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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 Nov 23. 2016

Season2, Fallen Leaves

낙엽이 진다.

푸르렀던 내 손바닥 보다 큰 나뭇잎들은 어느새 노랗게 물들어, 아니 물들자마자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아름다움을 미쳐 뽐내기도 전에 땅에 떨어져 빗물에 먹혀버리는 잎들을 볼때면 서럽기도하다. 마치 작금의 청년들을 보는 듯한 기분이다. 청춘을 한창 즐겨야 할 때에, 꽃피우자마자 수능에, 취업에 시들시들해져버리는 모습과 겹쳐져 보였다. 돌아갈 때라 그런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 마음에 팍하니 날아와 꽂힌다.


이사를 가고 난 뒤에 매일 아침, 학교를 향하는 길에는 꼭 지나가는 길이 있다. 집과 튜브역 중간에는 힘없이 축 쳐진 늙은 나무가 담넘어로 언제나 길을 가리고 있다. 처음에는 고개를 숙여 피해가거나 손으로 가지를 밀쳐내고 지나다녔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흘러 그 길이 익숙해지고 눈감고도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난 더 이상 그 나무에 의식하지 않았다. 언제나 고개를 조금 숙이고 음악에 집중해 다니면 나도 모르게 그나무를 스쳐지나갔을 때가 많았다. 여름, 그 나무는 습기를 머금고 눅눅한, 아니 부드러운 손바닥만한 나뭇잎들로 언제나 내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더 이상 그 나무는 나에게 방해가 아니였다. 스쳐지나갈 때마다 잘 다녀오라고, 어서오라고 나를 반겨주는 그런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아니 작별의 인사를 하기도 전에 급작스럽게 겨울이, 이별이 찾아왔다. 더 이상 내머리를 쓰다듬는 손은 부드럽지 않았고 앙상하게 남은 가지가 거칠게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나를 반기는 부드러운 잎사귀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문득 달력을 보니 어느새 11월이 끝나가고 돌아갈 때가 눈앞까지 와있었다.


9월이 끝날 때,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차갑고 습한 공기, 차와 버스로 빼곡히 채워진 도로, 사람들이 바쁘게 거리를 오가는 거리, 무심코 들이마신 공기의 냄새가 익숙했다고 느꼈을 때, 이미 이별은 이미 가까워져있었다. 그저 모른척, 계속될것이라는 소망이였을지도 모른다.


가을의 런던은 내가 처음 본 런던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분명 그때는 이른 3월 봄이라고도 할 수 있는 때였지만 봄과 가을이 없는 이곳에서는 3월이나 10월이나 그저 여름과 겨울의 경계일 뿐이였다. 날씨가 변하는 과도기에 도착한 나의 심장은 으슬으슬했고, 또 뜨거웠다. 런던의 봄과 가을은 거울에 비친듯이 쏙 닮아있었지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달랐다. 3월의 난, 설렌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고, 낯선 곳에 홀로 떨어져 아둥바둥 적응 하기위해 정신 없었다. 아니 그전에 고작 하루만에 쓸쓸함과 실망감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첫 수업을 마치고 홀로 광장에 앉아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 부모님과 통화를 하던, 울먹임을 샌드위치와 함께 씹어 삼키던 내가 있었다.


그런 순간이 있었기에 어학 연수생활을 악착같이 헤쳐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혼자있다는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고, 식어가는 열정을 데우기 위해 많은 것을 배웠었고, 여러가지를 경험했다. 분명 이곳에 오기전보다 견문은 넓어졌고 내적으로도 성숙해졌다. 지금은 런던이 너무 익숙해져버려서, 처음 왔을 때의 그 설렘이나, 두려움은 더이상 느낄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가끔 일기를 훑어보며 지난 몇개월을 되돌아보면 조금은 그 때의 기분이 떠올라 가슴을 두근거리기도 한다.


이별은 언제나 시원섭섭한 감정이다. 10개월간 지내면서 힘든일, 기쁜일 모두 겪으면서 정이 들었다. 그토록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끝날 때가 되서야 아쉽고, 미련이 남는다. 있을 때 잘해라라는 말을 괜히 하는게 아니다. 사람은 언제나 후회하는 법이고, 미련도, 아쉬움도 이제 편안히 낙옆과 함께 비에 녹여내어 흘려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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