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바르셀로나의 바다
[여행 4일차]
12시간의 비행 끝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여전히 밖은 어두웠지만 긴 어둠도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입국심사를 마쳤고 큰 짐을 찾아 공항을 나선다. 다행히 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 차를 타고 막 동이 튼, 그러나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우중충한 바르셀로나의 도로를 달린다.
바르셀로나의 첫 느낌을 말한다면, 햇빛이 힘을 잃어서인지, 삭막한 제주의 느낌이랄까?
두껍게 자란 야자나무가 가로수로 줄이어 서 있고, 여전히 푸름이 가득한 바르셀로나의 겨울.
사람들의 옷차림도 조금은 가볍다.
저택인 형네 집에 도착해서 형수, 아이들과 반가운 해후를 한다.
짐을 부리고 방을 배정받고, 식탁에 모여 형수님이 끓여주신 만둣국으로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집 구경을 하고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 보따리를 풀고 잠시 쉬다가 장을 보러 나선 형 부부를 따라 나섰다.
동네 마트에 갔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정육점처럼 생긴 하몽 코너.
잘 절여진 돼지 뒷다리가 수북하게 걸려 있는데, 스페인 사람들은 이걸 사서 집에 걸어놓고 겨우내 야금야금 잘라 먹는다고 한다.
짭짤하고 덜 말려진 육포 같은 맛.
맛들이기 시작하면 나도 겨울동안 다리 한쪽을 쓱싹쓱싹 잘라 먹을 것 같다.
여기에 치즈를 곁들인다면, 완전 와인과 맥주 안주로 딱이겠다 싶다.
스페인의 점심시간은 조금 늦는 편인데, 보통 13시부터 16시까지 라고 한다.
동네 사람들이 다 몰렸는지, 중국인이 운영하는 뷔페집에 한참을 기다려 입장한 뷔페집은 크게 인상적이지는 않았지만 한국 뷔페에 비교하면 과일과 디저트, 커피가 맛있었다.
특히 티라미슈는 신선하면서도 달콤해서 입안에서 눈 녹듯 사라졌다.
미식 여행인지 배가 꺼질 시간이 없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스페인의 맛을 느낀다.
배를 꺼치려고 철로가 늘어진 해변에 가서 잠깐 걷는다.
겨울이고 날이 흐려서 백사장은 을씬스러웠지만 큰 개를 동반해 산책하는 주민들이 바닷가의 적막을 덜어 주었다.
백사장 옆에는 요트 선착장이 있었다.
돛을 단 고급 요트들이 선착장에 가득 정박하고 있었는데, 뾰족하게 솟은 돛들은 낮고 흐린 창공으로 치솟은 풍경은 이국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아마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경제력이 비슷할텐데, 집도 그렇고 요트도 그렇고 더 잘사는 느낌이 나서 약간의 시샘이 나기도 한다.
집에 도착하자 장대비가 쏟아졌다.
바닥 난방이 없는 거실은 추웠지만 벽난로에 장작불을 부치자 이내 따뜻해졌다.
모처럼 형네 부부와 대화 타임.
주로 신앙적인 이야기를 나눴는데, 밤 8시밖에 되지 않았지만 한국시간으로는 새벽 4시라서 마치 날을 새며 이야기한 것 같은 새벽의 낮은 느낌 속에 침잠한다.
내일의 일정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1층에 마련된 침실의 침대로 몸을 맡긴다.
여기 시간 새벽 4시.
눈을 뜬다.
캄캄한 어둠속에 뒤척이다가 미리 깨어 있는 아내와 칠흙같은 암연속에서 대화를 이어간다.
오늘은 한인교회를 갈 것이다.
그리고 이동하기 쉬운 축구팬의 성지 FC바르셀로나의 캄프누에 가보려고 한다.
경기장 보수공사 중이라 구장 투어는 못하겠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가스토어에서 져지와 굿즈를 사려고 한다.
그리고 시내 중심부인 고딕지구로 가서 개선문도 보고 대성당도 보고 아내가 점찍어 둔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맛있다는 맛집도 찾아가려 한다.
내 계획에는 근처 피카소 미술관과 인근의 재래시장, 몬주익 언덕까지 그림을 그려났지만 아마 게으른 여행자인 우리 가족 특성상 다 가보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기대가 된다.
이제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