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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리와인드 Jul 04. 2019

콜도 세라 감독, 한국영화에서 영감 받은 건 말이죠..

[인터뷰] BIFAN '특별한 인질' 콜도 세라 감독을 만나다  

온라인 영화 매거진 '씨네리와인드'

(www.cine-rewind.com)



 24시간 이내에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딸의 양육권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싱글맘 '라껠.' 다행히 은행 직원들이 그녀의 처지를 이해해줘서 대출을 긴급히 마무리하려는 순간- 

 "다들 손 들어! 비상벨을 누르면 대가리를 날려버린다!"

 그런데 갑자기 2인조 강도가 쳐들어와서 은행에 있는 사람들을 인질로 잡아버립니다. 라껠은 대출 진행만 하게 해달라고 은행 강도들에게 사정하지만, 그들은 매정하게도 그녀에게 가차 없이 폭력을 휘두릅니다. 

 그러나 강도 커플의 인질극은 하나부터 열까지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갑자기 배고프다면서 경찰에게 피자 배달을 요구하지 않나, 축구 준결승전이 시작할 시간이 되면 잠시 인질극을 중단하고 경기를 응원하기도 합니다. 


 이에 희망을 얻은 라껠은 은행 강도들을 잘 구슬려서 대출을 마무리 지을 계획을 세웁니다. 먼저 라껠은 전과자인 강도 둘이 경찰과 직접 전화를 하면 신분이 탄로 날 거라면서, 자신이 강도들을 대신하여 협상 전화를 받아줍니다. 라껠이 내세우는 거침 없는 협상 조건에 경찰이 긴장하기 시작하자, 은행 강도들은 그녀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면서 대출 절차를 도와주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라껠은 협상 조건 속에 치밀한 암호를 넣음으로써 경찰에게 강도들에 관한 정보를 몰래 흘려 보내면서 인질극 구출 작전에도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거짓말에 있어서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라껠, 과연 그녀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요?  2019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인 영화 '특별한 인질'은 아이큐 164의 소유자인 천재 싱글맘 라껠과 그녀에게 휘둘리는 허술한 강도들의 온도 차(?)가 상당히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 넘치는 범죄스릴러와 허를 찌르는 블랙 코미디, 그리고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충격적인 반전의 연속, 이 세 박자가 어우러진 이 영화는 전 세계 평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 (좌) 콜도 세라 감독님, (우) 천재 싱글맘 '라껠' 역을 맡은 배우  '엠마 수아레즈'    © kOLDO SERRA 감독 공식 인스타그램 (@koldo_serra)



오늘은 영화 '특별한 인질'을 연출하신 스페인의 거장 '콜도 셀라(KOLDO SERRA)' 감독님을 만나 뵙고 왔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한국 관객들에게 영화 '특별한 인질'이 어떻게 다가오는가'라는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영화 속의 코미디 장면이 이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게 맞다는 게 실감이 될 만큼 상당히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라서 즐거운 인터뷰였습니다.  




▶ 영화 '특별한 인질' 의 원제는 '70 Binladens'입니다. 이는 한국 관객들에게 낯선 말이라서 많은 분들이 뜻을 궁금해하시는데, 영화의 원제에는 어떤 뜻이 있나요?


 'Binladens'은 500유로짜리 지폐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70 Binladens'라는 돈은 워낙 거액이다 보니 (한화로 약 4600만 원), 그 돈을 직접 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영화 속 등장인물은 이 돈을 손에 넣어야만 원하는 걸 이룰 수 있습니다. 이 제목은 다른 언어로 해석하면 늬앙스가 전달되기 어렵기에, 외국에서 상영 시에는 제목을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별한 인질'은 은행 강도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요, 혹시 이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참고하신 실제 사건이 있나요?


 스페인에는 은행 강도가 많기는 하지만, 이 영화가 하나의 특정한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건 아닙니다. 여러 뉴스를 참고해서 영화 속 사건의 현실감을 살리고자 했죠.

