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때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으려고 행했던 방법은 가만히 하얀 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고 한다.
어느 구체적인 형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에 자신이 어떤 형상을 만들어낼 때까지 바라보고 있는, 일종의 면벽 수련.
벽 위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인간의 의식은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오만가지 형상을 떠 올린다고 하는데 스쳐 지나가는 그 수많은 형상들 중 하나를 잡아냈다고 한다.
아무것도 없는 숲 속에서 혼자 벽을 쌓는다는 게 그렇게 정신적으로 힘들 줄은 몰랐다.
잠시 기계를 멈추고 있노라면 숲 속의 적막은 금세 나를 집어삼켜 다시 스위치를 켜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도 말을 거는 사람이 없자 머릿속이 스스로에게 말을 걸고 답하는 과정이 몇 주 간 나를 괴롭혔다.
지붕을 올리던 날에서야 해방감 같은 걸 느꼈다.
아직도 눈높이 이상의 탁한 벽과 마주하던 몇 주를 떠올리면 속이 안 좋다.
덕분에 예정에 없던 창문도 하나 더 만들었다.
어두운 색의 벽 위로 봤던 것들은 꿈에서도 나타나 날 괴롭히더라.
언젠가 면벽 수련을 할 요량이라면 밝은 색의 벽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