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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NA Aug 23. 2019

리뷰_이터널 선샤인


지독한 연애의 끝. 그 끝에 선 연인의 선택. 네가 지루해서 잊고 싶어. 잊힌 연인의 선택. 나도 널 잊을 거야.


‘아예 떠오르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별 후유증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생각이다. 내 연인과 헤어지고 옛 일이 기억나면 멍해지기 일쑤고 어느 일에도 집중이 되지 않는다. 안정적이었던 일상이 하루아침에 깨져 하루 종일 그 사람 생각만 난다. 날 왜 떠났는지, 나는 왜 떠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면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으면 좋겠다거나,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거나, 기억을 통째로 없애버렸으면 좋겠다는 둥, 허황된 바람만 갖게 된다.


이터널 선샤인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이루어지는 판타지 영화지만 그들의 마음만은 판타지가 아니다. 제 멋대로인 클레멘타인과 말이 없는 조엘의 서로에 대한 마음은 진짜였다. 화를 낼 때도, 장난칠 때도, 슬퍼할 때도, 원망할 때도, 평온할 때도, 그들은 서로에게 진심이었다. 정 반대의 성격이었지만 한 번도 자신을 잘 보이기 위해 꾸민 적이 없었다. 처음부터 클레멘타인은 클레멘타인처럼, 조엘은 조엘처럼 만났다. 모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진심인 영화를 보고 있자니 장면마다 좋았다.


이번엔 왜인지 책방에서 조엘만 홀로 남은, 조엘의 아주 쓸쓸한 모습이 마음속에 잔잔하게 남아있다. 너무 쓸쓸해서 마음 한편이 쓰릴 정도로 좋다.




잊고 싶어서 널 지운다. 우린 함께 힘껏 웃었고 더는 싸우지 않기 위해서 싸웠다. 웃고 있는 클레멘타인을 붙잡고 화내는 자신을 보고 후회하며 조엘은 환상처럼 사라지는 기억에서 클레멘타인과 도망쳤다. 성공하는 듯했지만 결국 눈을 뜨니 내 인생에서 그는 사라지고 없다. 몬톡에서 만나자는 그의 마지막 말만 희미하게 수면 아래 잠겼을 뿐이다.


영화처럼 (영화지만) 다시 만난 둘이 갈등 끝에 ‘Okay, Okay’를 주고받으며 울면서 웃을 때 둘 다 정신이 미친 것 같다 생각했다. 그 표정이 어딘가 기괴했는데, 클레멘타인의 눈물은 조엘을 잊기 전의 클레멘타인이 흘린 눈물이고, 웃음은 기억을 잊고 새롭게 만난 조엘이 그냥 좋아서 웃는 것 같아 마치 두 사람이 동시에 표정을 짓는 듯했다.



둘을 미친 것 같다 말하긴 했지만, 나도 기억을 잃고 사랑했던 사람을 마주치면 다시 사랑에 빠질 것 같다. 그의 말투, 행동, 사소한 습관들이 변하진 않을 테고 그것들이 내겐 매력이었을 테니까.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지독한 연애를 끝낸 후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과연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아니, 난 아무리 괴롭다 해도 기억을 지우지 않을 것이다. 그건 내 일기장을 불태워 없애는 것보다 더 한, 나만의 역사를 나 스스로 짓밟는 일 같아서다.


조엘이 수술을 받을 때 나오는 대사가 있는데,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슬쩍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이는 정말 순수하고 자유롭고 깨끗한데
어른은 슬픔에 찌들었어
두려움뿐이지’


슬픔에 찌들고 두려움뿐인 어른 둘이 지독하게 사랑하는 영화가 이터널 선샤인이다. 같이 있을 때 두려움은 보이지 않았던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나는 사랑스럽다. 언제까지고 이 미친 것 같이 사랑스러운 커플을 아낄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인생영화 ‘이터널 선샤인’ 리뷰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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