 넷플릭스의 드라마 '종이의 집(money heist)'보다는 작은 스케일로 촬영이 진행되었지만, 저는 일상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현실감을 살리는 데에 중점을 뒀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있을 법한 실수를 반복하는 허술한 강도를 등장시킨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존의 은행 강도를 다룬 영화들이 '인질범'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저는 '인질' 캐릭터를 중심으로 사건을 전개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영화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사면이 아파트로 둘러싸인 공간적 배경     ©DAUM 영화


▶ 확실히 공간적 배경이 소규모였던 점이 영화의 몰입도를 높여준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한국 관객들에게 이국적으로 다가왔는데요. 한국에도 아파트는 많지만, 이렇게 고층 아파트가 은행을 사면으로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는 건 굉장히 독특하게 느껴졌습니다.


 방한 일정 중에 한국을 둘러보니 한국은 고층 빌딩이 많지만, 스페인은 한국만큼 고층 건물이 흔치 않습니다. 영화의 촬영지는 제가 일부러 발품을 팔아서 특별히 고른 장소입니다.

 라껠을 비롯한 인질들은 은행에 갇혀 있습니다. 외부에서 은행을 바라보면, 은행은 고층 아파트에 둘러싸여서 갇혀 있는 구조입니다. 저는 이러한 요소를 통해서 갇혀 있는 인질의 처지를 부각했습니다. 

 총성이 울리고 인질극이 시작되자, 아파트 주민들은 창문 아래로 인질극 상황을 내려다봅니다. 하지만 이들은 축구 준결승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가족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죠. '진지한 상황'을 구경하던 이들이 '오락거리'로 쉽사리 시선을 돌린 걸 통해 유머러스한 상황을 연출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영화 촬영의 뒷이야기를 하나 말씀드리자면, 사실 창문을 통해 사건을 구경하던 주민들은 실제 그 아파트의 거주민들입니다. 사전에 미리 허가를 받고 촬영을 진행했는데, 많은 분들이 집에서 저희의 촬영 현장을 구경하고 핸드폰으로 찍으시더라고요. 그러한 실제 상황이 영화 속 상황과 잘 어울러져서 해당 장면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 감독님의 말씀대로 아파트 주민뿐만 아니라 은행 강도와 경찰들까지 하던 일을 멈추고 뜬금없이 다 함께 축구를 응원하는 장면은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실제로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도 한국 관객들이 가장 많이 웃은 건 이 장면이었는데요. 한국도 스페인 못지않게 축구를 사랑하는 나라이기에 한국 관객들이 많이 공감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장면에서 꼭 '축구 경기'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제가 의도했던 건 인질극으로 인해 긴장된 분위기를 잠시 풀어주는 거였는데, 한국 관객들도 많이 웃어줬다니 다행입니다.

 이 부분은 한국 영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는데요. 여기가 한국이어서 제가 빈말로 말하는 게 아니라 (웃음) 실제로 저는 한국 영화를 즐겨 봅니다. 특히 봉준호 감독님과 김기덕 감독님의 영화를 좋아하죠.

 스페인 영화는 심각한 상황이면 끝까지 딱딱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 영화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도중에 긴장을 풀어주는 유머러스한 장면이 삽입됩니다. 제가 본 어느 한국 스릴러 영화에서는 형사가 시체를 찾다가 갑자기 발에 뭐가 걸려서 넘어지더라고요. 저는 이런 장면을 한국 영화에서 처음 봤습니다. 이러한 장면들은 일상의 현실감을 살려주면서 웃음을 주는 역할도 하죠. 저는 한국 영화의 이러한 점이 좋아서 이번 저의 영화에도 접목했습니다. 


▶은행 강도들이 거침 없이 폭력을 행사하다가 갑자기 '배고픈데 밥 먹고 할까?'라고 말하면서 피자를 주문한 장면 역시 유머러스했습니다. 한국은 굉장히 밥을 중요시 여기는 나라입니다. 그렇기에 한국 관객들은 '그래, 은행 강도도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밥은 먹으면서 해야지.'하고 공감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웃음)


 저는 지금 밥의 나라인 한국에 체류한 지 삼 일째인데 계속 밥만 먹고 있습니다. (웃음) 저는 '빌바오'라는 스페인 북쪽 도시 사람인데, 이곳은 식문화가 발달한 프랑스와 접해있기에 저 역시도 끼니를 제때 챙겨먹는 걸 굉장히 중요시 생각합니다. 한국인과 이렇게 유머 코드가 통하다니, 이 영화가 한국에서 리메이크가 된다면 많은 사랑을 받지 않을까요?  




