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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다.

by B급 인생

부부만 보려고 만들어 놓은 밴드에 아내가 62회 생일을 축하한다는 댓글을 남겼다.

고마운 마음에 앞서 62회라는 숫자가 생경하게 훅 들어왔다.

아내가 아니었다면 내가 61살인지 62살 인지도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어느 날 달력을 보고 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러갔나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날따라 내가 62살이나 먹은 초로의 나이가 됐다는 게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퇴직전만 해도 주변에 정년을 앞둔 동료들이 수두룩해서 곧 60대로 진입한다는 사실에 별다른 소회가 일지 않았다.

부모님 환갑때엔 온 가족과 가까운 지인이 모여 잔치를 벌이다시피 했지만,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 하니 어쩌면 나의 이러한 태도는 당연했다.


그렇다 치더라도 60대가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라는 듯 몸과 마음에서 나타나는 징후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주차장에서 어디다 차를 세워두었는지 아득하게 느껴진 지는 한참 되었다.

언젠가부터 마른침이 나도 몰래 기도로 넘어가 사래가 자주 든다.

이젠 뒷짐을 지어야 걷는 게 편한 건 어쩐 일일까?

지하철을 탈 때마다 교통카드 대신 아파트 카드키를 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너도 늙어봐라'던 어른들의 말씀이 비로소 피부에 와닿는다.


요즘은 세월이 나이대만큼의 속도로 흐른다는 낡은 시쳇말이 예사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루는 그럭저럭 지루하지 않을 만큼 지나가는 듯한데, 어느 순간 뒤돌아 보면 한 주가 휙휙 스쳐가고 어느 틈에 한 해가 저만치 달아난다.

이러다 어느새 70대로 접어들고 노인이라 불릴지도 모르겠다.

하긴 아직 사회적으로 노인축에 들지도 않는데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아도 별로 눈총을 주는 것 같지 않고, 나 또한 안절부절못하지도 않는다.




퇴직 무렵 또래의 동료가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우린 인생을 즐길 기간이 앞으로 고작 10년 밖에 남지 않았다고.

옆에서, '그게 무슨 소리냐 인생 100세 시대인데 말도 안 된다'라고 했지만, 그러는 그 사람의 표정에도 수긍하는 낌새가 확연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현실적으로 영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지금도 체력이 달리고 만사의 의욕이 덩달아 시들어 가고 있는데, 10년 후쯤 70대에는 과연 지금 만큼이나 몸과 마음이 따라줄까 자신하지 못하겠다.


더구나 부부 두 사람 모두 건강하고 의욕 넘치는 삶을 살 것이라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한 사람이라도 문제가 있다면 나머지 한 사람의 생활도 정상적이지 못하는 것이 노후의 삶 아닐까?

앞으로 10년간 후회 없을 정도로 재미있고 신나게 인생을 즐기는 쪽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은 그래서 더 현실적 주장인 것이다.

지금 심정으로는 최소한 80대까지는 거뜬하지 않을까 싶지만 날로 시들어가는 육신을 체감하노라면 허풍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최근 몇 년간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기며, 몸살이며 단골처럼 찾아왔다.

운동을 꾸준히 해왔고 술담배도 하지 않으며 현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무리한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았는데 몸이 쇠잔해지고 있다는 증거일까?


봄이 지척인데 이번에 찾아온 감기는 참 오래간다 싶다.

한 일주일 앓고 나면 훌훌 털고 일어날 줄 알았다.

첨엔 목이 칼칼하더니 콜대원을 두통이나 먹었는데도 별 소용이 없었다.

재채기와 함께 콧물이 줄줄 흘러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감기는 약을 먹으나 마나 보름은 간다고 했지만, 낫기는커녕 한 달이 다 가도록 기력만 날로 소진되고 있는 듯하다.


하루 종일 골골대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아 이게 늙어간다는 것이로구나 새삼 몸으로 마음으로 체감하고 있다.

아무리 체력관리를 한들 밀려오는 노쇠현상까지 막을 도리는 없는 것 아닌가?

속절없이 가는 세월이 야속하지만 어찌할 것인가.


얼마 전에 오랜만에 전 직장 동료들을 만났다.

나와 한 사람이 먼저 도착해 다른 사람이 도착하면 바로 먹을 수 있게 고기를 시켜 굽고 있었다.

모두 도착하자 종업원 아주머니가 술은 뭘로 하실 거냐고 물었다.

다들 이러저러해서 술을 안 마시겠다고 해 중년 남자 네 명이 안주만 주워 먹는 꼴이 되었다.

한창 일 할 땐 회식 자리에서 소주 두어 병쯤 거뜬히 해치우고, 2차까지 가는 게 기본이던 사람들이었다.

종업원 보기가 민망해 맥주 한 병을 시켜 컵에 나누어 놓았지만 자리를 파할 때까지 비워지지 않은 술잔도 두 잔 있었다.

술을 꺼리는 이유는 대동소이했다.

술로 몸이 망가져 큰 수술을 한 사람도 있고, 이제 몸과 마음이 술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마디로 술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나이가 된 것이다.

우린 술 대신 공깃밥을 시켜 한 때 안주였던 삼겹살을 반찬으로 맛있게 먹었다.




그 주 다른 날에는 고등학교 동창생들도 만났다.

젊었을 땐 한 해에 서너 번 만났던 사이였는데 해가 거듭할수록 뜸해지더니 요즘은 1년에 한 번 만나기도 힘들다.

그나마 누군가가 나서서 얼굴 한번 보자고 운을 떼야 겨우 서넛 모이는 정도다.

나처럼 퇴직한 사람도 있고, 예전처럼 정신없이 일할 시기는 지났을 터인데 참 이상하다.


한 친구가 말했다.

1년에 한 번은 날을 정해놓고 의무적으로 만나자고.

우리가 평균 90살까지 산다고 하면 1년에 한 번 만나도 30번을 채 못 본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30번만이라도 만나기나 할지 자신이 없다는 듯한 표정들에서 쓸쓸함이 어렸다.

헤어질 무렵엔 서로가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면서 늙어가는 얼굴을 안쓰럽게 쳐다보다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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