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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인생 Jan 28. 2022

나이 듦이 두렵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정년퇴직을 목전에 둔 동료 한 사람이 겪었던 일이다. 급하게 재취업 제안을 받아 관련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 이리저리 바삐 알아보던 차였다. 꼭 필요한 서류부터 챙기려고 관련부서에 전화를 했다. 부서 내에서도 업무가 세분화되어 담당자를 정확히 몰라 직제표상 비슷한 업무의 직원에게 전화를 했다. 이런저런 항을 문의하는데, 상대가 갑자기 말을 끊더니 귀찮다는 듯 한마디 했다.


"선생님, 그건 제 소관이 아니니 저한테 물어보지 마세요."


자신을 대하는 불손한 응대나 말투는 별로 서운하지 않았다. 퇴직을 앞두고 문의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테니 사무적으로 대할 수도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10년 이상 차이나는 회사 후배가 '선생님'이란 호칭 대선배를 부를 때 사용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선생님'이란 호칭이 그렇게 비하의 의미로 다가올 줄도 몰랐었다. 당황하여 얼결에 수화기를 내려놓긴 했지만, 그날 밤 복잡한 심경과 함께 거의 뜬눈으로 지새웠다. 화도 났지만 그보다는 허망하고 허탈한 기분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초라하고 볼품없어진 자신을 현실에서 면할 수 있던 계기였다.


우리 동료들은 후배의 불손한 태도를 개인의 인성문제로 돌리면서 '그 친구 원래 건방진 친구니까 맘에 두지 말라'고 다독였다. 개중에는 아직 퇴직 전인데도 이러니 퇴사하면 '선생님'이 아니라 아예 '아저씨'라고 부를 놈이라고 불같이 화를 내는 동료도 있었다. 하지만 남일 같지 않은 분위기에 다들 침울해지고 있었다. 회사 후배도 이럴진대 바깥에 나가면 오죽할까 하는 두려움도 엄습했다. 나이 먹어 감이 한탄스러웠다.




올해 첫 월급이 작년에 비해 확 줄었다. 맨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다. 임금피크제를 들어선 상태니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는데도 막상 월급명세서를 받아보니 마음이 허했다. 월급 통장을 확인한 아내도 걱정스러운 한숨만 쉬었다. 아직 아이들이 제 밥벌이를 못하고 집안 대소사도 많이 남았기에 당연다.


엄동설한에 정리해고라도 당했다면 정말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이었을 텐데 잘리지 않고 몇 푼이라도 받으니 다행이라 자위했다. 이 나이에 다른 직장을 구했더라도 이 정도의 보수는 언감생심이라 여겼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이 쓰린 것은 감출 수 없다. 무엇보다 이제 내 사회적으로 그만큼 쓸모없어졌다는 증거라서 월급명세서를 보는 내내 씁쓸했다.


현업을 떠났으니 한창 일하는 후배들과 똑같은 대접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수는 줄더라도 정년을 보장받는 것만도 어디겠는가 하고 자위할 도리밖에 없다. 주어진 임무도 젊은 후배들을 도와주는 보조업무다. 일할 때 터득한 노하우와 경험으로 후배들 지원하고 자문하라는 취지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최신 정보와 술이 하루 다르게 쓸모 없어지는 첨단정보통신시대에 지난 경험과 지식이 뭔 소용 있겠는가. 더구나 MZ세대로 불리는 자식뻘 후배들에게 한물간 선배의 충고와 조언이 잔소리와 꼰대질로 받아들여질게 뻔하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있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일이다. 이래저래 회사에서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재취업이 쉽지 않고 그나마 취업이 가능한 일자리도 지금보다 못한 조건이라 낮 가죽 두껍게 버티고 있도리밖에 없다. 그러니 월급이 줄었네, 내 몸값이 형편없어졌네 하며 불평불만을 할 처지가 못 되는 것이다.


재취업 정보를 접하거나 명예퇴직 공고가 뜰 때마다 마음이 흔들린다. 성질 급한 사람이나 심약한 사람은 그것을 핑계로 퇴사하기도 한다. 실은 그것이 바로 회사가 바라던 바 이기도 하다. 퇴직 후 제2의 인생은 경제적인 수준보다 뭔가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들 강조한다. 매일 아침마다 갈 곳이 있고 하루를 보람 있게 보낼 수 있는 소일거리를 가지는데 의미를 두라고 한다. 하지만 60줄에 들어서도 여전히 경제적으로 빠듯한 형편이라면 다 공허하게 들린다. 막상 본인이 퇴직할 무렵이면 몇 푼이라도 더 쥐어주는 직장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이직 전에 누리던 권위와 대접을 누리고 싶은 욕심은 버리지 못한다.


근자에 주가가 높은 직종이나 고위직을 거친 동료들이 많이 떠났다. 퇴직전 회사와 관련된 일로 먹고사는 기업에서 모셔간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험이나 경력보다는 이전 회사에서 맺어놓은 인맥을  모셔갔다. 현업 때 아무리 뛰어난 실력자라도 경험이나 지식보다는 '전관예우(?)'를 앞세운 영업력이 더 큰 가치가 있어서다. 하지만 3년가량 지나면 기존 인맥에 변화가 생겨 연결고리가 느슨해지고, 재취업한 직장에서도 몸값이 떨어진다. 그나마 이런 경우는 우리 세대가 선배를 모시던 때였다. 더 큰 걱정은 다른데 있다. 말년이 되면 후배들에게 애물단지 취급당하는 현실에서 퇴직한 선배를 제대로 대접해 줄지도 의문이다. 대접까지는 아니더라도 전화나 제대로 받아주고 알은 체만 해주어도 감지덕지다. 그게 요즘 세태다. 이제 재취업 자체가 힘들다.

  



한참 멀게 느껴졌던 정년퇴직도 성큼성큼 다가오는 듯하다. 고락을 함께하던 동년배들도 많이 떠나 주변이 하다. 퇴직준비를 위해 뭘 하나 물어보려 해도 마음 편히 연락할만한 사람이 사내에 점점 없어진다. 나는 전문직이긴 하지만 실무를 떠난 지 오래라 지식과 경험이 이미 낡아버렸다. 심지어 현업에 있을 때부터 사내 정치가 서러 인맥관리도 엉망이었다. 공과 사가 분명한 MZ세대가 주력인 요즘 같은 세에 예전처럼 퇴직한 선배를 챙겨줄 리도 없다. 한마디로 재취업 시장에서 내세울 만한 무기가 하나도 없다. 앞길이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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