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지금은 내가 뭘 좋아하는 지, 뭘 하고싶은 하나도 모르겠어
성혜가 살고 있는 나라는 온통 흑백이다. 성혜의 친구는 고시원 월세가 없어 자살 했다. 더 비참한 사실은 한달 동안 방치되어 옆방의 신고로 발견 된 것이다. 또 다른 친구는 꿈을 이뤄 연극 단원이 되었지만 꿈은 꿈으로 남아있어야 한다며 자신은 이제 다른 것을 시도할 자신이 없다 말한다. 편의점 폐기로 매일 밥을 때우며 위염과 공황장애로 신체적, 정신적으로 병이 들어간다. 꿈도 희망도 없는 나라, 그것이 바로 성혜의 나라이다.
주인공 성혜는 29살 취업 준비생이다. 4년 전 좋은 회사에 취직했지만 상사의 성추행으로 인해 퇴사한 뒤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편의점과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성혜는 쉬지 않고 일을 하지만 돈은 모이지 않는다. 거기에 갑작스런 아버지의 입원 소식은 아버지에 대한 안부를 묻기 보단 빠져나갈 입원비가 더 신경이 쓰인다. 7년간 만난 남자친구는 공무원 준비를 하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다. 그저 모텔비를 아끼기 위해 성혜의 집에 가면 안되냐는 말을 한다. 집의 보증금은 올라가고 성혜의 삶은 빛을 잃어간다.
성혜가 힘들때마다 가는 펫샵의 강아지를 보는것만이 그녀의 유일한 힐링이다. 키우고 싶지만 자신의 삶에 또 다른 생명을 거둘 여유가 없다. 신문 배달을 할 때마다 고물 오토바이는 망가지기 일쑤고 편의점에 오는 학생들은 라면을 먹고 치우고 가지도 않는다. 성혜는 너무 힘들다. 성혜는 정신과에서 받아놓은 수면제를 모으면서 자신의 고통 또한 차곡차곡 담아두고 있었다.
“요즘같은 세상 착하기만 해서 어떻게 살아 남 뒷통수도 치고 저밖에 모르고 그래야 살아남는데”
성혜의 남자친구, 아버지 그리고 성혜처럼 이 세상은 착하기만 해서는 살아남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몰라야 살아남는다. 그렇게 살지 않는다면 낙오 당한다. 성혜는 회사에서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지만 회사사람들은 그 어떤 증언도 해주지 않는다. 증언을 하면 회사 다니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성혜였다면? 성혜의 직장 동료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착하게 살라는 말은 더이상 성혜의 나라에선 용인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성혜의 부모님이 음주운전 차량에 의해 사망한다. 가해자는 국내의 잘나가는 사업가의 아들로 합의금으로 3억을 지불하겠다고 한다. 경찰의 말에 의하면 합의하지 않아도 그들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 빠져나갈테니 합의금을 두둑하게 받는게 더 이득이라고 말한다. 성혜의 나라는 그런 곳이다. 부모님이 억울하게 돌아갔지만 어디에 털어놓을 곳이 없다. 성혜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말한다.
“몸값 참 비싸다”
“차라리 돈을 더 받자, 5억 받고 오빠 일자리도 달라고 하면 되겠다.” 실감이 나지 않는 부모님의 죽음은 5억이라는 돈 앞에 희석된다. 그렇게 성혜는 5억이 생긴다. 갑작스럽게 생긴 돈 5억은 성혜를 변화시킨다. 성혜는 모든 아르바이트를 그만둔다. 얽매였던 모든 것을 정리한다. 그녀는 하나씩 자신의 위시리스트를 실현시킨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화장하기, 그리고 전에 일했던 편의점으로 가 폐기가 아닌 비싼 도시락 먹기, 비싼 자전거 사기, 그리고 친구를 만나 맛있는 것을 먹고 술을 마시며 삶을 한탄한다. 그리고 묻는다. 너는 5억 있으면 뭐할래?
“5억으로 뭘 할 수 있을까?”
“글쎄? 너라면 뭐할거야?, 나라면 집 부터 하나 사고, 집 사면 끝이겠다. 그럼 집은 나중에 사고, 가게나 할까”
“무슨 가게?”
“카페? 아니다 술집 하나 해야겠다. 근데 술 좋아하는 사람이 술집 하면 망한다는데 술집 하면 안되겠다.영화나 한편만들까 아니면 유학, 넌 뭐할 건데? 뭐하고 싶은거 있어?”
