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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ngland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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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 Nov 14. 2016

Season 2, 8months

벌써

오늘로 정확히 영국에 온지 정확히 8개월째가 되는 날이다. 어학원 수업은 이제 정확히 4주가량 남았고 그 뒤에 시험도 치고나면 어학연수생활은 끝나는 것과 다름 없다. 그 뒤에 조금 더 영국에 머물기는 하지만 마음에 조바심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그토록 돌아가고 싶었던 한국이였건만 얼마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미운정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마음을 흔든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느리고 화질이 안좋다는 이유로 찍지 않고 넘긴 풍경들이

귀찮다고 넘기고 지나친 소소한 이벤트들이

돈 아끼겠다고 문 앞의 입구에서 메뉴판만 눈으로 훝어보던 식당들이

여름은 더워서, 겨울은 추워서, 날씨가 좋으면 집이 포근해서, 비가 오면 젖기 싫어서

핑계를 만들어가며 남긴 이불위의 조그마한 나의 몸 자국이

입으로만 떠들고 수첩에 적어놓기만한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한 속이 빈 추억들이

몇개월간 쌓이고 쌓여 지금에서야 하나둘씩 떠오른다.


지금은 옷장속에서 먼지쌓인 디지털 카메라가

차곡차곡 이벤트를 기록하고 티켓과 팜플렛을 모아놓은 수첩이

오후 수업시간만 되면 울려퍼지는 알람소리가

얼룩지고 헤어진 체로 침대 옆 구석에 밖혀있는 영국에 오기 전 산 새 신발이

잠이 들기전 계속 속삭인다. 잡념이 어느 순간 원념으로 탈바꿈하여 옥죄어온다.

넌 후회없는 영국 생활을 보냈냐고, 계속해서 머리를 쉴새없이 두들긴다.


이 후회는 꽤 오래전에 했다. 아마 마지막 일기를 쓰고 난 뒤 쯤이였던 것 같다. 영국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고 한거는 딱히 없는 것 같았다. 뭐랄까, 한국에 돌아갔을 때, 난 이걸했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할만한 것들이 없었다. 특히 여자들이 각종 처음들어보는 식당과 디저트카페이름을 줄줄 읊어대면서 자기들끼리 웃으면서 대화하는 것을 보고있으면 나도 여기와서 먹어볼것들은 다먹어봐야하지 않나 하고 조바심이 생긴다. 그리고 남자들은 그 비싼 술들을 마구마구 마셔대면서 런던의 밤을 보내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면 또 술좀 많이 마시러 돌아다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최근 하루하루 조금씩 더 아끼면서 한번씩 거하게 한끼를 해보기도 했다. 유명한 짬뽕집이라던가, 브라질 고기뷔페라던가, 랍스타도 먹어보고, 스테이크도 썰어보고, 영국 도미노 피자도 주문해서 먹어보고, 일식집이라던가, 한식집, 이탈리아 음식점 등 노력해보았다. 그래서 남은게 뭐냐고? 요즘 샤워할때 생전 보지도 못했던 뱃살이 보이는게 전부다. 처음부터 먹는거에 별 관심도 없고 음식점이름을 외운다거나 디저트이름을 외우는거에 잼병이라 남는게 별로 없었다. 한가지 좀 유의미하게 남는게 있었다면 우리나라랑 좀 많이 다른 음식점 인테리어들, 나중에 글을 쓸 때 참고할만한 자료를 얻었다는 것 정도다.

그리고 술도 한번 양껏 마셔봤다. 맥주가 대부분이긴 했지만 위스키도 섞어서 마셨다. 뻔하지만 추운 새벽에 덜덜 떨면서 집을 향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서 다음날 빌빌거리고 돈만 알콜램프에 태우듯 알콜향과 함께 재가되어 사라져버렸다. 물론 술을 마시고 영어로 대화를 해보거나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해보는 등 좋은 경험이기도 했지만 워낙 내향적이라 에너지소모가 너무 심했다. 진짜 일주일치 군량미를 약탈당한 병사의 기분이였다. 집에 돌아와서 침대에 누우면 그 주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박탈감.


그래서 다음으로 한건 쇼핑이였다. 이것도 정말... 죽을 뻔했다. 여자랑 쇼핑을 가면 억소리난다는 기분을 새삼스럽게 다시 느꼈다. 얼마전 곧 한국에 돌아가는 친구가 아웃렛에 꼭 가고싶다고해서 같이 간적이 있었다. 비스터빌리지라고 옥스포드 근처에 위치한 아웃렛인데 옥스포드를 한번도 안가보기도 했고 태어나서 한번도 아웃렛에 가본적이 없었기에 재밌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전에는 쇼핑을 오후에는 옥스포드로 돌아와서 관광을 하기로 했다. 비스터빌리지에서는 솔직히 명품 브랜드에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서 (친구들로부터 주워들은게 전부다.) 친구의 설명을 꼬박꼬박 경청하고 필기도하면서 따라다녔다. 덕분에 부모님 선물을 뭘 할지 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 부터였다. 거의 200개정도되는 브랜드들이 즐비해있었는데 그곳 전부 하나하나 들려서 가격을 비교하고 찜하고 다돌면 다시 찜한 곳으로 되돌어가서 목록을 다시 만들면서 하나씩 추가되고 점심먹으면서 추려내었다. 10개정도가 되었는데 결국 돌고 돌고 또 돌아 하나만 남았다. 그때는 이미 구름낀 하늘이 노랗게 물드는 중이였다. 정말 징했다. 결국 옥스포드에 돌아가자마자 버스타고 런던으로 돌아와야했다. ( 몇일 뒤 혼자 한번 더 갔다고 한다....)

아직 영국에 못 가본 곳들이 많다. 아일랜드도 가고싶고, 에든버러나 스톤헨지, 캠브릿지, 맨체스터 등 잘알려진 도시들을 가보지 못했다. 시험이 끝나고 한 2주간 좀 돌아다닐 생각이긴 한데 그때 자금이 충분할지 잘 모르겠다. 12월 말 동생이 영국에 놀러와서 관광하고 유럽을 한번 다시 돈 뒤에 한국에 들어갈 예정이라 돈이조금 빠듯하다.


남은기간 열심히해서 시험도 통과하고 여행도 잘 끝마쳐 무사히 한국에 돌아가자. (물론.. 한국이 지금 엄청 골때리는 상황이라곤 하던데... 갑자기 돌아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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