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문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티하이커 Jan 23. 2018

진정한 나폴리의 맛

티 피키오 Ti Picchio

2017년 5월 2일 화요일,

메구로구 아오바다이


아침 식사를 변변치 못하게 했기 때문에 배가 금새 고파졌다. 따로 맛집을 미리 찾아 놓지는 않았다. 주변의 식당 중 구글맵에서 별점을 5점 만점의 4점 이상 받은 곳을 물색했다.

Ti Picchio, May 2017

그렇게 발견한 곳은 티 피키오라는 이탈리아 식당이었다. 구글맵 리뷰를 읽었다. 어떤 외국인이 진정한 나폴리의 맛이라고 극찬하고 있었다. 별점도 4.4로 꽤 높은 편이었다.

Nakameguro, Tokyo, May 2017

과연 진정한 '나폴리의 맛'이란 무엇일까? 통유리 건물의 3층으로 올라가며 가슴이 뛰었다.

Ti picchio, Tokyo, May 2017

'이태리 현지의 맛'을 자랑하고 싶은듯, 주인장이 손수 찍은 지중해 아날로그 사진을 걸어두었다.

Ti picchio, Tokyo, May 2017

심지어 이탈리아 선수복까지 벽에 걸어두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셰프님(이자 사장님)이 이탈리아에서 살다 왔다는건 쉽게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 친구들과 한 팔로는 어깨동무를, 다른 쪽으로는 후라이팬을 잡은채 사진을 찍었다. (조금 작위적인 사진이었다.)

Ti picchio, Tokyo, May 2017

식당은 생각보다 매우 좁았다. 사장님 부부가 선반으로 사용할 것만 같은 잡동사니가 잔뜩 올려진 테이블과 원테이블 하나만 비어있었다. 아직 음식을 맛보진 않았으나, 정말 지중해스러웠다. 작년에 그리스를 여행할 때, 저렴한 타파스 식당의 테이블 보를 닮았다. 테이블 보인 얼룩이 잔뜩 있었고, 귀퉁이엔 벌레가 죽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식당을 찍은 사진을 보니, 그리스 섬의 집들처럼 새하얗다. 사진 하나는 잘 받는다.

더러운 테이블에 대해 컴플레인을 했고, 다른 테이블 보로 교환했으나 도찐개찐이었다. 단지 벌레 시체만 사라졌을 뿐이었다.

위생은 실망스러웠으나 여자 사장님은 매우 친절했다. 영어 메뉴가 없었고, 가타카나로 가득찬 메뉴뿐이었다. 어설픈 영어 절반, 일본어 절반의 의사소통 끝에 해물 파스타 세트를 주문했다.

Ti picchio, Tokyo, May 2017

전채 메뉴가 등장했다. 수란, 버섯, 감자, 샐러드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프로슈토가 문제였다. 소태가 따로 없었다. 소금 단지 안에 10년은 절여 놓은 듯한 프로슈토였다.

Ti picchio, Tokyo, May 2017

스파게티가 등장했다. 포크에 감아 맛을 보았다. 나폴리에 가본 적은 없지만, 현지의 맛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이런 맛의 스파게티는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프로슈토처럼, 스파게티 또한 매우 짰다. 파마산 치즈 대신 소금 알갱이를 뿌려 놓은 듯 했다.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떠나 음식이 안 맞아 고생했다는 보람언니의 얘기가 떠올랐다. 그래, 차라리 일본식 파스타집에 갈걸 그랬다.

Ti picchio, Tokyo, May 2017

코스 요리였기 때문에 크림 브륄레로 추정되는 디저트가 등장했다. 이번엔 너무 달았다. 거의 먹지 못했다. 차라리 한국으로 포장해 간 다음에,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을 때 당 충전용으로 활용하고 싶었다. 아니, 당충전보다는 거의 당폭격에 가까웠다.

Ti picchio, Tokyo, May 2017

진정한 이탈리아 현지식을 추구하는 곳이니, 커피도 라바짜가 아닐까 기대했다. 역시나, 커피잔엔 라바짜가 써 있었다. 부디 컵만이 아니길 기원했다. 한 모금 마셔보니, 정말 기가 막혔다. 커피가 가장 맛있었다.

Ti picchio, Tokyo, May 2017

영수증을 보니 조금 아찔한 가격이었다. 만족도 대비 비싼 편이었다. 가성비를 높이기 위해 최대한 커피를 늦게 마시며 죽치다가 밖으로 나갔다.

Ti picchio, Tokyo, May 2017

3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는 길에 티 피키오로 향하는 안내판을 발견했다. 혹시라도 나카메구로에서 이 표식을 보거든, 그냥 조용히 계단을 내려가 밖으로 나가시길. 이탈리아 현지식을 먹고 싶으면 이탈리아에 가서 먹는게 좋을 듯 싶다.

Ti picchio, Tokyo, May 2017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저 구글맵 리뷰 4.4의 별점은 어떻게 만들어진걸까? 나폴리 사람들이 단체로 방문해 "우와, 고향의 맛인걸!" 외치며 5점씩 매긴 걸까? 마치 영화 <클레멘타인>의 별점 미스터리 같다.








Kathie

식도락과 예술, 도시에 관심이 많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 그리고 공간 그 자체에 대한 글을 씁니다. 도시의 자연과 로컬문화를 사랑하므로, 여행에세이보다는 도시에세이를 지향합니다. 여행에세이 <나고야 미술여행>을 썼고, 도시에세이 <나는 아직 도쿄를 모른다>를 연재중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