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에세이] 나는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서로가 서로의 생태계

by 최우주

[음악 에세이] 나는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서로가 서로의 생태계



<1> 천재 친구


나는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거기에는 나에겐 없던 꿈에 대한 열망이 있다. 아니, 어쩌면 내게 없던 건 꿈이 아니라 재능이었는지도 모른다. 10대 시절 서태지를 비롯해 록 밴드 음악에 심취했던 나는 뭔가 음악적인 것을 하고 싶었다. 밴드 악기를 연주하거나 작곡을 하거나 했으면 했다. 하지만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손이었고, 그래서 귀만 혹사할 따름이었다.


다른 이유였지만 비슷하게 기타를 잡았던 동네 친구는 갑자기 작곡을 했고, 독학으로 피아노를 쳤다. 어느 날 교회에 가보니, 드럼도 치고 있었다. 나는 그 친구보다 더 많은 앨범을 수집했고, 더 많이 들었기에 더 잘 알았다. 친구는 음악을 잘 몰랐지만, 자작곡을 써서 부르고 발표했다. 나는 그 노래를 비평할 수 있었지만, 친구는 “아, 그래?”할 뿐. 그렇게


‘천재가 아닐까?’ 생각했던 친구는 장성하여 공무원이 됐다.

알고 보니 세상에 널린 게 천재였다.


노력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이지만, 그 노력도 계속하려면 일정한 재능이 있어야 한다.



<2> 개발과 개손


개 같은 발을 가진 친구의 특별훈련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축구를 하려고 편을 가를 때마다 매번 마지막까지 남던, 팀의 벌칙 같은 녀석이었다. 가진 재능에 비해 너무 축구를 좋아하던 개발이는 축구 전략에 대해서 혹은 축구 선수들의 능력에 대해서는 척척박사였다. 그래서 관련 이슈가 나올 때마다 입을 털곤 했는데, 그가 가진 박식한 지식은 도리어 그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 “야, 개발아, 네가 터는 입의 반의반의 반만이라도 해줬으면, 우리 편이 그리 발리지는 않았을 텐데. 응? 새끼야~!”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가다가 소변이 마려워 임시 설치된 학교 야외 화장실을 가는데, 누군가가 어둠 속을 달리고 있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보니 개발이었다. 개발이라 드리블에 계속 실패하여 허구한 날 달리고 있다. 자고로 드리블의 핵심은 공을 발에서 너무 떨어뜨리지 않는, 즉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조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개발이에게는 그런 발이 없다. 그는 내게 방법을 좀 알려달라고 했다. 듣자 하니, 벌써 2주일째 특훈 중이란다. 응? 어제 함께 했던 시합에서도 개발이는 압도적인 개발이었는데!


나도 뭐 그리 대단한 실력자가 아니었고, 이론은 개발이가 빠삭했기에 나는 그냥 내가 하는 스타일을 보여줬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시범이었다. 하지만 개발이는 대단하다. 일부러 그러기도 힘들 것 같은 동작을 하며 공을 튕, 튕, 차버리는 것이다. 이건 드리블 연습이라기보다는, 공 주우러 다니는 체력 훈련이었다. 이 짓을 2주째 하고 있다니. 그런데도 저렇게 트위스트를 추고 있다니.


다음은 슈팅 연습. ‘어차피 공격수를 시켜주지도 않고 슈팅할 기회 자체가 없는데, 왜? 뭐, 연습이니까.’ 했지만, 그것도 슈팅 연습이라고 하기 뭐 한 그런 거였다. 트위스트 드리블과 그리 다를 바 없는 궤적으로 공을 보낼 뿐이었고, 또 공 주우러 다니는 체력 훈련이었다.


아니, 벽을 맞춰서 튕겨져 나오게끔 임팩트를 주라고! 디딤 발을 여기에 놓고. 발가락 끝이 아니라 발등이나 발 안쪽으로.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음, 이번에는 내가 공 주어 올게.


개발이는 미안해했고, 그보다 더 자신을 민망해했다. 혐오하진 않았으면 한다.


특훈 사실을 알고 난 후 나는 개발이를 끝까지 남기지 않고 그전에 뽑았다. 애들은 의아해했지만, 나는 쓸모를 찾으려 애썼다. 물론 그 학기 내내 개발이는 계속 개발이었고, 체육시간에 치른 드리블 시험도 형편없었다. 나는 그래도 처음 봤던 수준보다 아주 조금은 향상되었다는 것을 눈치챘기에 독려했다. 하지만 개발이는 자신 때문에 팀이 졌다는 소리를 또 들었고, 나의 응원을 믿지 않았다. 특훈도 관뒀다. 특훈의 효과는 대단하진 않아서 개발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애매한, 역시 개발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그 대단한 발이 내게는 손에 달렸다. 나는 개손이었다. 삼촌에게 빌린 기타를 가지고 특훈을 했지만, 개손이 아니라고 하기에 애매한 수준으로만 향상되었다. 그런 평가는 외부의 평가에 의해 확정된다. “야, 그냥 기타 말고 딴 거 하지? 탬버린 같은 거. 짤랑짤랑” 이따위 소리를 반복적으로 듣게 되면 계속할 의욕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개발이는 다음 학년 때도 계속 축구를 했을까?


이후에도 나는 기타를 왕왕 쳐왔다. 그 사운드를 도무지 사랑하지 않을 방도가 없었던 탓이다. 용돈을 모아 통기타를 샀고, 취미 삼아 치는 세월이 무려 25년이 됐다. 그러니 이제 개손은 아닌 수준에는 도달한 것이다. 드디어 나도 입문을 넘어 초보 기타리스트 정도쯤은 됐다. 그러니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그렇지 개발아?

그런 내게 거짓말을 못해서 코가 길어지지 못한 친구가 와서 말했다.


“이놈아, 개손이니깐 25년을 치고도 초보인 거야!”


“응?!”



<3> 서로가 서로의 생태계


좋아하는 일이라도 재능의 씨앗이 있어야 자란다. 모든 씨앗이 다 싹을 틔우지는 못하지만, 그마저도 없다면 노력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개 중에 잘난 씨앗이 탁월한 열매를 맺게 되는데, 그 나무의 애씀도 대견하지만, 더 중한 건 생태계 그 자체다. 한 명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기보다는 만 명의 경쟁자와 동료, 그리고 그 산업의 생태계가 그 한 명이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만든다. 그러니 생태계의 일부로서, 썩어 자연의 양분이 되는 씨앗도 무수히 필요하다.


나는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거기에는 내가 가지 못했던 한 세계가 있다. 이제는 사랑하는 아내와 안락한 소파에서 방송을 보지만, 살벌한 땀을 흘리고 있는 꿈을 보고 있으면 여전히 찡하다. 아무쪼록 서로가 서로의 생태계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전 19화[음악 에세이] 올해의 앨범보다 더 좋은 보통의 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