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시장
남산 자락을 따라 해방촌의 꼭대기에 이르면, 남서 사면에 작은 골목형 시장 ‘신흥시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전형적인 ‘달동네’를 떠올리게 하는 이곳은 가파른 경사와 계단, 층층이 쌓인 주택 위에 작은 상권이 얹힌 구조를 지닌다. 해방촌은 1945년 해방 이후 해외에서 돌아온 동포들, 한국전쟁 피란민, 실향민들이 모여 형성한 동네다. 판잣집과 블록집으로 시작된 이곳은 ‘해방 이후의 정착촌’이라는 이름 그대로, 전쟁이 남긴 가난과 이주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신흥시장은 이런 배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장터로, 동네 주민들이 생필품과 먹거리를 팔기 위해 집 앞에서 좌판을 벌이며 시작됐다. ‘새롭게 일어난다’는 뜻의 ‘신흥’이라는 이름도 그렇게 붙었다.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은 한 번쯤 느꼈을 것이다. 집과 가게가 뒤섞이고, 생활과 상업의 경계가 흐릿한 시장의 구조는 다른 전통 시장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신흥시장은 전형적인 상업 지역이 아니라, 거주 공간 안에 장터가 스며든 살아 있는 생활공간이기 때문이다.
1960-70년대, 인근 용산의 미군기지는 해방촌 일대 생계의 축이었다. 이태원이 미국을 대상으로 한 상업・유흥의 거리로 성장하는 동안, 해방촌에는 봉제공장과 소규모 공업소들이 들어섰다. 이태원-경리단길이 다문화와 소비를 상징했다면, 해방촌은 그 이면에서 노동과 거주가 얽힌 삶의 골목이었다. 봉제와 니트 산업의 호황은 동네에 활기를 불러 넣었고, 일자리를 찾아, 생필품을 사러 사람들이 해방촌에 몰려들었다. 50-60년대의 판잣집은 점차 허물어졌고, 시멘트 건물들이 올라가며 슬레이트 지붕으로 덧씌워졌다. 골목은 점점 더 빽빽해졌고, 이웃 간의 관계도 더 밀착됐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산업의 쇠퇴는 골목의 활기를 앗아갔다. 슬레이트 지붕은 햇살과 바람을 막았고, 낡은 계단과 난간은 이웃 간의 오르내림을 어렵게 했다. 폐쇄된 구조는 사람들 간의 숨통까지 틀어막았고, 골목은 ‘위험한 동네’라는 인식이 퍼져 외부인의 발길을 멀어지게 만들었다.
2015년, 서울시는 해방촌과 신흥시장을 ‘도시재생활성화지역’으로 지정했다. 노후한 하수관, 조명, 보행로를 정비하고, 주택을 리모델링했으며, 방범 시설도 강화했다. 무엇보다 침체된 상권을 회복하기 위해 건물주들과 임대료 동결 및 상승 제한 협약을 맺고, 청년 창업자와 외부 창업자들을 위한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이 시기, 이태원-경리단길은 상업화 과잉과 임대료 급등, 프랜차이즈의 확산으로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을 때였다. 로컬 오너들은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낮고 공간의 진정성이 남아 있는 곳을 다시 탐색했고, 소비자들 역시 상업화가 덜 된 장소가 가진 매력을 선호했다. 이태원-경리단길의 젠트리피케이션에서 밀려 나온 수요는 인접한 해방촌-신흥시장으로 옮겨갔다. 물리적 환경의 개선, 골목 단위의 경험이 살아 있는 장소성, 오래된 주거지 특유의 정서가 맞물리며 해방촌-신흥시장은 새로운 매력을 갖춘 동네로 다시 태어났다.
골목이 가진 특유의 정서와 함께 새로운 감각이 만들어낸 이중성은 또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며 흔히 ‘핫플’이라는 명소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2024년, 신흥시장은 다시 한번 주목을 받는다. ‘도시재생활성화’ 프로젝트 일환으로 기존 골목에 자리하던 석면 슬레이트 아케이드를 철거하고, ETFE 막 구조의 투명한 지붕 ‘클라우드(Cloud)’가 설치되면서다.
카메라 삼각대처럼 세워진 기둥 위로 골목 전체를 감싸는 구조물은 빛을 통과시키면서 비와 눈을 막아주는 가림막 역할을 한다. ‘우산처럼 골목을 덮는 지붕’이라는 개념 아래, 구조물은 ㄷ자 형태로 이어지는 시장의 동선을 따라 구조물이 배치되었다. 길과 길이 교차하는 지점마다 세워진 기둥은 업장의 간판이나 진입로를 가리지 않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었고, 그 배려의 흔적은 시장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골목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처음의 자리로 돌아왔다. 어느새 시장 골목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작은 상점과 주택들이 어깨를 맞댄 골목은 활기로 가득하다. 산업이 호황 하던 그때도, 이 골목은 이런 풍경이었을까. 해방 이후 정착촌에서 시작된 해방촌의 역사는 좁은 골목 어귀, 겹겹이 쌓인 건물과 상점 사이에 여전히 남아 있다. 산업의 흥망과 도시 변화의 물결 속에 이곳은 한때 잊혔고, 지금은 또 한 번 스스로 활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글, 사진 | citevoix
내용참고 | 서울시 '내 손안에 서울'. SH도시재생포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