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티움과 퀘렌시아
자격증 공부가 내게 준 것 2
정신과 의사 문요한의 책 <오티움>을 읽었다.
'살아갈 힘을 주는 나만의 휴식'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오티움은 라틴어로 여가, 은퇴 후 시간, 학예활동이라는 뜻인데, '배움을 즐기는 여가 시간'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었다.
저자는 "내 영혼에 기쁨을 주는 능동적 여가 활동"이라고 개념을 확장했다.
여기에는 중독이나 소극적 취미활동과 구분되는 특징 몇 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 자기 목적성인데, 한마디로 좋아서 하는 활동이다.
어떤 보상이나 결과에 관계없이 활동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둘째, 어쩌다 한번 하는 활동이 아니라 평소에 꾸준히 즐기는 활동이다.
셋째, 스스로 주체가 되어 선택하고 즐기고 배우는 일체의 활동을 말한다.
넷째, 깊이 공부하면서 '성장의 경험'을 통해 기쁨을 맛보게 되고 다시 꾸준히 하게 되는 선순환이 생긴다.
다섯째, 긍정적 연쇄효과가 있어서 그 자체만의 기쁨만 아니라 그 활동을 통해 삶의 활력이 생긴다.
심신이 병들어가고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중독과는 구분되는 결정적 차이이다.
이렇게 질문해 보자.
누군가는 다시 내려올 산을 왜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가겠는가?
누군가는 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진지하게 색소폰 연습을 하겠는가?
조회수에 관계없이 매번 끙끙대며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쓰는 이유가 뭐겠는가?
금전적 대가나 사회적 명성을 기대했다면 굳이 이러지 않아도 된다.
오로지 그 행위 자체가 자신을 위로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가 한참 동안 지난날을 회상했다.
직장에서 강등당한 적 있었다.
회사에 누를 끼칠 정도로 실수를 해서 받은 징계가 아니었다.
회사의 변화가 내 신상에 영향을 끼쳤다.
내가 다니던 회사가 다른 회사와 기능이 많은 부분 중첩된다는 이유만으로 통폐합되었다.
문제는 이런 조치가 일부 구성원의 행복이나 자존심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별개였던 두 조직이 하나로 통합되면 오랫동안 다르게 운영해 왔던 직급, 보수, 승진방식의 기준을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형평성을 둘러싸고 두 조직 구성원 간에 불협화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조정된 직급체계에서 나는 강등된 직급을 부여받았다.
내가 나이에 비해 진급이 빨랐었기에 입사연도, 승진연한 등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하필이면 그때 해외 연수중이었다.
회사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적절한 대응을 못했다.
연수기간 동안 업무를 하지 않았으니 혜택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뒷말도 들렸다.
귀국 후 부임한 부서에는 입사동기가 부서장이었다.
착잡했지만 암담했던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조정된 직급체계에서 이미 모든 티오가 꽉 차버려 오랜 기간 승진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직장생활에서 보람을 느낄 때는 딱 두 번, 봉급 오를 때와 승진할 때인데, 나는 거꾸로 가고 있었다.
앞날이 막막했다.
무엇보다 아내나 가족들에게 창피하였다.
말수도 적어지고 누굴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겉으로는 덤덤했지만, 내면의 세계는 폐인이 다 되어 있었다.
그때 '가슴이 미어진다'는 아픔이 어떤 느낌인 지 비로소 경험했다.
다른 곳으로 이직하거나 직업을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벌거벗고 나갈 수는 없었다.
나가더라도 힘을 비축한 후 나가야 한다는 것을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깨달았다.
기분대로 울분을 터뜨리고 회사를 저주하면서 떠난 들 어디에서 날 받아주기나 한단 말인가?
생계를 유지하면서 나의 무기가 다 벼려질 때까지 참고 견뎌야 했다.
뭔가에 몰두하고 싶었다.
이때 우연히 접한 것이 문화재수리기술자(현 국가유산수리기술자)라는 자격증이었다.
기술분야 자격증이었지만 인문학 공부도 할 수 있었다.
수험과목에는 한국사가 포함되어 있어서 많이 끌렸다.
우선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에도 도전했다.
학력고사 대비 인강을 열심히 들었다.
오랜만에 공부하니 재미있었다.
그 시험 1급에 합격했다.
작은 성과였지만 오랫동안 잊었던 자존감을 되찾는 계기였다.
문화재 공부도 덩달아 흥미가 생겼다.
1년 만에 1, 2차 시험을 단번에 통과했다.
특히 한국사는 만점을 받았다.
모두 놀라워했다.
알고 보니 이 자격증을 소지하면 업계에서 몸값을 제법 쳐준다고 했다.
여차하면 이 길로 나가리라 마음먹었다.
공부하는 동안에는 몰입할 수 있어 좋았다.
세상만사를 잊을 수 있었다.
회사에서 내가 겪은 일들은 점점 가볍게 여겨졌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만 있다면 회사에서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무렵부터 내 삶의 방향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굳이 직장이나 직업을 바꾸지 않아도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을 듯도 했다.
다른 공부도 해보고 싶었다.
지난 공부를 하는 와중에 연관 있는 다른 분야의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기간을 정하지 않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만큼만 하기로 했다.
내가 가진 능력과 시간을 활용해 취미생활 하듯 해볼 요량이었다.
그렇다고 업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부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일하려 애썼다.
다만 무작정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회사에 누를 끼치지 않을 정도로만 하려 했다.
말하자면 나의 모든 것을 바쳐 일하지 않기로 했다.
주말에도 집에서 빈둥거리느니 여행하 듯 혼자 문화재 현장답사를 다녔다.
시간이 흘러 나는 문화재 분야의 자격증 두 개를 소지하게 되었다.
첨엔 직업을 바꿀 의지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취미가 되었다.
점점 공부하는 맛에 빠졌다.
공부도 공부지만 뭔가에 몰두하는 것 자체가 좋았다.
목표를 정해두고 도전하는 맛도 괜찮았다.
그때 생긴 습관으로 다른 분야 자격증도 몇 개 더 취득했다.
류시화 시인의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에는 첫 번째 글에서 '퀘렌시아'를 화두로 꺼낸다.
스페인에는 투우장 한쪽에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다고 한다.
투우사와 싸우다 지친 소가 숨을 고르며 힘을 모으는 자신만의 공간이라고 한다.
소만 아는 그 자리는 스페인어로 '퀘렌시아(Querencia)'라고 하는데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란다.
말하자면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 힘들고 지쳤을 때 기운을 얻는 곳, 본연의 자기 자신에 가장 가까워지는 곳이라고 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퀘렌시아가 있어야 고단한 삶으로부터 잠시 도피할 수 있다.
여기서 마음을 추스르고 살아갈 힘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누구나 살다가 지쳤을 때, 일이 힘들다고 느꼈을 때, 그리고 울고 싶을 때, 나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꼭 장소만이 아니라 나를 위로하고 웃음 짓게 만드는 것, 그것도 퀘렌시아가 아닐까 싶다.
어머니의 따뜻한 품, 언제나 반가운 죽마고우의 너털웃음,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내 가정이 모두 퀘렌시아다.
나는 내가 가장 힘들었던 지난날을 돌이켜 보며 오티움이 떠올랐고, 퀘렌시아가 연상되었다.
상심했던 시절 나를 붙잡아주었고 일으켜 주었던 그것, 내가 했던 자격증 공부가 내 일상의 오티움이었고 내 마음의 퀘렌시아가 아니었을까?
나의 오티움, 나의 퀘렌시아가 없었다면 나는 60년 생애 동안 실의에 빠졌을 때마다 헤어 나올 수 없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