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구성하는 것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조적인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구조적인 취약성은 혼란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며, 끊임없는 내부 갈등은 분열을 초래할 뿐이기 때문이다.
사회를 설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안정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내려는 것은 화학자들이 안정적인 분자구조를 만들어내려는 노력과 다르지 않다. 즉, 내부 에너지의 균형을 이루어 안정성을 구축하려는 시도가 정치 행위의 본질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구조에서 어떤 것이 안정성을 창출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일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채택하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출발점이 사실은 민주정이 아니라 귀족정의 개념, 아리스토텔레스적 설명으로 배분적 정의의 개념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 대중의 자기 지배라는 것에 비추어 볼 때, 대의제라는 개념은
애초에 민주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선거를 통해 일반 대중보다 높은 수준의 지적 능력과 판단력을 가질 것이라 판단되는 사람을 뽑아 지배를 맡긴다는 것이 어떻게 대중의 자기 지배라는 것인가?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것은 민주주의가 도덕적 가치로 추앙받는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사회적 계약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어 스스로가 지배되면서도 자유롭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결국 사회의 본질적인 구조는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으로 양분되는 것이고, 미켈슨이 이야기했던 과두제의 철칙에 따라 소수의 엘리트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다수의 대중은 무관심에 놓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원주의의 이익집단 이론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결국 그 이익집단 내에서도 결국 권력을 가지는 것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지배와 피지배, 엘리트와 대중의 존재를 변수가 아닌 상수로 둔 채 사회구조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평등한 사회구조라는 환상을 거두고 장막 뒤의 지배계층의 존재를 명확히 인식하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안정적인 사회구조란, 엘리트와 대중 간의 불안정성을
제거하고, 그 두 계층 사이의 순환구조를 잘 유지하여 한쪽에 에너지가 과도하게 축적되는 것을 방지하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대의제 민주주의는 구조상 이러한 목적에 가장 잘 부합한다고 여겨지기에 채택되고 있는 것이다.
대중은 사회계약론 사상을 바탕으로 선거를 통해 정치 엘리트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잠시 양도하는 것이고, 이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하였을 시 저항권을 발동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계약은 허구적인 것이며, 그들이 저항할 수 있는 권리는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고, 오히려 기존의 권력구조에 의해 탄압받는다. 하지만 대중이 그런 사상적 배경을 가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피지배층이 지배된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하는 데에서 저항의 동기를 잃어버리게 한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자신의 권리가 침해될 때 자신이 저항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자신들이 우위에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서는 절박함이 사라진다. 절박함이 사라진 대중은 결속력이 없다. 이런 이데올로기적 지배력을 통해 소수의 지배층이 다수의 피지배층에 대한 실질적 우위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의제라는 정치체제가 지배의 용이성 때문에만 채택된 것은 아니다. 이 체제는 권력 엘리트 사이의 상호 견제와 순환을 촉진하고 경쟁을 유발함으로써 결국 그들이 얻게 되는 전체적인 복리를 증진하기 때문에 채택된 것이다. 이는 시장경제와 동일한 논리로, 대의제는 정치를 하나의 시장으로 확장시키고 시장 내부에서 정치 엘리트들 사이의 담합을 방지한다면, 자신의 권력을 확대하려는 경쟁이 결국 전체적인 파이를 키우는 방향으로 변모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대중에게 있어 대의제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결국 대중이 엘리트들 사이의 권력 담합을 어떻게 방지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권력 엘리트 사이의 담합은 곧 독재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실패한 대의제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은 권력 엘리트들이 대중과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대중이 지배층의 경쟁에서 제외된 상태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천연자원이나 해외의 원조, 차관 등을 통해서 지배층은 대중을 저학력, 저소득자로 남겨두면서도 자신들의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것이고, 그들을 통제할 자원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는 지배층에게 경쟁의 동기를 제거하고 담합을 통해 해외 자본과 결탁하여 국가의 부를 착취하도록 한다. 지배층 내부의 경쟁 동인이 사라진 대의제 국가는 착취를 구조화하고, 대중을 국가에서 밀어내거나 방치한다. 그런 사회구조에서 인구는 자원이 아닌 비용이기 때문이다.
현재 많은 대의제 국가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제점들은 대중이 엘리트들의 담합을 효과적으로 방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따라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배층의 담합을 효과적으로 저지하고 그들 사이의 견제와 경쟁을 촉진하는 구조의 설계와 적용이지, 지배층을 없애겠다는 허구적 구호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이런 담합을 구조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헌법이고, 대부분의 대의제 국가의 헌법이 권력분립을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담합을 방지하는 데에 점차 실패하고 있는 이유는, 과거와는 다르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이 권력에서 창출되기보다는 자본에서 권력이 창출되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세계화라는 사회경제적 추세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자본의 이동이 자유롭게 되고, 각 사회의 지배층이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로 통합됨에 따라서 그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 몽테스키외 시절의 권력분립의 개념으로는
현대의 자본 권력을 통제할 수 없다. 현재와 같이 세계화 추세가 지속된다면 자본 엘리트들의 우위가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헌법에 명시된 담합 방지 규정은 무력화될 것이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자본 엘리트들의 정치에 대한 영향력을 감소시키려는 규제들이 많이 제시되었으나 번번이 실패를 맛보았는데 이는 대중이 자본의 권력에 대한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정치자금에 대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자본이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투자, 일자리 창출, 임금 등 자본의 모든 행위는 정치 엘리트들의 수완이 되고, 치적이 되며, 또는 비난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정치 엘리트들은 대중의 지지를 얻어 내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본이 요구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려 한다. 권력 분립의 대상에서 벗어난 자본 엘리트의 확대는 결국 대중을 가난하게 만들었지만, 역설적으로 가난해진 대중은 자본 엘리트들의 결정에 더욱 의존하게 되고 이에 따라 정치 엘리트들 또한 그들에 종속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은 자본 엘리트들에 분노하기보다는 정치 엘리트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대중의 시위의 대상은 언제나 정치를 향하고, 그들이 대중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분노한다. 그러나 막상 권력이 교체된다 한들 언제나 똑같이 자본 엘리트들에 굴복하는 정권을 반복해서 볼 뿐이고 그들에겐 어떠한 희망도 남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생겨난 노동조합은 자본 엘리트들에 대한 견제를 위해 탄생한 조직이고 그들에 대항하기 위해 정치 엘리트들과 결탁하였지만, 설비가 점차 자동화되고 해외 투자에 대한 제한이 풀려있는 현실에서 노동조합을 이용한 자본 엘리트의 견제는 오히려 자본의 해외 유출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사회의 부는 감소, 대중의 분노를 일으킬 뿐이다. 이 상황에 대해 대중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자본 엘리트들을 제도적으로 권력 분립의 틀 안에
넣을 수 있을 지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의제 민주주의가 오작동을 하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자본 엘리트들의 권력이 너무도 비대해져 사회 내부의 권력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비대해진 자본 엘리트들의 사유재산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견제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기업 자본의 해외 투자 제한, 소득의 누진세와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는 국제화된 시장 경제에서 한 국가의 독자적인 정책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현재 국제사회는 각 국가들 사이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바닥으로의 경쟁(Race to the bottom)이 일어나고 있어 이에 역행하는 것은 곧 경쟁에서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서만이 자본 엘리트들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