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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사랑법>Review: 멜로에는 우연이 있어!

멜로에는 우연이 있어야만 한다

by 영돌이

지난 몇 년간 한국 영화에서 개봉한 영화들을 돌이켰을 때, 온전한 의미에서 멜로라는 이름을 부여할 수 있는 작품은 몇이나 되었을까. 아마도 자극을 우선시했던 산업적 풍조로 인해 멜로물이라는 장르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것만 같다. 무엇보다 멜로란 장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모호함으로 인해 그 장르를 마주하는 것이 더욱 힘들어진 걸지도 모른다. 이처럼 멜로라는 것이 희귀해진 이 시대에 스크린을 통해 <대도시의 사랑법>을 마주한 순간의 첫 느낌은 반가움이었다.


여전히 멜로라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규정해야 할지, 혹은 여타의 평범한 로맨스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생긴 것은 아니다. 한때 멜로란 장르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 읽었던 벤싱어의 <멜로드라마와 모더니티> 또한, 500페이지의 텍스트 끝에 남겨진 것은 멜로란 장르에 대한 모호함만을 남길 뿐이었다. 그럼에도 <대도시의 사랑법>을 곱씹으면서 확신이 들었던 것은 멜로라는 이름을 부여하기에 충분하다는 점이다.

그 막연한 직감, 그리고 멜로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힌트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멜로 무비>였다. 멜로란 장르가 희미해진 이 시대에 멜로라는 타이틀은 꽤나 도발적이었고, 동시에 반가움 또한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마치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만을 다룰 것만 같았던 포스터. 어두운 배경 속에서 작은 조명 램프와 함께 두 남녀는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언뜻 보면 로맨스와 다를 것 없어 보이는 포스터의 이미지 너머 속에 있는 것은 멜로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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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영화를 사랑했던 남자, 그리고 영화에 애증이 가득했던 여자. 우연하게도 둘은 같은 촬영장에서 마주하고, 처음으로 입을 맞춘 다음날 남자는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비록 영화 속 세계에서 만들어진 인위적일지라도 수차례의 우연이 반복된다. 영화가 그토록 밉다던 여자는 감독이 되었고, 세상에 모든 영화를 다 보겠다던 남자는 어느새 평론가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남자가 이사한 집은 아주 오래 전부터 여자가 살던 옆집으로 그렇게 재회한 둘은 한참을 미뤄뒀던 드라마를 또다시 시작한다. 마치 지독한 우연 속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멜로 무비>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사실 남자가 오랜 시간 동안 그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랑하는 여자 못지않게 소중했던 형의 존재 때문이었다. 우연이라고 말하기보단 운명의 장난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맞겠다. 부모의 역할을 대신해 동생을 책임졌던 형은 성인이 된 동생의 모습을 마주할 즈음, 애석하게도 교통사고를 당하고 몇 년의 재활 끝에도 여전히 후유증은 남아있다. 애석한 운명이 몇 차례 반복되고, 두 형제가 서로를 여전히 사랑한다고 한들. 둘은 서로의 마음을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는 언어를 잃어버렸다. 애석하게도 동생의 형은 자신의 눈앞에 죽음이 드리웠음을 직감하고 있음에도, 여행을 가자는 말을 꺼내지 못한 채 또다시 자신의 언어를 입안으로 삼키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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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대도시의 사랑법>에 멜로란 이름을 부여하고 싶었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두 명의 남녀가 다정하게 얼굴을 맞대고 있는 이 영화는 지극히 평범한 로맨스 그 이상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마치 전형적인 로맨스처럼 캠퍼스에서 남자는 여자를 반복해서 마주치고, 유독 남자의 시선은 여자에게로 향한다.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은 호기심일까? 혹은 사랑일까? 그리고 로맨스처럼 보였던 이 두 남녀의 만남은 이태원 골목길에서 우연한 마주침을 통해 멜로로 변주된다. 골목길의 어둠 속에서 남자는 카메라의 시선 바깥에 위치한 누군가의 입술을 탐하고, 여자는 그 모습이 흥미롭다는 듯 다가간다. 곧이어 카메라는 남자와 입술을 섞었던 대상을 비추고, 여자의 정지된 얼굴과 함께 그 대상의 정체 또한 드러난다. 정지된 것은 여자의 얼굴뿐만이 아니다. 철저하게 로맨스의 문법을 따르는 것처럼 보였던 이 영화의 관객들 또한 남자와 입을 맞추던 또다른 남자의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 일종의 어색함을 마주한다.


