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오에서 결혼한 사람 이야기 #6
두 번째 남자: 포항공대 박사 벚꽃군
두 번째 남자 벚꽃군.
벚꽃군은 포항공대 출신의 박사님이었다. 포스트닥터를 하던 시절에 나를 만났다. 그냥 같이 있기만 해도 재미있었고, 참 잘 맞았다. 벚꽃군은 요리도 잘하고, 나를 잘 챙겨주며 섬세하고 다정한 그런 남자.
그를 벚꽃군이라 부르게 된 이유는, 내가 벚꽃을 보러 가자고 꼬셔서다. 벚꽃과의 추억이 시작된 사람이기에, 내가 지었지만 그 이름이 참 잘 어울리는걸?
처음 벚꽃군의 연락처를 받았을 때, 내 전화번호 뒷자리와 그의 번호가 같더라.
내번호 : 010-****-1234
벚꽃군 : 010-1234-****
사람들은 종종 사소한 공통점에서 운명을 느낀다고 하지 않는가? 나도, 벚꽃군도 이 작은 공통점을 두고 서로에게 '운명인가?'하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작은 숫자들이 우리의 운명을 이어주는 고리였다.
"다음 주부터 벚꽃이 피네요. 같이 벚꽃 보러 가요."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큰 걸림돌. 그것은 결혼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결혼 시기와 내가 생각하는 결혼시기는 너무 다르더라. 나는 아빠 퇴직 전에 결혼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고, 그는 포스트닥터가 끝나고 직장에 자리 잡은 후 돈을 더 모아서 결혼하고 싶어 했다.
결혼은 두 사람의 약속이지만, 우리에게는 두 사람을 넘어서서 각각의 인생 계획이 있었다. 나는 사랑이 있다면 모든 게 가능하다고 믿었지만, 벚꽃군은 현실적인 준비가 먼저라고 생각했다.
이 문제로 우리는 헤어졌다. 하지만 서로 너무 잘 맞았기 때문에 다시 만났고, 또다시 같은 문제로 헤어졌다. 서로 사랑하지만, 같은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벚꽃군을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날 중 하루.
"오빠가 돈 많이 못 벌어도 괜찮다고. 나는 원룸에서 살아도 괜찮다니까?"
그는 고개를 저으며 미안하다고만 했다. 그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 미안함이 나에게는 너무 무겁게 다가왔다. 나는 그를 설득하려 애썼고, 그 과정에서 그에게 상처를 많이 주었다. 그가 나를 더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저 그가 현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결국 우리는 헤어졌고, 그렇게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처럼 떠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신혼집은 벚꽃군집과 도보로 5분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길에서 마주친 적은 없지만, 몇 번 차 안에서 스쳐 지나갔던 기억이 난다. 정말 어두컴컴한 밤에 남편이랑 산책할 때 벚꽃군을 마주친 거 같기도 하고.
벚꽃군과 결혼 문제로 헤어진 후, 친구에게 부케를 받았던 적이 있다. 참 운명의 장난인지, 예비 신랑과 함께한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신랑친구로 벚꽃군이 있었다. 벚꽃군은 내가 부케를 받는 모습을 아마도 봤을 것이다.
왜 봤을 거라고 말하냐고? 나는 그가 있는 쪽을 최대한 보지 않으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나와 만났을 때와 달리 그는 장발이었는데, 그를 최대한 보지 않으려고 몸을 비틀었다. 그래서 벚꽃군이 나를 봤는지, 어떤 표정이었는지 전혀 모른다.
그날 기분이 얼마나 싱숭생숭했는지.. (얼마나 비틀었는지 목도 뻐근..)
최근에 그가 살았던 집을 지나갔는데, 그가 타던 오토바이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포스트닥터가 끝난 지 한참 뒤일 테니까.
벚꽃군이 원하는 곳에 자리를 잡았기를, 마음속으로 한 번 더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