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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립선비대증과 탈모

by B급 인생

나이가 들면 숙명처럼 몸에 찾아오는 현상이 있다.

백발과 주름살로 상징되는 노화는 내용연수가 꽉 찬 물품 같은 몸 이곳저곳에 기능저화와 오작동을 일으킨다.

노안과 더불어 백내장이 오고 무릎관절과 성기능이 쇠퇴한다.

어느 노화현상도 반갑지는 않지만 남자에게만 생기는 몹시 불편하고도 당혹스러운 증상이 있다.

바로 전립선 비대증이라는 질병이다.

오죽하면 의학적으로 질병으로까지 분류하고 있겠는가?


남자라면 언제부턴가 오줌을 누어도 다 눈 것인지 덜 눈 것인지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들 때가 온다.

아랫배에 힘을 준다고 더 나오는 것도 아닌데, 다 끝났거니 바지를 추스르면 그제야 찔끔하는 때도 많다.

참으로 남에게 말하기도 난처한 증세이다.


밤에는 자다가 여러 차례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잠을 설치기도 한다.

화장실에 다녀와서도 또 언제 요의가 찾아올지 몰라 기다리느라 푹 자질 못한다.




나도 50대에 접어들면서 소변보는 게 시원찮았다.

화장실에 가면 분명 내가 먼저 시작했는데 늦게 온 옆의 젊은 친구가 먼저 끝내고 바지를 추키는 모습을 자주 보면서 뭔가 이상이 생겼음을 느꼈다.

처음엔 나이가 들어 이제 체력이 달리니 힘차게 오줌도 못 누는구나 싶었다.

게다가 이제 남자 구실도 제대로 못할 정도가 되었다는 생각에 풀이 죽었다.


알고 보니 또래의 직장 동료들도 비슷한 증세로 고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그들과 잡담을 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나름의 비책을 유심히 듣기도 하였다.

TV를 볼 때마다 가수 남진이 남자의 자존심이라며 큰소리 뻥뻥 치고, 가수 진성이 지구력에 태클을 걸지 말라고 외치는 쏘팔메토 광고도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러다 몇 통을 사다가 아내 몰래 먹어보기도 했지만 남자의 자존심과 지구력은커녕 오줌발이 날로 시들어가기만 했다.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비뇨기 관련 지식을 찾아보니 내 증상은 전립선비대증이었고 남자가 나이가 들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일종의 노화현상임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요도 양옆에 붙은 전립선이라는 기관이 나잇살 붙듯이 점점 커지게 되고, 가운데 요도가 눌리면서 좁아져 소변처리가 시원찮아지는 증상이었다.

그런 지식도 없이 기력이 쇠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만 알고 노년의 가수 남진과 진성이 주먹을 불끈 쥐고 외치는 고함소리만 부러워했던 것이다.

집 근처에 용하다는 비뇨기과를 찾고 나서야 전립선 비대증의 실체를 제대로 알게 되었고, 그러기까지 거금을 들여 쏘팔메토와 시간만 낭비한 셈이다.




1년 반 정도 전립선 비대증 약을 처방받아 먹고 있는데 당장 효과가 났다.

약은 두 종류를 처방했다.

하나는 전립선을 키우는 호르몬을 차단하는 약이었다.

또 하나는 요도의 근육을 이완해 오줌길을 넓히는 약이었다.


하지만 약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되니 결국은 어느 시기에 전립선을 제거하던지 축소하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의사는 말했다.

나의 경우는 아직 수술할 단계는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진료를 받고 계속 약을 먹는 수고가 불편하다면 수술을 빨리 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약을 복용한 후 언제부턴가 어지러움증이 생겼다.

오랫동안 앉아 있거나 누워 있다가 일어나면 눈앞이 캄캄해지고 방향감각을 잃곤 했다.

의사에게 물어보니 전립선비대증 약에 들어있는 근육이완제 성분 때문에 생기는 기립성저혈압이라고 했다.

눕거나 앉아있을 때 아래로 쏠린 혈액이 일어날 때 제 때 위로 올라오지 못해 생기는 부작용이라고 했다.

몸에 악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일상생활이 불편하고 나이가 더 들어 신체 기능이 떨어지면 낙상 사고가 자주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게다가 장기간 복용하면 갈수록 약효가 떨어져 언젠가는 수술을 할 수밖에 없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했다.