이를 기점으로 <대도시의 사랑법>은 멜로의 스테레오 타입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온전하게 빗겨나간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미친 여자와 게이의 우정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우정은 여느 남녀의 로맨스보다 아름답기에 멜로라는 이름을 부여하기에 합당하다. 둘 사이에서 반복되는 우연은 두 남녀의 우정에 애틋함을 더하고, 동시에 기묘한 운명은 둘의 마음을 온전히 담지 못하는 언어로 인해 오해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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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인파가 가득한 날 이태원의 골목길에서 마주치지 않았다면. 아웃팅의 위기에 처한 순간 여자가 갑자기 다가와 라이터를 건네지 않았다면. 동기들 앞에서 여자가 가슴을 깐 그날 남자가 다가와 라이터로 불을 붙여주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들의 우정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연한 사건들이 중첩되어 그들의 우정은 비로소 시작된다. 그렇게 남들이 보기에 기묘해 보일지도 모르는 미친 여자와 게이의 동거가 시작되지만, 애석하게도 이들의 우정이 애틋해질수록 언어로 풀어낼 수 없는 오해도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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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오해가 있다한들 둘은 서로가 너무 소중한 것을 알기에 여전히 서로를 이해할 뿐이다. 다만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순간 둘 사이에 균열이 쌓여간다. 평생 젊음을 함께 할 줄 알았던 여자는 취업 준비를 시작하더니 대기업에 합격했고, 둘 사이에는 미묘한 이질감이 형성된다. 가장 큰 문제는 여자에게 생긴 남자친구의 존재다. 은근히 여자에게 눈치를 주고, 알게 모르게 남자친구의 눈치를 살피는 여자. 남자는 누구보다 소중한 자신의 친구를 아끼지 않는 모습에 화가 나지만 여자를 위해서라도 참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긴 이질감으로 인해 둘 사이는 예전과 달리 미묘한 어색함이 잔존한다.


이질감과 어색함 때문일까. 애초에 미친 여자와 게이의 우정은 불가능했던 것일까. 어느 날 아침 갑작스럽게 여자의 남자친구가 집에 찾아오고, 그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는 그 모습을 마주한다. 자연스럽게 남자친구의 주먹은 여자를 향하고, 당황한 여자는 어떻게든 남자를 보호하기 위해 그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린다. 악의가 있거나 혹은 단지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게다가 현재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 외의 특별한 묘수가 있지도 않았다. 오롯이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럼에도 남자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조차도 자신의 취향을 고백하지 못했기에 여자의 그 말이 너무나도 아프게 다가온다. 마치 운명의 장난과도 같은 상황이 그들의 눈앞에 벌어졌고, 이로 생긴 오해는 어떤 언어로도 해소될 수 없었다.


우연함과 기묘한 운명. 이야 말로 멜로의 본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우연한 마주침이 반복되어 시작되는 두 인물의 드라마는 아름답다. 그러나 운명은 이들의 애틋함을 쉽게 허락하지 않고, 언어로 풀 수 없는 오해를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멜로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 로맨스보다 관객들의 가슴에 더욱 깊이 남겨질 것이다. 판타지로 포장된 채 남녀의 사랑을 예찬하는 로맨스와 달리, 멜로는 사랑과 비극의 모호함을 담았다는 점에서 우리의 삶과 몹시 닮아있다. 무엇보다 멜로는 설사 비극적인 결말을 맺을지라도 여전히 아름답다. 마치 여자와 남자가 때때로 얼린 블루베리를 생각하며 서로를 곱씹는 것처럼, 멜로 영화 속 두 인물은 서로에 대한 좋은 기억을 떠올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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