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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진 Aug 15. 2019

당신이 뭔데...

시민교육의 길

 신규 교사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내가 신규 발령을 받은 학교에서 처음으로 교직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경험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정확히 10년 후 학생이 아닌 교사의 시선으로 바라본 학교는 요지경 세상이었다. 학생들은 크게 달라져 있었고 학교 형태 또한 고향에서 보지 못했던 보통과(예전 인문계)와 특성화과(예전 실업계)가 혼합되어 있는 종합고등학교였다. 나는 보통과 몇 학급과 특성화과 중에서 기계과와 전기과 수업에 들어갔다. 기계과와 전기과는 주로 남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여학생들은 몇 되지 않았다. 

 수업을 한다는 것이 이토록 힘든 것인가라는 자괴감 속에 몇 달이 흐르던 중 환경이 변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내가 변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수업을 듣지 않았고, 엎드려 자거나 멍하니 앉아 있거나 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교실붕괴의 현장인가? 내 문제인가?’라며 자책하던 때이다. 학생들이 주로 방과 후에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았다. 많은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때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이때부터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정말 필요한 수업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지런히 찾아보았다. 청소년 아르바이트 실태 자료와 노동권 관련 내용들을 찾아 두 달가량 수업을 진행했다. ‘학습’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학생들이 눈을 뜨고 수업을 듣던 것이었다. 이 얼마나 눈물 나는 장면이란 말인가...

 노동권 관련 수업 이후 그나마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한 여학생이 찾아왔다. 자기가 알바를 했는데 임금을 못 받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불안감과 함께 말이다. 관련 내용을 가지고 수업을 하기는 했지만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학생에게 어떤 조언을 해줘야 할지 고민이 됐었다. 교과서적인 해결책은 관련 기관에 신고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학 때 겪었던 경험으로 인해 이마저 주저하게 되었다. 나도 아르바이트비 체불로 기관에 신고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민하다 학생과 함께 그곳을 찾아갔다. 유명 프랜차이즈 빵집이었다. 학생의 대변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사장님께 이야기했다. 

 “사장님, 학생이 일을 했으니 아르바이트비를 주셔야지요!”

이때 돌아온 말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당신이 뭔데,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물론, 이 말만 들은 것은 아니었다. 고성과 함께 기분 좋지 않은 말들을 들어야 했다. 이후 학생은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아르바이트비를 받을 수 있었다. 근로기준법에는 최저임금, 근로시간 등 기본적으로 노동자와 사용자 간에 준수해야 할 사항들이 제시되어 있었다. 학생들에게 관련 내용을 이야기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문서로만 존재하던 내용들이었던 것이다. 

 이 사건 이후 나는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노동’에 깊은 관심을 갖고 학교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좋은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인식과 문화도 함께 가지 않는 사회 모습의 변화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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