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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인사이트트 Oct 22. 2024

누수와 손해

한국소비자원 분쟁조정 결정 사례 #1

2019년 여름, 아침 일찍부터 열기가 느껴지는 어느 날, 유정은 남편과 함께 작은 주방을 가득 메운 음식물 처리기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음식물 쓰레기 처리도 편해지겠지?" 유정은 남편에게 말하며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그날 00업체와 음식물 처리기 렌탈 계약을 체결했고, 설치가 곧 이뤄질 예정이었다.


설치 기사님은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그들의 집으로 도착했다. 유정은 그에게 차 한 잔을 건네며 조심히 설치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기사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설치 전문가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런 말을 들으며 유정은 잠시 안심했지만, 그날 이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며칠 후, 유정은 부엌 바닥에 고여 있는 물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물기라고 생각했지만, 그 물은 점차 마루로 퍼져 나갔고 마루는 변색되기 시작했다. 갈색이던 바닥은 점차 어두운 얼룩이 생기며 집 안 곳곳을 물들였다. 유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남편과 함께 설치업체에 전화를 걸었지만, 이미 사건은 크게 퍼진 상태였다.


음식물처리기 회사 측에서는 설치업체가 사고를 일으켰지만, 그들의 책임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단지 설치를 위임한 것일 뿐이며, 사고에 대한 책임은 설치업체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유정은 이해할 수 없었다. 설치업체는 피신청인의 고용 하에 일을 한 것 아닌가? 그들에게는 당연히 책임이 있어야 했다.


그렇게 유정과 남편은 소비자원의 소비자분쟁 조정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하게 되었다. 손해는 결코 적지 않았다. 물에 젖은 마루는 전부 교체해야 했고, 싱크대도 손상되었으며, 그로 인해 임시로 거처를 이동해야하는 비용까지 추가되었다. 그들은 총 1,500만 원이 넘는 손해를 배상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음식물처리기 회사 측에서는 마루의 일부만 교체하면 된다고 주장하며, 그 금액의 일부인 400만 원만 배상하겠다고 말했다.


조정이 진행되는 동안, 유정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조정위원회에서 증언해야 했다. "누수는 집 전체에 영향을 미쳤어요. 부분만 교체한다고 해서 집이 원래대로 돌아올 수는 없잖아요." 유정은 억울한 마음으로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음식물처리기 회사 측 변호사는 차분히 손해배상 범위에 대해 법률을 설명했고, 조정위원회는 결국 음식물처리기 회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결국 유정은 400만 원을 배상받는 것으로 합의해야 했다. 소비자원에서는 정신적 피해보상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유정은 아무리 속이 상하고 억울해도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법의 한계가 그들의 상처를 다 치유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유정은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과 함께 집에 돌아온 유정은 변색된 마루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어," 남편이 유정에게 다독이며 말했다. 유정은 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했지만, 현실은 언제나 그들의 마음만큼 따라오지 않았다.


유정과 남편은 그날의 사건을 교훈으로 삼았다. 이제는 무엇을 선택하든, 계약서의 작은 글씨도 놓치지 않고 읽기로 다짐했다. 그들의 손해는 물질적인 것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교훈은 경험에서 나왔다.


유정은 그런 자신을 다독이며, 여전히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때로는 작은 실수가 큰 손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모든 과정을 통해 그들은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언젠가, 이 이야기를 웃으며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은 계속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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