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쉽게 행복해지는 사람이 최애를 공유합니다
결혼하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나에게 시어머니가 처음 해준 음식. 이바지음식과 여행지에서 사온 선물을 두 손 무겁게 들고 시댁에 내려갔는데 김치찌개를 끓여주셨다. 얼큰해서 좋긴 한데 알 수 없는 서운함을 느끼며 한 숟가락 푹 떴는데 오잉? 웬 굴이 보였다. 제주도에선 김치찌개에 굴을 넣어 먹나? 궁금했지만 물어보긴 애매해서 그냥 먹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서운함은 저 멀리. 싱싱한 굴은 익히 먹어왔던 김치찌개보다 훨씬 시원한 맛을 냈고, 신김치의 톡 쏘는 알싸함을 적당히 중재해주는 역할도 했다. 찌개를 한 대접 퍼서 무심히 툭 내주신 어머님은 잘 먹는 내 모습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그제서야 밥상을 설명하셨다. 제주방언으로 하시는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남편을 쳐다보니 “엄마가 지금 몸이 안 좋으셔서 상이 부실하대”라며 번역을 해줬다. 어휴, 무슨 말씀이세요. 이렇게나 잘 먹고 있잖아요. 보란듯이 싹싹 긁어 먹고 “다음에 또 해주세요”라며 애교까지 부렸더니 허허 웃으셨던 어머님. 처음 알았다. 우리 어머님도 이렇게 웃으실 수 있구나!
아쉽게도 어머님표 굴김치찌개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날 이후 어머님은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서 몇 번을 쓰러지셨고, 이제는 보조기구가 없으면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 만큼 쇠약해지셨다. 밥솥에 밥을 안치는 것조차 못하시는 상황이니 찌개는 언감생심 바랄 수도 없다. 어느덧 결혼 15년 차를 향해 가고 그사이 어머님께 서운한 일도 참 많았다. 표현이 많은 나와 달리 말수가 적다 못해 대답도 잘 안 해주시는 어머님의 등 뒤에서 남편은 늘 “제주도 사람은 원래 그래”라는 말로 퉁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난 서운함이 깊어지기 전에 굴김치찌개를 떠올린다. 아들과 결혼한 육지 며느리 주려고 제철 굴을 사다가 김장김치 넘치게 썰어 끓였을 어머님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날 이후 어머님표 굴김치찌개를 못 먹고 있는 나보다 어쩌면 자기 손맛을 더 이상 발휘하지 못하는 어머님이 더 속상할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 때면 모든 서운함이 또 한 번 저 멀리 가버린다. 이렇게 굴김치찌개는 내 인생 최애 특식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