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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인생 Sep 03. 2024

자격증 공부가 내게 준 것

몇 년 전 교양공부하듯 여유로운 마음으로 도전한 자격증이 있었다.

이미 다른 전문 자격증 몇 개를 취득해 둔 터라 또 하나의 자격증을 보탠 들 뭔가 달라질 일 없었다.

합격은 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이었다.

그 분야의 지식을 넓히기만 한다면 합격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두서없는 공부가 될 수 있기에 현실적인 목표가 필요했다.

자격증 취득은 수험일정과 방법에 맞추어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논술형의 1차 필기시험은 도전 두 번만에 합격했다.

수험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던 분들이 몹시 놀라워했다.

그 분야 종사자도 서너 번 떨어지는 게 보통인데 문외한이 금방 합격했다고 시기 어린 칭찬을 하였다.


구술형의 2차 면접시험까지 한 달 남짓, 여러 경로로 기출문제와 답변자료를 입수해 나름 열심히 했다.

그럼에도 낙방했다.

몹시 실망하였고 창피하기도 했다.

32명이 응시해서 29명이 합격했는데 떨어진 3명 중에 내가 포함되었다.


한편으론 괘씸하였다.

면접위원이란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내가 이런 평가를 나 싶었다.

대답하지 못한 질문 거의 없었고 크게 어긋나게 대답한 기억 없어서였다.

비전공자인 내가 그들이 쳐둔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길 꺼리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애초의 여유롭게 도전하려 했던 마음이 무색하게 이래저래 크게 좌절했다.

나도 변질된 내 마음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마음을 추스르는데 두어 달이 걸렸다.

그만큼 충격이 심했다.

시작할 때와는 달리 어느새 나도 몰래 자존심을 건 도전의식이 생겼다.

몇 달 후 다시 치를 면접시험에 나름대로 단단히 대비했다.


반대로 다시 불합격할 같은 불안이 마구석에 도사리고 있었다.

시험당일 난생처음 우황청심환을 먹었다.

나이 탓인지 두근거리는 심장을 감당할 수 없어서 약의 힘을 빌렸다.

막상 면접에 응하니 약발이 별로 먹히지 않았다.


질문에 뭐 하나 시원스레 대답한 게 없다.

면접실을 나오니 그제야 생각나는 답변이 많다.

평상시에 누가 물었다면 웬만큼 대답했음직한 질문들이었다.

처음 본 면접 때 보다 더 시원찮게 치른 감이 들었다.




시험이야 합격할 수도 있었고 불합격할 수도 있었지만, 두 번째 면접을 준비하면서 더 심란다. 


무엇보다 자존심 문제다.

지난번 면접의 불합격을 확인했을 때 몹시 수치스러웠다.

10%의 불합격자에 내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힘들게 했다.

이번에 불합격한다면, 아예 그만 작정이었다.


트라우마도 발동했다.

면접 자체에 대한 공포심이 생겼다.

전공자내겐 무리 해도 감이 잘 잡히지 않던 공부였다.

오랜 세월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도 힘들어하던 도전이었다.

필기시험이야 비전공자라도 열심히 공부한다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면접시험은 실무를 통해 쌓인 경험과 내공을 바탕으로 순발력 있게 답변해야 했다.

그게 종사자와 비종사자를 가르는 결적인 차이였다.


더구나 두 번째 면접시험에서는 이전과 사뭇 다른 스타일의 질문을 받았다.

준비한 방향과 완전히 어긋났다.

면접실을 나온 후 더 자신이 없었던 이유다.

다른 응시자들도 하나같이 의외였다고 수군거렸다.


거의 포기상태로 몇 달을 보냈다.

갑자기 늘어난 여가 시간을 긴장이 풀린 상태로 의미 없이 흘려보내려니 살짝 우울증도 왔다.

애초에 합격여부는 중요치 않게 여지만, 막상 결과를 기다리자니 초조했다.


몇 달 후 최종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올라있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자격증 공부 하면서 가지 심리 장벽을 경험했다.


공부를 시작하초기에는 금방이라도 합격할 듯 자신감 충만다.

학습내용이 생경하긴 해도 새로운 지식을 습득한다는 마음에 동기가 부여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지나면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점점 늘어나 곤혹스러워지기 시작.