수술하면 다른 부작용도 생기지만 어차피 할 수술이라면 빨리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나이가 들면 많은 사람을 고민하게 만드는 노화현상 중에 탈모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나는 다행히 부모님의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아 주변으로부터 머리숱이 어쩜 그렇게 많냐고 부러움을 사기는 했다.

주변의 또래 중에는 40대 초 언저리부터 머리숱이 성글어진다고 걱정했고 60줄에 접어든 요즘 아예 훤한 보름달 같은 이들도 상당하다.

그들이 고민을 늘어놓고 하소연할 때마다 이제 손주가 하나둘씩 생기는 나이가 됐는데 외모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타박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나도 언제부턴가 이마 양옆이 조금씩 깊어지는 듯하고, 정수리의 머리숱도 점점 엉성해지니 슬슬 걱정이 되고 있다.

해서 비오틴을 먹느니 맥주효모를 먹느니 탈모 샴푸를 쓰느니 슬그머니 대처해 오고 있긴 하지만 별무 신통인 듯하다.

탈모가 심한 친구들에게 별일 아니듯 했지만, 막상 내게 그런 조짐이 생기자 나도 남에게 보이는 외모에 집착하는 것이다.

젊어서나 늙어서나 멋있게 보이지는 않더라도 나이 들어 보이고 싶지는 않은 심정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한 번은 TV 건강프로그램을 보다가 관심을 기울이게 만드는 말을 듣고 인터넷을 검색했다.

전립선 비대증 약 중에 탈모 치료제로 쓰이는 성분이 들어 있다고 했다.

실제로 조금 적은 용량으로 탈모치료제로도 처방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의 남성 탈모제로 탁월한 효과가 입증되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전립선을 살찌우는 어느 남성호르몬이 동시에 모낭을 위축시켜 탈모를 유발하는 모양이다.

그 호르몬을 억제하는 성분으로 전립선 비대증약을 개발했는데, 의도치 않게 탈모속도를 늦추고 모발성장도 촉진하는 효과도 함께 발견한 것이다.

용량의 차이만 있을 뿐 전립선비대증과 탈모 치료제로 같은 성분의 약을 처방한다고 한다.

비뇨기과와 피부과의 전문의들의 유사한 지식정보가 상당수 올라와 있는 걸 보니 의학계에서는 상식인 듯했다.

원래 심장병 치료약으로 개발되었다가 우연히 발기부전 치료효과를 발견한 비아그라와 유사한 케이스다.


해서 전립선 비대증 수술을 빨리 해야 할지 말지 망설이던 나는, 전립선 비대증 증상이 악화되지 않는다면 약을 장기간 복용해도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일석 이조, 도랑치고 가재 잡는 격이다.




나이를 먹어가니 세상사가 모두 새옹지마라는 고사에 자꾸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떤 일이 생겼다고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노장철학의 대가 최진석 선생은 도덕경하면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만 떠올리라고 한다.


"유무상생(有無相生)"


세상 모든 일의 작동원리는 유와 무가 서로 엉킨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즉 대립되는 국면끼리 유전자나 새끼줄처럼 서로 꼬여 있다고 한다.

세상사는 동전의 양면처럼 이것이 저것이고 저것이 이것인 것이다.


나는 도덕경에 전개되는 모든 아포리즘이 이 원리의 설명을 위해 계속 반복하는 변주로 구성되었다고 보았다.

그중 내가 좋아하는 "총욕약경(寵辱若警)"이 그 변주의 하나다.

"총애를 받거나 수모를 당하거나 모두 깜짝 놀란 듯이 하라"는 말씀이다.

어느 일이던 총애받거나 욕먹을 씨앗을 함께 잉태하고 있다는 뜻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되는 것이 세상사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골이 깊으면 산도 높다.

세상사를 한쪽면으로만 경솔하게 판단하면 안 된다.

즐거우면 슬픈 일도 뒤따를 수도 있고,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이라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예혜약동섭천(豫兮若冬涉川)", 그래서 모든 일을 대할 때, "마치 겨울에 살얼음 낀 내를 건너듯이 조심조심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다.




전립선 비대증으로 약을 먹으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했는데, 나도 몰래 탈모 치료를 함께 하고 있었던 셈이다.

오늘도 속 상한 일이 있더라도 마음을 잘 다스려 넘어가자.

어찌 알겠는가?

그 일이 예기치 않은 행운의 씨앗일지...



* 참고로 가임기 여성이 그 약을 만지거나 복용시 태아에 영향을 주니 각별히 조심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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