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문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티하이커 Jul 04. 2019

비를 피하러 갔다가

블루보틀 아오야마점

한 달 전 파리를 방문했을 때처럼, 도착한 첫날은 무더웠으나 그 이후 여행의 대부분은 비가 내렸다.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 건 짐이 되고 귀찮았으나, 여행하기엔 덥지 않고 시원해서 나름 좋은 점이 있었다.

처음엔 목욕탕인줄 알았던 아오야마의 색다른 미술관 Tobichi

롯폰기에 있는 국립 신미술관에 갔다가 아오야마 묘지를 가로질러 아오야마의 남쪽, 미나미 아오야마에 도착했다.

해바라기를 파는 꽃집 / 2019년 6월, 미나미 아오야마

아오야마는 부촌으로 보이는 주택가로, 곳곳에 예쁘고 세련된 상점들이 많았다. 골목마다 들어가 보고 싶은 카페도 많았다. 눈에 띄지 않는 위치에 있지만 워낙 유명해 많은 손님들이 찾아오는 카페 키츠네에서 파인애플 음료를 쓰며 글을 쓰다가​, 가까운 곳에 블루보틀이 있길래 거리로 나섰다.

블루보틀 아오야마점 / 2019년 6월, 미나미 아오야마

카페 키츠네를 나오니 한때 멈췄던 비가 다시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우산을 다시 꺼내기는 귀찮았다. 다행히 지도를 보니 한 블록쯤 뒤에 블루보틀이 보였다.

구글맵에 있던 리뷰처럼, 지도가 위치를 가리키는 건물 2층에 파란 병 로고가 그려진 카페가 있었다. 리뷰엔 2층에 있어서 그런지 블루보틀 다른 지점에 비해 사람이 적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로! 매장에 도착했더니 손님이 많지 않고 한산한 느낌이었다. 테이블이 많은 편이긴 했으나 빈자리가 꽤 많았다. 전반적으로 여유로운 느낌이었다.

블루보틀 신주쿠점 / 2018년 1월

작년 1월, 블루보틀 신주쿠점에서는 대기줄이 길뿐만 아니라, 재료가 모두 소진되었으니 그냥 돌아가라는 안내문까지 있었다. 개점한 지 얼마 안 된 블루보틀 성수점은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아직도 대기줄이 길다고 들었다. 그에 비해 매우 한가해 보이는 아오야마점을 보니, 1층과 2층의 입지 차이가 이렇게 큰가 싶었다.

마실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카운터 주변을 둘러보니 시선을 잡아끄는 심플하고 예쁜 굿즈들(특히 머그컵)이 눈에 띄었다.

나는 선반에 놓인 여러 상품들을 구경하다가, 결국 다크 초콜릿을 비롯해 콜드 브루 캔커피까지 사고 말았다. 콜드 브루 커피는 그렇다 쳐도, 초콜릿은 분명 포장지에만 파란 병이 그려진, 어느 연관 없는 공장에서 만들었을 것이 분명함에도 지갑을 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흰 종이에 그려진 파란 병 로고에서 브랜드의 힘을 체감할 수 있었다. 딱 미니쉘 만한 크기의 작은 초콜릿에 개당 150엔을 지불했는데 전혀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 후 고민 끝에, 블루보틀의 얼굴인 아이스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그때 점원이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7시에 문을 닫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설마 그렇게 일찍 가게를 닫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최소 아홉 시 열 시까지 운영하는 한국의 프랜차이즈 커피 매장에 익숙해졌던 탓이다. 여긴 동쪽에 있어서 우리나라보다 해가 일찍 지니, 일찍 문을 닫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루보틀 아이스 카페라테 / 520엔

시계를 보니 저녁 7시까지는 10분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작년 블루보틀 롯폰기점에서 보냈던 시간처럼 카페에서 한 시간 정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쓸 시간은 없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테이크 아웃을 해서라도 커피를 마시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커피를 예정대로 주문했다. 매장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시간은 10분이 채 되지 않았으나, 가게가 2층에 있는 덕분에 테라스석에서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소박하지만 삶의 쉼표를 느끼는 작은 행복의 순간이었다.

아무튼 블루보틀 아오야마점이 한산했던 이유는 매장이 2층에 있어서가 아니라, 폐점시간이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블루보틀 콜드브루캔 볼드 / 600엔

마음 같아서는 한국의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블루보틀 콜드 브루 캔커피. 가볍고 산뜻한 과일향의 라이트, 무겁고 초콜릿향이 나는 볼드의 두 가지 맛이 있었다. 나는 볼드를 골랐다. 안타깝게도 알루미늄 캔이라 비행기에 태울 수 없었고, 다음날 아침에 모닝커피 대신으로 마셨다. 이미 만들어진 제조음료임에도 불구하고, 즉석에서 만드는 아이스 카페라테보다 비쌌다. 한입 마시는 순간, ‘라이트’를 샀어야 하는데라며 후회했다. 내 취향과는 조금 동떨어진 향과 맛을 가진 커피였다. 그래도 푸른 병이 그려진 디자인만큼은 훌륭했다. 회백색의 알루미늄 캔과 진파랑 색의 블루보틀 로고는 배색이 잘 어울렸다.

나는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러나 블루보틀을 방문하면, 내용을 압도하는 형식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2년 반만의 도토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