이때부터 이 생각 저 생각 온갖 상념에 젖어들었다.

이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원초적 질문을 자주 하게 되는 것도 이 기간이었다.

가장 위험한 시기였다.

다만 매일 짧은 시간이라도 공부하는 습관 만들어 놓았기에 형식적이나마 이어갈 수 있었다.


내가 겪은 가장 큰 장벽은 나이에서 비롯회의감이었다.

곧 60대였던 나는 배움도 중요하지만, 누군가를 가르치며 배움을 나누어 주어야 마땅한 나이였다.

교육자로 살았어도 지금쯤이면 은퇴할 시기였다.

그런데도 가르치기는커녕 여전히 배우고만 있으니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싶었다.


나 삶에 대한 공부도 아니고 활용가치도 분명치 않은 자격증 공부나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배움보다는 다른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나를 유혹한 것이기도 했다.




나는 한 직장에 들어가 30년 넘게 근무했으니 한 분야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 속에서 살아온 셈이다.


반면에 인적 교류가 직장과 관련한 사람 위주로 형성되고, 사고방식도 내가 하는 일의 시각으로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편협성을 극복하고 싶었다.

 방편의 하나로 내 전공이나 직무와 동떨어진 분야의 자격증 취득에 몇 차례 도전했다.

물론 덕후처럼 깊이 있게 공부를 하고 싶 했고, 퇴직 후 재취업 위한 대비책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겐 세상을 보시야를 넓히고자 하는 동기가 더 컸다.

퇴직 후 재취업을 위해서라도 내 분야가 아닌 낯선 세상에 대해 미리 경험해 볼 필요가 있었다.

우선 다른 분야나 직업의 인사와 접촉해보고 싶었다.

사회성이 부족한 내게 자연스러운 방법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공부하는 학원다녀보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애초의 저의와 다르게 공부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과 기쁨을 발견했다.


수험학원의 수강생은 연령대도 다양하여 나보다 젊은 사람뿐 아니라 또래나 선배뻘도 나오셨다.

그중 70대도 더러 계셨는데 젊은 내가 나태해질 때마다 자극이 되었다.

 

같은 공부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수강생들과 동류의식이 생겼다.

자연스레 직장과 나이에 관계없이 어울리게 되었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분야와 직장의 속사정과 고충도 이해할 수 있는 계기였다.  

자격증 취득 후에는 가끔 안부를 묻는 관계로 나아간 인연도 몇몇 있었다.

생소한 분야에 대한 정보를 접힐 수 있었기에 재취업 방향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다.


목표를 향해 조금씩 나아갈 때마다 생기는 삶의 희열작지 않았다.

그 분야에 오래 몸담았던 사람도 힘들어하는 자격증을 문외한인 내가 도전 당당하게 취득했을 때 쾌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남들로부터 찬사와 함께 부러운 시선을 받을 땐, 이런 게 삶의 기쁨이구나 하며 행복감에 빠져 들곤 했다.

하지만 내가 노력하여 뭔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만으로도 고단했던 과정을 충분히 보상하고 남았다.

 기분 하나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면 또 다른 자격증에 도전하고픈 유혹이 되기도 했다.

마약에 중독되어 가듯 언제나 뭔가를 도전하지 않으면 인생을 낭비하는 듯 초조하기도 했다.

자격증의 쓸모 여부는 별개의 문제였다.


목표를 정해놓고 달성하기 위해 몰입하는 과정도 중요한 경험이었다.

도전과정 중에는 내 자질에 대한 의심과 포기하고픈 유혹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늘 하고 싶었거나 궁금했던 분야였지만 막상 도전해 보니 슬럼프와 권태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습관처럼 책상에 앉아 있기만 한다면 나도 몰래 집중하게 되었다.

그 시간은 모든 걱정과 불안을 다 잊어버리고 몰입하는 시간이었다.

주변에서 고생한다고 했지만, 지나고 보니 힘든 시간인 줄도 모르고 보냈다.

지칠 때도 많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려보낼 때가 오히려 불안하고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를 하는 편이 속이 편했다.

자격증 취득 자체보다 몰입과 분투의 과정이 내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몸으로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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