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페인 여행기
(정보 없는 신변잡기 이야기)

01. 제주에서 서울까지

by 온평리이평온

[여행 1일차]



어제 퇴근하는데, 왠지 모를 상실감에 마음이 헛헛했다.

헛헛함의 연유는 무엇일까?

두려움 일수도, 일탈의 씁쓸한 뒷맛일 수도 있겠다.


여행의 첫 하루가 밝았다.

썩 유쾌한 꿈은 아니었는데,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동남쪽 오름 너머 먼동이 튼다.

발그레한 일출의 기운은 일몰과는 느낌이 다르다.

스러지는 기운이 아니라 피어나는 꽃봉오리 같달까? 일출의 기운을 뒤로하고 제주공항에 간다. 이른 아침인데도, 공항 플랫폼에서 지인을 두 명이나 만났다.

수속을 위해 늘어선 줄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지만 그럭저럭 항공기에 올라 선잠에 들었다.



도착한 김포공항은 흐릿하고 제주에 비해 꽤나 쌀쌀했다.

무거운 캐리어를 밀고 끌며 지하철을 탔다.

인천 계양역.

10년 전에 출퇴근을 위해 매일 지나치던 그곳.

감회가 새롭다.

유현이네 새 아파트는 예전 논밭이었던 인천 원당과 김포 유현사거리 사이에 우뚝 솟았는데, 시골뜨기 아이들이 우와 하는 환호성을 지를 정도로 멋지다.

아늑하고 포근해서 이 집에 살면 누구라도 집돌이, 집순이로 변할 것 같다.


점심은 우리가 십년전 살던 동네, 인천 원당에서 먹기로 한다.

신기하다.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변한 아라역 주변과는 다르게 이 동네 원당은 변한 것 하나 없이 세월의 더깨만 뒤집어 쓴 느낌이다.

아련한 감정이 피어올라 좋으면서도 늙어가는 내 표상인 것 같아 일종의 짠함이 몰려 온다.


벌써 만 보를 걸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자마자 혼곤한 잠에 빠진다.

두 시간을 자고 택시를 불러 일산 스타필드로 간다.

이곳에서 큰아이 빈이를 만날 예정이다.

아들은 요 근처 군부대에서 복무 중이다.

엄마, 아빠와 두 동생을 만나러 외출허락을 받은 아이와 쇼핑몰에서 반갑게 해후한다.

확실히 군인의 옷을 입은 아이는 의젓해졌다.

이렇게 자랐구나.

품속에 품고만 있어야 할 것 같던 아이가 이제 우리는 지키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다니.

마음이 참 묘하다.



아이와 든든한 저녁을 먹고 스티커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막내는 덥수룩한 머리를 쇼핑몰 내 헤어숍에서 다듬었다.

제주보다 두 배 비싼 비용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을 낸다.



이렇게 여행의 첫 하루를 보냈다.

걷는 동안 둘째 아이와 나는 허리통증으로 다리가 저려서 고생했다.

하루에 이만 보 이상 걸어야 한다는 유럽여행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지만, 이젠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이니, 우리의 허리와 다리가 잘 버텨 주기를 바란다.


아내는 유현이네 집에서 유리, 유현 남매와 유쾌한 수다 삼매경 후 하루를 마감한다.

쇼미더머니를 못 봐 아쉽다는 아이들이 방으로 하나둘 들어가는 밤 11시.



나도 이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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