▲ 딸과 살기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속이는 '라껠'     ©DAUM 영화


▶ 라껠은 자신의 정체를 비밀에 부치며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는 인물입니다. 워낙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다 보니까, 영화를 보다 보면 딸이 있다는 것마저 거짓말이 아닐지 의심이 들더라고요. (웃음) 그렇다면 감독님은 라껠을 구체적으로 어떠한 캐릭터로 그리고 싶었나요?  


 라껠이라는 캐릭터의 바탕이 된 건 기업가 여덟 명에게 사기를 친 실제 인물입니다.

 라껠은 거짓말쟁이라는 점에서 이상적인 어머니와는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라껠은 언제나 딸을 아낍니다. 그렇기에 저는 라껠 역을 맡은 배우 '엠마 수아레즈'에게 라껠의 '거짓말'의 기반은 딸을 사랑한다는 '진실'이라는 걸 잊지 않고 연기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 허술한 은행 강도 커플 '롤라'와 '요난'     © DAUM 영화


▶ 롤라와 라껠은 인질범과 인질이라는 대조되는 위치에 있지만, 둘은 유사한 점도 많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모성애가 아닐까 싶은데요. 롤라와 요난은 은행 강도 공범이자 감방 동기(?)인 커플이지만, 둘의 관계는 평범한 애인과는 다릅니다. 롤라가 요난을 일방적으로 챙긴다는 점에서 둘의 관계는 엄마와 아들에 가까운 듯합니다.


 롤라와 라껠은 살아온 환경은 다르지만, 각자 자기만의 문제를 지니고 있고 그걸 은행 인질극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점에서는 유사한 캐릭터입니다.

 마약 중독자인 요난의 경우에는 쉽게 흥분하며 행동이 어리숙하여 롤라의 보살핌이 필요한 인물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모성애라고 칭할 수도 있지만, 다르게 보면 롤라가 요난을 통제한다고도 해석할 수도 있겠죠. 이는 상당히 '독성'이 있는 위험한 관계입니다.

 모성애에 관련해서는 롤라가 인질에게 느끼는 감정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롤라는 일종의 '사육사'입니다. 갇혀 있는 공간에서 인질을 관리하고 있었으니까요.

 영화 초반에 복면을 쓴 롤라는 인질을 짐승을 대하듯이 하지만, 복면을 벗고 나서부터는 인질에게 정이 들면서 그들을 강아지 다루듯이 합니다. 어쩌면 이도 일종의 모성애가 아닐까요.

 복면에 대해서 덧붙여서 이야기하자면 영화를 기획할 때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롤라의 난폭한 야생성을 강조하고자 호피 무늬 마스크를 씌우든가, 아니면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장면을 오마주해보자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 영화 마지막에 라껠의 이야기는 그려졌지만, 롤라의 행방은 끝내 나오지 않습니다. 롤라는 자신의 소망대로 휴양지에 가서 모히또를 마실 수 있었을까요?


 사실 대본에서는 롤라가 모히또를 마시러 브라질에 가려다가 공항에서 경찰에게 체포되는 결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를 비롯한 영화 제작진들이 롤라에게 정이 많이 들었기에 그녀가 다시 감옥에 가는 걸 원치 않아 그 장면은 촬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아마 제 생각에는 롤라는 은행을 턴 돈으로 멋진 섬에 가서 성형 수술도 하고 모히또도 마시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웃음)


▶ 마지막으로 한국 관객 분들께 메시지를 부탁드립니다.

 

일단은 이렇게 국제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고, 저의 영화가 상영되어 한국 관객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너무 기쁩니다. 저는 이 영화가 많은 한국 분들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한국에서도 '특별한 인질'이 정식으로 개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콜도 세라(Koldo Serra) 감독님 이력

 1975년 출생의 스페인 감독. 대표작으로는 게르니카 학살의 참상을 널리 알린 '게르니카(Gernika,2016)'가 있다. 산세바스티안 호러&판타지 필름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스페인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다수의 유명 영화제에서 수상 경력이 있다.  





글 / 씨네리와인드 김재령

보도자료 및 제보 / cinerewind@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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