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페인 여행기
(정보 없는 신변잡기 이야기)

02. 서울에서 바르셀로나까지

by 온평리이평온


[여행 2~3일차]



유현네 집에서 늑장을 부렸다.

커튼이 드리워진 아파트는 흐린 햇살 속에서도 어둠을 지켜주었다.

그래도 번지는 빛사위에 느린 기지개를 켜고 부스스한 얼굴로 하루의 오전을 마주했다.

아내가 사온 커피와 유현이 만들어준 샌드위치로 늦은 아침을 먹었다.



정오가 넘었고 우리는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인천공항으로 간다.

지하철을 타고 환승을 하고 덜컥이는 전동차에 몸의 리듬을 맡겨본다.

공항이다.

다국적센터가 되버린 인천공항에는 큼지막한 캐리어를 끄는 사람들 천지다.

한겨울에 이들은 다 어디로 떠나는 걸까?

너무 일찍 도착해서 수속을 마치고 점심을 먹어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좋았던 것은 이번에 타는 비행기가 에어차이나라서, 아시아나 항공사의 다이아몬드 회원인 나는 수속도, 탑승도 빠르게 할 수 있었다는 거다.

그리고 라운지 이용까지.

배가 불러서 뷔페는 이용하지 않고 컵라면 하나 먹은 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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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서 베이징공항으로 간다.

두 시간의 비행.

맛없는 기내식이 한 번 나왔고, 먹고 치우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착륙이 시간이 왔다.

이제부터는 생존게임.

낯선 환경에서 입국수속도 밟아야 하고, 환승 호텔에 가서 쉴 것이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왕푸징에 가서 양꼬치도 먹으려고 필요한 앱도 깔아왔다.

하지만 입국수속이 길어지고 해서 환승호텔에 도착해 입실하니, 외부에 나가는 것은 요원하다.

그냥 샤워하고 침대에 잠깐 누워있다가 다시 공항으로 향한다.

베이징에서의 몇 시간.

인터넷이 되지 않아 모두가 갑갑했던 시간이 흐른다.

호텔의 TV까지 칙칙거리고, 와이파이 역시 터지지 않아, 어른도 아이도 힘든 시간이다.

이제 인터넷이 되는 핸드폰 없는 삶을 살아갈 수가 없다.

와이파이도 잡아보고, 한국에서 준비해 온 이심개통도 시도해 봤지만, 느린 인터넷은 어찌할 수 없어 포기한다.




그렇게 다시 떠날 시간.

항공사가 마련해 준 버스를 타고 다시 공항행.

그리고 지리한 출국 수속.

날은 춥고 공항안도 춥다.

우리가 탈 바르셀로나 비행기 앞 플랫폼에는 유럽인들이 후드를 뒤집어쓴채로 벤치에 모로 누워있다.

우리도 빈 벤치를 찾아 쪼그리고 앉다가 점점 눕는다.

아내가 챙겨준 비타민을 먹으며 최대한 체력을 아끼고 건강을 유지하려 애쓴다.

바르셀로나에 도착도 못했는데 이미 우리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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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분 후면 바르셀로나행 비행기에 오른다.

밤이 지속되는 12시간의 지리한 여행을 비좁은 자리에서 버텨내야 한다.

나름 낭만이라 생각했는데, 고생이 많다.

그래도 난 이런 시간이 행복하다.

말도 안통하고 낯선 환경이지만, 이리저리 부딪히며 눈에 익히는 이 시간이 날 살아있다고 느끼게 한다.

10년을 일하면 은퇴를 한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기력은 쇠하고 세상에 적응하기도 힘들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배낭 하나 메고 세계 일주할 날이 내게 오기를 고대한다.



어떤 여행을 꿈꾸냐고? 예전에는 정처없이 떠돌아다니고 싶었는데, 이제는 주요 도시에서 한달살이를 하면서 근처를 여행하는 정주형 여행을 꿈꾼다.

교토에서의 한 달, 치앙마이에서의 한 달, 이런 방식으로 말이다.

이제 출발시간이 다 되었나 보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기 시작한다.

우리도 짐을 다시 챙기고 이 긴 무리에 합류해야 할 시간이 왔다.

곧 간다.

바르셀로나.

여행기간 내내 비가 온다고 하는데, 제발 비가 그치고 해가 나기를.

맑은 날이기를.


소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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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비행의 틈바구니 속에서 지쳐 노트북을 꺼냈다.

비좁은 의자에 구겨져 앉아 12시간을 버티고 있자니, 잠을 자도, 밥을 먹어도 시간은 쉬이 가지 않는다.

그것도 지구가 어둠 속으로 숨는 궤적을 따라 비행기가 나아가고 있으니 끊임없는 밤의 향연이라 어둠 속에서 시선을 딱히 둘곳도 없어 괴롭다.

좌석 앞 옆으로 칭얼대는 아이들이 있어 기내는 항상 시끄럽다.

어른들도 불편해서 몸을 이리저리 꼬는 형편인데, 말 못하는 아이는 우렁찬 울음으로 자신의 불편을 표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자리를 바꿔주겠다는 승무원의 호의도, 우리 역시 이렇게 아이를 키웠어요. 괜찮아요. 이게 다 사람사는 세상 아니겠어요라고 다독인다.

물론, 언어가 통하지 않아 손짓으로 표현한 것 뿐이지만, 나의 이 진심이 통했기를 바라본다.




지금쯤은 유라시아 대륙 평원 어디쯤을 높이 날고 있을 비행기 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그저 눈을 감은 채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편다.

사실 이런 시간을 원했다.

미디어의 홍수 시대에 아무것도 못한 채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만인가.

나는 컴컴한 비행기 안에서 눈을 감았지만, 내 마음은 벌써 십년 후 은퇴를 하고 세계일주를 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한달살이를 하면서 세계를 떠돌아야지. 캐리어에는 밥솥 하나 챙기고, 옷은 최소한으로 준비하고, 내가 좋아하기로 작정한 도시들, 삿뽀로, 교토, 치앙마이, 이스탄불 이런 도시에서 느리고 자적한 삶을 살아내야지.

그 지역 축구리그도 직관하면서, 근처 관광지와 높은 산도 오르면서.

지역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엿보면서.

상상도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 여행이 일천한 나의 행복한 상상은 곧 바닥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짧은 이 상상이 언젠가는 이뤄낼 현실의 작은 씨앗으로 비옥한 땅에 심어질 것이니깐.

떡잎이 되고 싹을 틔우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 전까지, 나는 나의 현실을 묵묵히 살아가면서, 아이들을 키워내고, 건강을 지켜내고, 자산을 불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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