로 보내기도 하였다-심지어는 ‘영혼이 없다’는 욕설까지 듣게 하는 주된 이유가 된다. 예수를 배신한 이스가리옷 유다와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의 머리카락 색깔이 빨간색으로 묘사되기까지 하니 말 다했다. 이 밖에도 빨간 머리는 화를 잘 낸다, 고집이 세다, 불량하다는 편견 등에 자주 시달리는 편이다.
특히 이 문제는 영미권에서 더욱 심각하게 드러난다. 영국의 미신 중 “새해에 가장 먼저 연락을 해오는 사람이 갈색 머리이면 최고의 행운을 가져다주고, 금발이면 아무 것도 가져다주지 않으며, 빨간 머리는 악운만을 가져다준다”는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이다. 이것은 아마 스칸디나비아로부터 침입해 온 바이킹들의 외형과 연관된 오랜 공포와,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 등지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빨간 머리에 대한 폄하적인 시선이 결합되어 생성된 내용일 것이다. 이 편견은 미국으로 넘어왔을 때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잘 알려다 있다시피 그 유명한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말미암아 19세기 중반 이래 수많은 아일랜드 출신의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엑소더스를 감행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이 미국에 발을 내딛었을 때는 이미 잉글랜드계 미국인이 사회의 주류층을 대부분 차지한 상태였다. 이른바 WASP라 불리는 이들은 자신들과는 다르게 가톨릭을 믿고 영국식 표준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아일랜드 계 이민자들을 ‘교양 없고 천박한 주정뱅이’로 낙인찍었다. 결국 가진 것 하나 없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해 하류층을 전전해야 했던 아일랜드 계 출신의 사람들은 ‘흰 검둥이(White Negro)’이라고까지 불릴 만큼 심한 차별을 받기 일쑤였다. 이러다 보니, 이들과 함께 했던 붉은 색 머리카락-사실 그 역시 하나의 편견에 불과했음에도-은 사회에 만연했던 빨간 머리에 대한 경멸을 심화시키는 데 일조하였으며, 오늘날 그 차별적 분위기가 줄어들었다 하더라도 ‘빨간 머리의 아일랜드계 출신 백인’이라는 부정적인 스테레오타입은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서구권에서는 빨간 머리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따돌림을 당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하도 심각하다 보니, 2002년 당시 따돌림 문제 근절을 위해 제작된 스웨덴의 공익 광고 ‘Friends.se’ 시리즈에서는 빨간 머리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의 모습이 묘사된 바 있기까지 하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빨간 머리 때리는 날(Kick a Ginger Day, 11월 20일)’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유명 TV 만화 프로그램 ‘사우스 파크’의 에피소드 ‘Ginger Kids’에서 유래된 이 폭력적인 기념일은 빨간 머리를 가진 학생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을 긍정하며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낳았고, 엄격한 규제 아래 사그라들었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외에도 ‘붉은 가랑이(Fire Crotch)’, ‘당근 꼭지(Carrot Top)’ 등 빨간 머리를 대상으로 한 모욕적인 단어들은 수도 없이 많다. 한국에서는 빨간 머리가 흔하지 않다 보니 그리 와 닿지는 않지만, 서구권에서는 ‘Ginger Pride Parade’, ‘National Irish Redhead Convention’과 같이 빨간 머리들을 위한 다양한 축제와 행사를 열고 1월 12일을 ‘Kissing a Giner Day’로 지정하는 등 사회적으로 만연한 차별을 분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편이다.
“빨간색이구나, 그렇지?”
여자 아이는 평생 맺힌 슬픔을 발끝에서부터 모조리 토해 내는 듯한
한숨을 내쉬며 머리카락을 도로 내려놓았다.
“네, 빨간색이죠. 아저씨는 이제 제가 완전히 행복할 수 없는 이유를 아실 거에요.
빨간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완전히 행복할 수 없어요. (…)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해요. ‘이제 내 머리카락은 갈까마귀 날개처럼 우아한 까만색이야.’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제 머리카락이 새빨갛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어요.
