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공동체 우수모델의 뿌리, 풀무학교(홍성 1편)
현 오산중 ·고교의 전신으로, 민족 교육사에 크게 공헌하였다. 초대 교장 백이행에 이어, 1910년 교육주지(敎育主旨)를 기독교정신으로 고쳐 나부열 목사를 설립자 겸 교장으로 맞았으나, 그 후 사정에 의하여 기독교측과의 관계를 끊었다. 당시 교육을 맡았던 지도교사에는 여준 ·윤기섭 ·유영모 ·장지영 ·이광수 ·염상섭 ·김억 등이 있었고, 운영을 맡았던 교장으로는 백이행의 뒤를 이어 이종성 ·나부열 ·박기선 ·조만식 ·유영모 ·주기용 등 많은 애국지사들이 심혈을 쏟았다. 학교 출신인 중 주요 인물로는 김소월, 김기석, 주기철 목사 등이 있다.
3 ·1운동 후 이승훈이 체포 구금되자 일제는 독립운동의 본거지라 하여 탄압을 강화하였고, 끝내는 교사(校舍)를 불태웠다. 1923년 출감한 이승훈이 김기홍 ·오치은 ·조시연 등의 도움을 받아 학교를 재건, 종합교육기관으로서의 계획을 추진하던 중 1930년에 이승훈의 급서(急逝)로 모든 계획이 중단되었다. 그 후 근근이 명맥만을 이어오다가 광복 후 오산의 전통과 이념을 되살리게 되었으나, 6·25전쟁으로 학교를 부산으로 옮겨 1953년 4월에 오산고등학교로 재건하였다. 1956년에 현재 위치인 서울 용산구 보광동(普光洞)으로 이전하였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오산학교 [五山學校]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