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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과 삶

정년퇴직을 앞두고

by B급 인생

정년퇴직이 딱 일주일 남았다.

한 직장에 들어가 36년을 다녔다.

출근을 하면 PC의 불필요한 파일은 정리하고, 책상과 서랍 안의 서류며 물건이며 하나씩 들어낸다.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자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올해 초고령화 사회에 이미 진입했다고 한다.

서점마다 유튜브 마다 눈여겨보지 않아도 은퇴 이후의 대책, 중년의 삶, 퇴직 전 준비사항을 다룬 책이나 동영상이 수두룩하다.


처음 한두 번 대할 때는 유심히 보았지만 이제는 눈길이 가지도 않는다.

어떻게 포장하고 꾸미는지에 따라 색깔이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하고자 하는 말은 대동소이하다.


최소한의 생계비에 대한 준비, 신체적, 정신적 건강 챙기기, 취미나 소일거리 만들어 놓기, 가족이나 친구와 관계정립 등이다.




최소한의 생계비야 그동안 취미 삼아 따두었던 자격증을 요긴하게 써먹을 수가 있다.

그 분야 협회의 구직란에 올려놓았더니 여기저기에서 연락이 제법 온다.

지금만큼 보수와 대접을 받진 못하겠지만 아내와 둘이서 가끔 외식도 하고 여행을 다닐 정도 되는 듯하다.

사실 그동안 아내가 나 몰래 모아둔 게 어느 정도 있겠거니 하는 믿음도 나의 걱정을 덜어 준다.

다만, 건강이 여의치 않은 노부모님과 아직 사회생활에 뿌리내리지 못한 아이들이 있어서 홀가분하진 않다.


건강은 장담 못하지만 아직 이상을 느낄 정도의 상황은 아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는 느끼지만, 젊은 시절부터 꾸준히 해오던 근력운동과 조심스러운 식단 생활로 일상활동을 하는데 지장을 받진 않지 싶다.

그럼에도 자연적인 노화 현상으로 병원출입은 더 잦아질 것이다.

지금도 전립선비대증과 고지혈증, 그리고 눈과 치아 관리를 위해 정기적인 검진을 받고 있다.


조금씩 배워둔 취미생활도 퇴직 후 생활에 큰 자산이 될 듯하다.

5-6년간 꾸준히 배우고 익혀둔 대금연주와 1년 정도 배운 플루트연주는 아무리 생각해도 배워두길 잘했다 싶다.

남들 앞에서 연주해 볼 만큼 능숙하진 않았지만 적적할 때 한 번씩 꺼내 불 정도는 된다.


문화센터에서 글쓰기 기본 지식을 배워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잘 쓰진 못해도 뭔가 차오를 때마다 몇 마디 적어 수준은 된다.

요즘도 그렇지만 뒷 날 읽어 볼 때마다 "이 글을 과연 내가 썼단 말인가"하며 혼자 놀라워할 것이다.

게다가 누가 물어보면 취미가 독서라고 할 만큼 책 읽기도 꾸준히 해왔으니 글쓰기와 함께 정서를 챙길 수 있는 자산이다.




그럼에도 알 수 없는 불안과 혼돈이 끊임없이 나를 흔든다.


한밤중에 소변이 마려워 한번 깨기라도 하면 그때부터 다시 잠들지 못한다.

이런저런 상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쳇바퀴를 돌다 보면 날이 밝곤 한다.

지난날에 대한 회환부터 시작한다.

그때 이런 일을 저질러 봤더라면, 그때 그 짓을 하지 않았다면, 그때 좀 더 세게 나갈걸, 별의별 후회와 아쉬움이 되돌아온다.


그런가 하면 퇴직하면 뭘 하며 하루하루를 채우지?

재취업을 하면 제대로 해 낼 수 있을까? 부모님은 어떻게 모셔야 할까? 애들은?

이런 막연한 불안감과 혼돈의 잡념들이 두서없이 맴돌다 지나간다.


무엇보다 요즘 매일 머리에 떠나지 않는 것이 있다.

퇴직 후의 삶에 대한 나름의 각오는 다지고 있고 웬만큼 준비되어 있다고는 하나 가장 큰 걱정은 사교생활이다.

맘 터놓고 지낼만한 친구가 거의 없는 나로서는 퇴직 후 누구와 사교생활을 이어갈지 막막하다.

초중고대학교의 동창회도 거의 나가지 않고, 동호회도 하나 없는 나로선 직장 생활이 끝나면 사실상 사회와 연결되는 끈은 끊어지는 셈이다.

회사에 다닐 때는 싫던 좋은 매일 얼굴을 대하던 직장 사람이 있었으니 소외감이나 고립감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이젠 어쩌지 하는 마음에 하루종일 불안하고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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