그러니 가슴이 찢어지죠. 평생 동안 짊어질 슬픔일 거에요. (…) ”
(루시 모드 몽고메리, 김경미 역, <빨간 머리 앤>, 시공주니어, p.30~31)
이와 같은 빨간 머리에 대한 차별 양상과 고정 관념, 그리고 콤플렉스는 대중문화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남성의 경우 앞서 언급하였던 붉은 계통의 머리카락과 주근깨, 창백한 피부에 더불어 치아 교정 장치가 수반되는 등 괴짜, 너드(Nerd)의 이미지가 자주 부여되는 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존 헤더가 주연을 맡은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2004)’, ‘윔피 키드’ 시리즈의 프리글리, ‘아메리칸 파이’의 척 셔먼 등이 있다. 여성의 경우 유흥업소의 마담이나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팜므파탈, 다시 말해 위험한 마력을 가진 마녀와도 같은 위험한 여성으로서 빨간 머리가 자주 사용된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의 제시카 래빗, DC 코믹스 배트맨의 빌런 포이즌 아이비, ‘트루 블러드’의 제시카 햄비 등은 이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빨간 머리는 ‘주인공을 지원하는 주요 조연’을 자주 맡는다. 이는 빨간 머리카락이 ‘다름’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캐릭터를 설명하는 요소로서 빨간 색 머리는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위즐리 가문, 슈퍼맨 시리즈의 지미 올슨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본디 주인공의 사이드킥으로 출발하였던 DC 코믹스의 3대 플래시 월리 웨스트 역시 이와 같은 상황에 그대로 부합한다. 이는 주인공을 상대하는 히로인에게도 그대로 사용되는 요소이다. 앞서 언급한 월리 웨스트의 고모이자 2대 플래시의 연인 아이리스 웨스트,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의 연인 메리 제인, ‘더 위쳐’ 시리즈에서 히로인으로 등장하는 트리스 메리골드 등이 이에 부합한다. 이와 같은 모습은 결국 빨간 머리의 특별함과 독특함을 강조함에 따라 작품 속에서 많은 비중을 챙기고 나름대로의 활약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이와 같은 모습은 빨간 머리가 2000년대 초반까지 서구권에서 ‘다양성’의 한 축을 맡는 또 다른 ‘소수자’로서 기능해왔음을 알려주는 분명한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나쁘게 말하자면 빨간 머리를 가진 캐릭터는 확장성에 한계가 있는 들러리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빨간 머리를 가지는 ‘주인공’ 캐릭터의 중요도는 문화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소수자이며 차별에 시달려 온 진저들이 문화 콘텐츠 전면에 나서며 활약하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가치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올해 80주년을 맞은 ‘아치 코믹스’의 메인 캐릭터 아치 앤드류스, ‘빨간 머리 앤’의 앤 셜리, 그리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에리얼이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바로 그 까닭이다. 특히 명랑하고 활기찬 공주 에리얼은 1989년 첫 선을 보였던 당시 세계 각지의 빨간 머리 소녀들에게 용기를 잃지 않고 무엇이든 당당히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고, 또한 ‘이상적인’ 롤모델로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희망은 오늘날 빨간 머리를 가진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유효하게 적용된다.
문제는 ‘현재’이다. 일반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오늘날 문화 업계에서는 소수자를 내세울 완전한 대표자로서 흑인을 낙점한 듯하다. 이 과정에서 기존 소수자로 인정받았던 빨간 머리 캐릭터들은 그 지위를 대부분 부정당하고 ‘흑인화’되어 본래의 개성을 잃고 있는 중이다.
‘백인의 흑인화’ 문제는 인종차별 이슈에 민감한 할리우드 등지에서 자주 논란에 휩싸이는 소재이기도 하다. ‘토큰 블랙’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거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배역을 흑인으로 설정하여 (빨간 머리와 마찬가지로) 흑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밀어붙이는 '구색 맞추기용' 소재로 일관하였지만, 이전까지 많은 비중을 가지지 못했던 유색 인종의 대중문화 소비력과 그 욕구가 오늘날 놀랄 만큼 증대함에 따라 상황이 크게 변화하게 되었다. 흑인들은 기존의 틀에 박힌 모습이 아닌 더욱 멋지고, 중요한 비중을 요구할 만한 힘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여러 프랜차이즈 작품들 속에서 흑인 캐릭터가 단순한 들러리가 아닌 주인공을 맡아 엄청난 성공을 보장하고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이 역할이 대체되는 상황 속에서 필연적으로 ‘희생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앞서 언급했듯이 주인공을 지원하는 주요한 조연의 역할을 자주 맡았던 빨간 머리 캐릭터들이다.
