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장소

by B급 인생

한동안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란 말이 회자되었다.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되면서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을 가리킨다.(네이버 두산백과). 한때 핫 플레이스였던 홍대 앞이나 경리단길의 변화과정이 대표적이다. 처음에 임대료가 저렴한 쇠퇴 도심지역에 소형 카페나 공방, 갤러리들이 들어서면서 독특한 분위기가 입소문을 탄다. 그 지역에 점차 유동인구가 늘어나고 상권이 활성화되면 자본의 논리가 개입한다.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올리게 되고, 그만큼 감당할 수 있는 대형 점포 중심의 상업지구로 변모한다. 결국 기존의 소규모 점포들이 떠나게 되고, 그곳만의 독특한 분위기도 사그라진다.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하던 재개발 사업도 마찬가지다. 이전보다 더 높은 이윤을 창출하는 상업·업무시설과 고소득층 주거지 중심으로 바뀌면, 원래의 거주자들은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는 현상이다. 삶의 동력이 아니라 자본의 운동법칙이 지배하는 현실 속의 비극이 실현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정현종의 시 <방문객> 중에서)라고 했던 어느 시인의 통찰대로 라면, 원주민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들의 미래가 함께 떠난다.

내 직업은 공간을 다루는 도시계획이다. 인간의 삶에 필요한 다양한 공간들을 재구성해서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직업철학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공간을 객체화하여 기술 공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보통이다. 조금 더 세련된 표현을 하면, 서구 합리주의적 사고에 근거를 두고 이상적인 공간이 있다는 전제하에 일을 한다. 여기에 근본적인 함정이 숨어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내 직업에 몇 가지 회의를 느끼곤 했다.


그 하나는 이상적 공간의 존재 여부에 대한 의문이다. 즉 파라다이스쯤 되는 이상 공간이 현실세계에서 과연 실현 가능한가에 대한 회의다. 그 공간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관념일 뿐이다. 전문가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묵인할 수밖에 없다. 관념적이긴 하지만 직업적 준거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나갈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들 수 있다.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이 하는 일은 한계가 있다. 인간에게 지적능력의 한계, 정보 습득 기능의 한계, 실천수단의 한계가 있는 한 이상적인 공간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미리 절망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정치적 존재다. 비록 이상적 공간은 없더라도 인간사회에서 서로 만족하고 사는 공간,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그곳이 합의된 이상향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만든 자기만족의 변명이 ‘차선의 이론’ 아니겠나? 또 하나, 인간은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 바로 기억하고 그 기억을 공유하는 존재이다. 기억 하나하나가 모이면 역사가 된다. 역사가 녹아있는 공간은 이제 객관화된 제3의 대상이 아니다. 그 공간은 너와 나, 우리가 공유하는 의미 있는 공간이 된다. 우리는 이제 그것을 더 이상 '공간(Space)'이라 하지 않고 '장소(Place)'라고 부른다. 사람은 '이상적인 공간'보다 '의미 있는 장소'에 더 가치를 두는 법이다.


“장소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생활세계이자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토대이다. 인간답다는 것은 의미 있는 장소로 가득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며, 인간답다는 말은 곧 자신의 장소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장소를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에드워드 렐프, 김덕현 옮김, <장소와 장소 상실> 중에서)


나는 30년 넘게 공간을 다루어 왔다. 먹고 잠자며 쉬는 곳(주거), 일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곳(산업), 즐기고 소비하는 곳(상업), 그리고 그대로 두는 곳(녹지)을 어떻게 배분하고 조합해야 행복한 삶터가 될지를 고민하며 살았다. 하지만, 나는 공간을 다루었을 뿐, 장소를 보전하고 가꾸는 일은 소홀히 하였다. 도시계획의 대상을 ‘공간’에 두고 객체화하면 가치관이 개입될 여지가 별로 없어 일이 쉬워지기 때문이었다. 도시계획의 대상을 ‘장소’에 두게 되면 그곳 사람들의 일상에 개입해야 하니 복잡해진다.


일상에서는 개개인의 기억들이 생성되고, 그 기억들이 켜켜이 쌓이면 역사가 된다. 그 역사를 담은 곳은 어느 공간에도 없는 그곳만의 장소다. 장소의 의미와 맥락을 무시한 채 관념 속의 이상 공간을 추구하면 역사는 사라진다. 공간은 창조되지만 삶터가 없어진다. 이런 진실이,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에서 민원이라는 이름으로 평가절하되어 온 ‘사람’의 저항과 ‘장소’의 울부짖음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사람이 원하는 것은 공간이 아니라 장소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상향이 아니라 일상의 삶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