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남자: 9급 공무원 모군
세 번째 남자, 모군과의 첫 만남은 집 근처 소박한 와인바에서 이루어졌다.
서울물 먹은 남자라 그런가? 자연스럽게 의자도 빼주고 음식도 잘 덜어주고. 기대했던 것보다 얼굴도 나쁘지 않았다. 원래는 눈이 작고 선이 얇실한, 인피니트 성규같은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모군은 아랍상에 가까웠거든.
모군은 건축직 공무원이다. 나는 도시계획직 공무원이고. 하는 업무가 꽤나 겹쳐서 그와의 대화는 너무 즐거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의 업무스트레스와 고충을 얘기하며 이런 결론을 내렸지.
'이래서 부부 공무원들이 많다는 거구나!'
어느날 봤던 연애책에서 그렇게 말하더라. 남자와 여자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모군은 달랐다.
나를 잘 알아준다.
그렇게 모군과 사귀게되었고, 매니저는 놀라는 눈치였다.
"회원님~ 좀 더 만나보셔야죠. 요즘에는 여러 명 만나보면서 결정해야지 이렇게 잠시 중단하면 시간낭비에요" 더 이상 프로필을 받지 않겠다는 내게 메니져가 말했다.
'역시 난 못말리는 사랑꾼이야 후훗.' 전화를 끊으며 데스트니를 느낀 모군에게 집중하기로 결정. 역시 사랑은 돈과 바꿀 수 없다. 유물론적 사고를 했던 과거의 나는 잊어버린지 오래였지.
그런데 모군을 왜 모군이라고 부른 결정적인 일화가 있는데
그는..
그는.....
M자 탈모의 소유자였다
모군.. 모근이 없었다(두둥)
심지어 탈모약까지 먹고 있는 M자 탈모의 소유자이며, 나중에 머리를 심기 위해서 '머리 심는 적금'까지 들고 있는 착실한 청년이었다.
그와 '애 셋 낳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왜냐고? 임신을 위해서는 탈모약을 중단해야 하는데, 그 사이 그의 모근은 점차 사라질께 뻔했으니까.
진지하게 모군에게 말했다.
"오빠. 그럼 애기 낳을 때는 약 얼마나 끊어야해?"
"음.. 대략 1년? 그래서 나 적금도 들잖아~ 빠지면 심으려고"
아아.. 나의 데스티니는 여기서 금이가기 시작했다.
애를 셋 낳는 동안 모군의 모근은 내 눈에서 사라지겠지? 원형탈모 Y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우리 친정아빠의 탈모유전자를 내 대에서는 끊어내겠다고 다짐했던 나였건만. 이제 내 대에서 원형 탈모에서 M자 탈모로 바뀌는 건가? 내 아이에게 탈모의 악순환을 물려줄 수 없는데..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내 머릿속에서 과거의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 외출하기전에 가발을 뒤집어 쓰던 아빠의 모습. 나이가 드니 흰머리가 섞인 가발을 주문했던 아빠의 모습. 연휴에 가족들이 모이면 작은 아빠, 우리 아빠 일제히 가발 뚜껑을 들어내는 모습.
그리고, 여동생은 아빠가 가발을 쓰지 않으면 밖에 같이 나가지 않겠다고 때쓰던 모습까지도.
그래도 나는 모군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못말리는 사랑꾼이기 때문에!!
(모군은 저의 남편일까요? 궁금하면 다음 편을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