예를 들어보자. 먼저, 앞서 언급했던 아이리스 웨스트와 월리 웨스트, 그리고 지미 올슨은 각각 CW 드라마 <플래시>와 <슈퍼걸>에서 흑인으로 인종이 변경되었다. 트리스 메리골드 역시 넷플릭스에서 제작되는 실사 드라마 판에서 해리포터 시리즈의 로밀다 베인 역할로 주목받았던 안나 샤퍼가 캐스팅됨으로써 고유한 개성을 잃게 되었다. 메리 제인의 경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스파이더맨 시리즈 속에서 그 캐릭터가 ‘MJ’라는 이름으로 완전히 재해석되어, 젠다야가 좋은 연기를 보여주기는 하였지만 결국 메리 제인 특유의 탐스러운 빨간 머리를 스크린에서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표하였다. 이 밖에도 크고 작은 비중을 맡았던 진저 캐릭터가 흑인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사실이 연이어 밝혀지면서, 과거에는 우스갯소리로 치부되었던 ‘진저 지우기’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되었다. 어떻게 보면 이는 필연적인 것이, 주인공의 역할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만만한 상대’가 이전까지 소수자의 위치에서 주인공을 지원했던 진저 캐릭터였기에 쉽게 변형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에리얼은 다르다. 에리얼은 지난 30년 간 빨간 머리의 자존심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이상적인 역할’을 계속해왔다. 그런 에리얼에 대해 디즈니가 흑인으로 인종을 변형한 것은 다시 말해 문화적 위치에서 빨간 머리 캐릭터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음을 선언하는 것과 같다. 이는 결국 빨간 머리가 더 이상 소수자의 위치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이며, 그 자리를 새로운 소수자의 ‘대표자’인 흑인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음을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이번 흑인 에리얼의 문제는 단순히 가벼운 인종 변경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닌, 문화적 위치에서 심각한 파괴와 변형을 가져온 논란으로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지금까지 문화계에서 ‘소수자의 위치를 박탈’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전무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어떻게 보자면, 이번 사건을 통해 디즈니는 상대적으로 소수인 집단을 강제적으로 밀어내고 다른 소수자를 그 위치에 새로이 놓았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 자리를 차지한 이를 두고 진정한 ‘소수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따라서 ‘진저 지우기’ 이슈와 연관된 논란은 무엇이 ‘정치적으로 옳은 것’인지에 대한 깊은 의문을 남길 만하다. 빨간 머리는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차별을 받아왔고, 그것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문화적으로도 소수자의 위치에 놓여 있었다. 만약 디즈니 측에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요소를 진중하게 고민하였다면 빨간 머리 에리얼을 흑인으로 변형하여 ‘PC’의 티를 내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그대로 빨간 머리와 창백한 피부를 가진 배우를 캐스팅함으로써 산적해있는 차별과 편견에 맞서 싸우는 긍정적인 모습을 실로 ‘자연스럽게’ 그려냈어야 한다.(이것은 정치적 올바름에 관련된 논란이 일기 이전, ‘인어공주’를 비롯한 디즈니 프린세스와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높이 평가받았던 요소이다.) 그러나 에리얼이 흑인으로 캐스팅됨으로써, 이 가정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으며, 동시에 ‘소수자를 또 다른 소수자로 지워낸다는’ 의문마저 추가하게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현재 이어지고 있는 흑인 에리얼에 대한 논란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에리얼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디즈니 측이 이해도가 높지 않았으며, 진정한 정치적 올바름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겠다.
좀 더 삐딱하게 바라보자면, 결국 디즈니는 그저 ‘블랙 팬서’ 등을 통해 확인한 강력한 흥행 가능성의 고려 아래 에리얼을 흑인으로 캐스팅하여, 기본적으로 ‘돈이 될 만한’ 자본주의적 판단 아래 또 하나의 유구한 소수자를 내친 '무리한 변주'를 진행한 것은 아닐까.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지만.
지금까지의 정리는 결국 할리 베일리가 ‘인어공주’에서 어떠한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윌 스미스가 ‘나는 전설이다’, ‘맨 인 블랙’ 시리즈, ‘수어사이드 스쿼드’ 그리고 ‘알라딘’에서 보여준 것처럼 인종 변경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빼어난 연기력과 배역에 맞는 적합성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이 논란은 금세 잦아들고 말 것이다. 결국 영화가 완전히 만들어지고 개봉이 이루어진 뒤에야 제대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할리 베일리가 캐스팅 직후 자신의 SNS에 올린 사진을 살펴봤을 때, 기대감이 낮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검은 피부, 그리고 검은 머리카락. 그녀의 사진에는 빨간 머리 캐릭터에 대한 존중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며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글 / 씨네리와인드 강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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