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5 결혼 사유 5
닫힌 문은 아쉬움에 한번 돌려 볼 손잡이도 안 달려 있었어. 난 다시 상황을 직시하고 RDC(한국식 1층)으로 내려왔고, 우편함 근처에 혹시 나뒹굴고 있을 열쇠공 스티커나 리플릿을 찾아보려 중간 문을 열고 나가려다 멈췄어.
‘아. 이 문도 열려면 Vigik 키가(카드 키 비슷한 동그란 열쇠) 있어야 하지’
난 중간 문을 붙잡은 채 로비를 두리번거렸고, 우편함 밑 쓰레기통 속에 전단지를 발견했지만 두 발자국 멀어 보였어. 신장의 한계로 가지고 오는 것을 실패하고, 눈을 찌푸리며 시력을 최대한으로 높여 숫자를 읽어보려 했지만 보이지 않았지.
포기하고 다시 문 앞으로 올라온 후 잠시 계단에 걸터앉아 고민했어.
그때 왜 난 네가 떠올랐을까. 구글에 검색해서 지역 열쇠공을 찾아본들 너보다 믿음직해 보이지 않아서였을까. 문 따는 기술이 사실 별거 없는데 못 따도 50€, 따면 120€를 내기 싫어서였을까. 그냥 너를 다시 보고 싶었을까. 고민 끝에 난 너에게 전화를 걸었어
“어.. 안녕? 오랜만이야. 응 한국에 잘 다녀왔어.
응. 너는? 근데… 갑작스레 미안한데 혹시 도와줄 수 있을까? …응… 아니… 그게 문이 잠겼어 열쇠를 깜박했지 뭐야.
내 스페어 키를 가진 친구도 한국에 있고.
응.. 뭐? 지금 바로? 회사 아니야?
아 곧 점심시간이라 미리 나와도 상관없다고?
그래.. 그럼 문이 열리면 점심은 우리 집에서 먹어.
한국에서 가져온 음식이 조금 있어. 어어 그래 이따 봐.
도착하면 문자해”
회사에서 온다더니 옆집에서 왔나. 넌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어. 난 늘어난 티셔츠를 최대한 뒤로 당겨 정리하고 슬리퍼를 고쳐 신고 로비로 내려갔어.
“일찍 도착했네! 와줘서 고마워”
너의 살짝 땀이 난듯한 어깨를 가볍게 쥐고 비쥬를 하며 인사를 건넸어. 오랜만에 비쥬 하려니 영 어색하네.
“회사가 근처야. 여기서 아주 가까워. BNF 근처거든”
“뭐? 나 다니던 학교도 그 근처인데!”
“아 정말? 가까웠네?”
“근데 뭐 타고 왔어? 아무리 그래도 되게 빨리 도착했는데?”
작은 근황들을 물으며 계단을 올라갔고 굳게 닫힌 자주색 문 앞에 섰어.
“여기가 내 집이야. 문에 이중 잠금장치는 없는데 열쇠 홈이 조금 구부러지게 파였어”
넌 진지한 눈으로 문을 밀어보며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회사에서 가져온 투명 파일을 밀어 넣을 틈을 찾기 시작했어
“틈이 조금 뻑뻑하긴 한데, 필름이 들어갈 거 같아”
그러곤 열쇠 자물통에서 한 뼘 반 위로 비스듬히 파일을 끼워 넣더니 밀어 내리며 걸쇠의 위치를 찾아가다 열쇠공 못지않은 스피드로 파일을 빠르게 위아래로 잡아 당기 시작했어. 하지만 얇은 파일은 얼마 가지 않아 찢어지고 말았지.
“파일이 너무 얇아서 안 되겠다. 이 근처 슈퍼가 어디야?”
“아! 큰길로 나가서 길 건너서 바로 왼쪽에 있어”
“금방 갔다 올게”
그 말과 동시에 넌 화재 시 출동하는 소방관처럼 재빠르게 계단을 튀어 내려가더니, 페리에 한 병을 사서 돌아왔지. 그러곤 탄산도 센 페리에를 꿀꺽꿀꺽 원샷을 하더니 슈퍼에서 사 온 가위로 페트병을 다급하게 자르기 시작했어.
“안에 죽어 가는 사람은 없으니까 천천히 해도 돼. 네가 빨리 회사에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니라면”
“아. 괜찮아 다 잘랐어”
그러더니 펴진 페리에 페트병을 밀어 넣어 이쯤 되면 120€를 내야 할 거 같은 전문적인 동작으로 문을 열기 시작했어.
찰칵
힘없이 스르륵 문은 열렸고, 난 기뻐 소리쳤지
“와! 브라보! 고마워! 정말!”
넌 다시 머쓱한 미소를 띠운 채 주섬주섬 페리에 껍데기를 치우며 괜찮다고 집에 들어가게 돼서 다행이라며 대답했어.
“아직 시간 있지? 한국에서 가져온 김치랑 반찬이 있는데 먹을래?”
넌 망설이다 대답했어
“고마워. 그런데 바로 돌아가야 할 거 같아.”
“어? 그래… 조금 시간이 촉박하긴 하겠네. 그럼 고마우니까 다음에 내가 근사한 밥 살게.”
“그래. 그럼 추울 텐데 들어가서 쉬어”
너의 계단 내려가는 소리를 유심히 듣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 너무 빠르진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