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상영작] SICAF 개막작 <레드슈즈>
온라인 영화 매거진 '씨네리와인드'
(www.cine-rewind.com)
지난 17일에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2019)의 개막작으로 <레드슈즈>가 상영되었다.
23회를 맞이하는 SICAF는 ‘혁신적인 변화(Innovative Change)’를 주제로 영화제 부문과 전시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홍성호 감독의 <레드슈즈>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혁신적인 변화에 걸맞는 영화이기에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물론 이전 한국애니메이션과 비교하였을 때 그래픽, 기술적인 면에서는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스토리 내용면에서는 ‘혁신적인 변화’를 보기에는 어려웠고 여러 아쉬운 점들이 눈에 띄었다.
아직 개봉전이기 때문에 스포일러가 싫으신 분들은 주의하시길 바란다.
매력적인 일곱난쟁이, 하지만 보이지 않는 여주인공: 진취적인 여주인공? 글쎄…
애니메이션에서 매력적인 캐릭터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일곱 난쟁이/왕자이다. 각각의 캐릭터는 <아서왕 전설>, <잭과 콩나무>, <헨젤과 그레텔>, <피노키오>에서 모티브를 따왔으며 그 원작에 따라서 캐릭터의 영어 억양이 다르다. 일곱 난쟁이의 리더 멀린의 경우 원작 캐릭터는 서양의 유명 이야기인 <아서왕 전설>에서 따서 오되, 동양적 외모와 부적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등에서 동양적인 요소를 부여하였다.
하지만 개성이 뚜렷한 일곱난쟁이에 비해 메인이 되는 여주인공 레드슈즈(스노우 화이트 공주)의 경우 그 매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영화를 소개하는 글에 보면 ‘그 어떤 인물보다 중심이 확실하고 정체성이 강한 인물’, ‘진취적인 성격’이라고 나와있지만 영화 속에선 그런 모습을 보기 쉽지 않다. 특히 ‘정체성이 강한 인물’이라는 점은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다. 레드슈즈는 외적인 요소보다 내면을 중시한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인물의 몇몇 대사를 통해 이를 알 수 있을 뿐, 그 성격을 잘 드러내는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외모에 자존감이 낮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초반부터 구두로 자신의 모습이 변했을 때 일곱 난쟁이에게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기를 꺼려한다. 그녀가 내면을 중시하는 신념이 확실했다면 그에 맞는 행동들이 보여야 하는데, 오히려 그녀는 구두로 인해 변한 자신의 모습에 친절한 태도를 보이는 이들 때문에 그 신념을 접고 솔직한 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남자 주인공들에 비해 다양한 개성이 보이지 않는다. 내면을 중요시한다는 성격 외에는 캐릭터의 특징이 잘 보이지 않아 다른 인물들에 비해 평면적으로 그려지며, 내면을 중시한다는 면도 앞서 말했듯이 확고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레드슈즈는 ‘진취적인 성격’ 오히려 거리가 먼 인물이다. 아버지를 찾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해결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 일곱 난쟁이들로 변한 ‘왕자’들의 도움을 받는 수동적인 인물에 가깝다. 이러한 점은 그녀의 포스쳐(posture)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녀의 일상적인 액션은 그 반경이 작고 움츠러들어 있으며 팔을 가슴 쪽에 가까이 두는 등 소극적인 제스처를 보인다.
영화의 주제는 내면의 아름다움인데, 왜 불편하지?
<레드슈즈>는 포스터 슬로건 ‘모든 것이 뒤바뀐다’라는 말처럼 백설공주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면서 그 속의 이야기와 캐릭터는 완전히 새롭게 재창조하면서 ‘내면의 아름다움’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스토리가 그 주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불편함이 느껴지고, 캐릭터의 개연성이 떨어지면서 주제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
공주의 외모를 보고 마녀로 오인하여 구출해야 하는 공주를 공격한 일곱 왕자들은 다른 사람과 마주치면 일곱 난쟁이로 변하는 저주를 받는다. 이 저주를 풀기 위해선 가장 아름다운 공주와의 키스가 필요하다. 초록색 난쟁이로 변한 왕자들은 빨간구두 마법으로 인해 외모가 변한 레드슈즈를 보고 그녀가 가장 아름다운 공주라고 하며 그녀의 키스를 받기 위해 애를 쓴다. 그들이 그녀를 돕는 이유도 그녀가 아름답기 때문이고 저주를 풀기 위함이다. 레드슈즈는 그들에게 저주를 풀기 위한 아름다운 수단일 뿐이었던 것이다. 키스를 받기 위해 그녀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모습은 영화 중후반까지 이어지면서 영화의 주제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마치 ‘내가 이 정도 했으면 나에게 키스를 해도 되지 않아?’라고 요구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들은 만약 빨간구두로 인해 외모가 변하지 않았으면 아예 도와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일곱 난쟁이들이 레드슈즈와의 키스를 꿈꾸며 입술을 들이미는 장면들이 여러 번 나오고 이를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이는 오히려 영화에 대한 불편함을 가중시켰다.
이러한 불편한 점들이 내면의 중요성이라는 주제를 극대화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해보아도, 주제에 대한 설득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외모지상주의를 표하고 있던 멀린이 어떻게 외적인 것을 뛰어넘어 레드슈즈를 사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그는 영화 중후반까지 레드슈즈의 외적은 모습에서 끌려 그녀를 통해 저주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레드슈즈에게 키스를 받으려 하는데, 이 둘이 갑자기 사랑에 빠지는 모습은 당황스럽다. 키스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주가 풀리지 않고 그녀의 본모습을 본 멀린은 그녀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고민을 하게 되는데, 그 고민의 대사는 다소 실망적이었다. ‘레드슈즈가 과연 자신의 잘생긴 원래 모습과 초록색 난쟁이 모습 중 어떤 모습을 더 사랑할 거 같아?’라는 마음 속 질문에 멀린은 초록 난쟁이 모습이겠구나라고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묘사된다. (참고로 레드슈즈의 외적 취향은 멀린의 본모습과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그는 정말로 그녀의 내면에 반하여 레드슈즈와 사랑에 빠지게 된걸까?
OST 욕심
영화에서는 씬 상황에 맞는 음악을 집어넣음으로써 인물의 감정, 생각을 극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여 인물의 상황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고, 영화에서 청각적으로 새로운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모아나>와 같이 뮤지컬 형식을 취하면서 OST가 선풍적 인기를 끌기도 한다. <레드슈즈>도 뮤지컬처럼 캐릭터가 직접 노래를 부르지는 않지만 노래에 신경을 많이 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사가 있는 노래들이 뜬금없이 나오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노래의 등장이 매끄럽지 않고 ‘갑툭튀’하는 느낌이어서 영화의 흐름이 끊기는 느낌도 받았다. 요즘 애니메이션의 트랜드가 메인 테마가 되는 OST를 삽입하는 것이라 하지만, 오히려 영화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면 과감히 빼거나 좀 줄이는 방향은 어땠을까 싶다.
여러모로 욕심이 많았던 영화이다. 매력적인 캐릭터도 보여주어야 하고 각색된 스토리도 흥미로워야하는데 교훈도 있어야하고, 거기에 더해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유행될 만한 OST도 넣고 싶고. 이 모든 것을 다 만족시키려 하다 보니 내면의 아름다움이라는 주제를 이끌어내는 데 설득력이 부족하다. 조금 욕심을 덜어내고 스토리의 개연성 측면에 좀더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이다.
글 / 씨네리와인드 이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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