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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연필 Apr 07. 2017

무언의 거절들

거절과 거부에 대하여

29살. 처음으로 사내가 아닌 외부 업체와의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처음이라는 그 시점은 매번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무섭고 긴장되고 설렌다.


우리 회사 내 연동 정책에 대한 내용을 열심히 설명해줬고, 다행히 모르는 것을 물어보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들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같이 왔던 팀장은 담배를 태우러 밖으로 나갔고, 외부 업체 담당 개발자는 회의 중 기록해뒀던 자신의 다이어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고민했다. 모름에 대해서 공개하고 싶지 않은 개발자들이 존재할 수 있고, 그 자존심의 영역을 건들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앞에 있는 사람이 이해를 해야만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장대리님"

    "네?"

"연동 정책 관련해서 모르시는 거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2초. 표정 없이 나를 쳐다본 시간. 그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분명 내 얼굴을 보고 내 말을 끝까지 들었음에도, 그는 다시 다이어리로 고개를 떨궜다. 불편함이 몰려왔다. 화가 났다. 나갔던 팀장이 들어오고 남은 미팅을 잘 끝냈지만, 복귀하는 본사에서 퇴근하는 집까지 그 감정들은 나를 따라왔다.


알아야 되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고,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을 몰랐던 것이었다. 내 호의는 필요한 것이었다. 


다음 날 그는 같이 참석한 팀장 이메일로 여러 질문을 보냈다. 팀장은 이 사람 왜 나한테 질문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그때 같이 갔던 내가 담당이라는 내용과 내 이메일 주소를 적어 답변했다. 분명 회의 때 건네준 내 명함에는 연락처와 이메일 주소가 친절히 적혀있었다. 


늦은 오후, 같은 내용으로 나에게도 이메일이 왔다. 질문마다 답변을 적어서 보내줬다. 답변 뒤에 꼬리말처럼 '그러니까 장대리야... 나 무시하냐?'라고 적고 싶었지만 참았다.


난 그냥 그에게 거부를 당했다.








다양함을 인정하는 세상에서 나와의 다름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다. 그게 내 성격과 맞지 않더라도 나와 같은 사람들만 골라서 함께 살 수 없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다름을 인정했을 때, 나 자신에게 생각보다 괜찮은 평화가 찾아온다. 


만약, 그 다름의 분야가 소통을 가리킨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소통의 스타일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소통은 전달을 기반으로 한다. 그 기반이 다르다면 소통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린 다른 방법이 아닌 틀린 방법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소통하고 있다.


'모두가 예(YES)라고 할 때, 아니(NO)라고 말하는' 

한 때 유행하던 문구이고 지금도 자기 주관적 삶을 살아하는 이들에게 좋은 내용이다.


거절과 거부는 다르다


거절을 한다는 것은 명백한 의사표현이고, 상대방과의 다른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해준다. 하지만 무언으로 거절하는 것은 의사표현이 아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상대방 자체를 거부하는 행위다. 이건 다른 대화를 이어갈 수 없는 서로 간의 감정 단절을 야기한다.


소통은 누구나 잘할 수 없다. 그런데 전달의 기반을 무시한 소통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어떤 이들에겐 무언의 거절들은 큰 상처로 남는다.


이해할 수 있는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거절했을 때 느끼는 좋지 않은 감정이 싫어서인지,

돌려서 거부를 하고

알아서 잘 생각하겠지라는 귀찮음인지,

침묵으로 기다림과 무안함을 준다.


사람이 물속에서 숨을 쉬지 않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무언의 거절들은 물속에 있는 것처럼 숨을 못 쉬게 한다. 물속에서 상대방과 소통을 해야 한다. 그런데 다들 잠수를 그렇게 잘할 수 없다. 그쯤 되면 나올 만 한데 나오지 않고 버틴다. 다들 대단하다.


나는 숨 쉬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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