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차 서포터의 내 팀 이야기
K리그.
나의 수원(삼성 블루윙즈)은,
강.등. 되었다.
승리가 반듯 필요했던 2023년 K리그1 마지막 38라운드 홈경기에서 강원과 0대0으로 비긴 참혹한 결과였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서포터가 가득 들어찬 빅버드 N석은 망부석처럼 굳어버렸다.
피치를 뛰었던 수원 선수들과 수원을 응원했던 관중들 모두 시합이 끝났다는, 더 이상 잔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몰랐다.
잔류했다는 원정팀 강원의 선수와 팬의 함성이 반대편에서 요동쳤음에도 빅버드는 침묵의 심연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당혹감, 분노, 슬픔, 기막힘, 허탈함, 상실감......
선수단과 팬들 각자에게 피어난 수많은 감정들이 수렴구를 찾지 못한 채, 빅버드 허공으로 떠올라,
어느 한 팬이 내던진 홍염의 연기처럼 자욱하게 배어났다.
패배로부터, 강등되었다는 믿기지 못할 사실로부터 선수와 팬들, 모두가 도망갈 출구를 찾지 못했다.
같은 시간 나는, 빅버드로부터 아주 먼, 제주섬 한복판에서, 빅버드만큼 사람들이 들어찬, 국회의원 의정보고회 한 편에 앉아, 이 황당한 현실을 핸드폰 화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경쟁을 앞둔 현역 국회의원은, 이 지역구는 내것이니 누구 하나 넘보지 말라는 패기로 총동원 세몰이를 했고,
넓은 행사장에서 한시간이 넘는 동료의원들의 지루한 축사가 끝난 후 본격 등장한 장본인인 국회의원을 향한 연호와 박수소리가 넘쳐났다.
내가 앉아 있는 현장 속 환호성과 유투브로 지켜보는 빅버드의 침묵 속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 역시 길을 잃은 셈이었다.
20년 넘게 응원하던 팀의 속절없는 추락을 십 년 가까이 지켜보았다.
리그를 4번 우승하고,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를 2번 제패했으면, FA컵을 5번 들어 올린, 축구를 좀 안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는 축구의 명가가, 대한민국의 축구문화를 만들어왔다는 축구수도 나의 수원이 2부리그로 강등당할 것이라고는, 승강 플레이오프를 거쳤던 작년에도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올해 역시, 초반부터 연패를 당하며 꼴찌로 떨어졌지만, 이내 반등할 것이라고, 수원은 저력이 있다고, 괜찮다고 다독였다. 부진하더라도 새로 부임한 김병수 감독의 전술이 입혀지면, 오롯한 수원의 색이 덧입혀지면서 명가의 지위를 되찾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즌 중 가장 당황스러운 순간은 김병수 감독의 황망스럽운 경질이었다.
구단 운영, 선수 스카우트, 외국인 선수 선발, 국내 전지훈련 실시 등 대우는 업계 최고인데 하는 일은 업계 꼴등인 수원의 프론트진은,
아무런 계획도 없이, 삭발의 결기를 다졌던 감독을 하루아침에 내치며, 기껏 내놓은 해결책이라는 것이,
팬이라면 어느 누구도 욕할 수 없는, 수원의 살아있는 레전드인 선수 겸 코치인 염기훈을 감독대행으로 선임한 것이다.
이것은 아랫돌 빼어 윗돌 괴는, 필연적으로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어이없는 결정이었다.
전략과 전술도 없이, 그저 형님 리더십에서 기인한 선수들의 투혼에 기대어 위기를 탈출하겠다는 이 약삭빠른 결정에 모든 팬들은 말문이 막힐 정도로 어이 없어 했다.
왜냐하면, 십년간 체력이 빠질 때로 빠진 수원은, 이제 정신력만으로 위기를 벗어날 만큼의 기본과 맷집이 없는 팀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그친다고, 분위기를 띄운다고 해서, 갑자기 선수들이 분발하여 연승을 거둘 수 있는 팀이 아니란 말이다.
예전에나 레알 수원이었지, 지금은 매탄고를 갓 졸업한 유스에, 매년 갈아치워야 하는 어디서 어떻게 뽑아왔는지 퍽이나 의심스러운 용병들에, 타팀에 가면 주전으로 나서기 힘든 선수들이 대다수인 약팀일 뿐이다.
수원에게 필요한 것은 또렷한 전술을 가지고 선수들에게 주입할 수 있는 감독이 필요한데, 이제 P급 라이센스를 이수하고 있는 '수원을 위해 왼발을 써온, 최고의 레전드' 선수겸 코치에게 '독만 든 성배'를 돌린 셈이니, 팬들의 반발은 뻔하지 않는가!!!
12월의 빅버드는 좋은 기억만 있다.
2008년 12월에 내린, 함박눈을 기억한다.
수원의 마지막 리그 우승날!
챔피언 결정전에서 FC서울을 물리친 후, 우리는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 이듬해 겨울 태어난 둘째 아들이 이제 내년이면 중3이 된다.
시간이 많이도 흘렀는데, 수원은 내년이면 2부에서 뛸 것이다.
2부이건, 3부이건,
나는 열렬히 수원을 응원할 것이다.
그럼에도 참으로, 참으로 안타깝고 눈물나는 밤이다.
2023년 12월 2일 토요일 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