“글쎄”
“너 그림 그리고 싶어했잖아. 미대가려다 돈 많이 들어 포기했다며, 다시 시작해봐, 그림공부”
“글쎄, 이제 흥미 없어. 솔직히 지금은 내가 뭘 좋아하는 지, 뭘 하고싶은 하나도 모르겠어”
“슬프다. 우리도 내년이면 서른인데 꿈도 사랑도 청춘도 다 끝이구나”
성혜는 모아두었던 수면제를 다 버린다. 그리고 성혜는 결심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성혜는 위시리스트에 적은 풍경 좋은 집에서 키우고 싶던 강아지를 키우며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갑자기 나에게 5억이 생긴다면 가장 먼저 뭘 할까? 아마 나도 성혜와 똑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성혜는 쉼없이 달려왔다. 성혜의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다. 성혜의 나라는 자본이 없다면 몸이 망가져도 닥치는 대로 일을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낙오되기 때문이다. 또 착하게 살아선 안된다. 뒷통수 맞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돈 5억으로 무엇을 해야하는가? 그냥 연금을 매달 받으며 아무 것도 안하고 지내는 것이다.
치열하게 살아가느라 하고싶은 것과 좋아하는 것을 잃어버린 성혜는 날벼락 맞는 확률이 아닌 이상 돈 5억은 손에 쥘 수 없다. 복권당첨 같은 일확천금의 대가(代價)는 크다. 부모님의 사망, 그리고 그 상대가 재벌이라는 얼토당토 않는 확률이 아닌 이상, 성혜의 나라에서는 큰 돈을 벌 수 없다. 그러나 벼락맞을 확률이 일어나고, 성혜는 그 돈을 가지고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고, 못샀던 사고 점점 웃음을 찾아간다. 성혜의 나라에서는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 현실적인 대책은 없다. 그 돈으로 무언가를 재생산하거나 새로운 꿈을 찾아 떠나거나 하지 않는다.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는것, 그것이 성혜의 나라다.
성혜의 나라는 몸이 망가져라 일을 해도 돈은 모이지 않는다. 집 값은 오르고 자신이 살 집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위염은 달고살고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불안증세에 불면증은 일상이다. 취업 시장 1차에서 매번 떨어지지 운 좋게 면접을 봐도 결국은 떨어진다. 면접장에서 성혜에게 물어보는 질문은 남자친구는 있는지, 결혼은 할 것인지를 묻는다.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시나요?” 자신의 직무 역량이 보다 부모님의 경제력을 보는 것, 그리고 여성인 자신의 이성친구의 유무가 더 중요하다.
부모님이 가진 자산, 땅이 없으면 자식들의 가난은 세습된다. 부모님을 탓해보기도 하지만 아무리 엄마에게 소리치고 화를 내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저 착하기만한 아버지는 빚보증을 잘못 서 모든 돈을 잃고 어머니는 이제 쉬셔야할 나이에도 계속 일을 하신다. 남자친구의 사정 또한 다르지 않다. 계속해서 낙방하는 공무원 시험, 싼 고기조차 진수성찬으로 느껴지며 헤어짐을 통보 당해도 못 먹은 고기가 아른거려 다시 먹기 위해 화도 마음대로 내지 못하고 돌아온다. 이곳이 성혜의 나라이다.
*현재 한국은 자살률, 지난해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전년 대비 25.5% 늘었다. 올 1∼8월 자살을 시도한 사람 중 20대 여성이 32.1%로 전 세대∙성별 통틀어 가장 많았다. 실업률,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9월 여성 고용 동향 자료에 따르면, 여성 실업률은 3.4%로 작년 9월보다 0.6% 늘었다. 그중 20대 여성의 실업률은 7.6%로 가장 높았다.
여성의 고독사가 늘어나고 취업의 문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좁아지고 있다. 비단 여성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작년 11월 취업자 수가 9개월 연속 감소하며 국제통화기금(IMF)발 외환위기 시절의 ‘고용 한파’에 비견되고 있다. 특히 청년층(15∼29세)의 취업자 수, 고용률, 실업률 등 모든 수치가 최악을 가리키며 얼어붙은 취업시장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통계청이 16일 발표한 ‘1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취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7만3000명 감소한 2724만1000명을 기록했다. 지난 3월 이후 9개월 연속 감소하며 외환위기 때 1998년 1월∼1999년 4월 연속 감소한 이래 최장기간 감소했다. 3.4%의 실업률 역시 11월 기준 2004년(3.5%) 이후 16년 만에 최고치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병이 들어도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한다. 성혜의 나라는 성혜에게 살아보라고 위로하지 않는다. 성혜의 나라인데도, 성혜의 세상인데도 성혜는 극심한 겨울의 추위처럼 고독하고 쓸쓸하게 버티고 있을 뿐이다. 이 현실을 누구의 잘못이라고 탓할 수 있을까? 세상을 탓하고, 정부를 비난하고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고 부모님에게 화를 내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돌고 돌아온 누구의 잘못인가의 결론은 나로 귀결된다. 이 아픔과 병은 누구때문에 온 것인가? 결국은 내가 못나서, 내가 잘못해서 자신을 탓하기 일쑤다. 어떤 이가 말했다. 이 세상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라고, 그런데 그 세상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게 참 고달프고 애석하다.
*출처 : 여성신문(http://www.wome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