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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한가지 Mar 18. 2020

O리단길과 한국인의 공간인식

방에서 거리로, 객관화된 자아와 목적지향적 사회

경리단길, 송리단길, 황리단길... 몇 년 전 SNS에서 시작된 O리단길 유행은 우리 사회의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고 있다. 대형마트로 인해 상권 붕괴를 걱정해야 했던 일부 골목길은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수많은 지자체가 제2의 경리단길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비단 O리단길 유행뿐만이 아니다. 뉴트로풍 도시재생으로 유명해진 서울 익선동의 한옥 거리, 서촌의 문화 거리와 대전 소제동의 뉴트로풍 골목길 등 잊혀 가던 옛 골목과 거리들이 새로운 문화와 여가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필자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왜 하필 거리와 골목길인가?"


우리 머릿속 거리와 골목길을 떠올려보자. 물론 아파트 단지는 빼고 말이다.

거리를 떠올리면 도시에 거주하든, 촌락에 거주하든 '보행도로 즉, Street'가 연상된다. 사람 여러 명이 지나갈 수 있도록 꽤나 넉넉한 보행도로와 바로 옆에 위치한 차선, 그리고 반대편에는 상가가 즐비한 도시 중심부의 번화한 거리가 연상된다.

만약 거리를 걷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행도로만 있는 한적한 곳보다는 상가가 즐비한 번화가를 걷는 것을 선호한다. 혹자는 이것을 '이벤트 밀도'니 뭐니 하는데, 범죄안전에서 역사적 사실 그리고 경험적 즐거움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필연적으로 도시의 번화가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그렇기에 도시가 번성하고 지금까지 번화가가 사랑받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거리는 이러한 측면에서 사랑받는다.


그렇다면 이제 골목길을 떠올려보자.

무엇이 생각나는가? 사람의 키 높이가 될까 말까 한 벽담과 소소한 집들, 서로 왕래하는 동네 주민들이 연상되는 정겨우면서도 도시화와 산업화에 묻힌 어떤 친숙한 공간이 생각날 것이다. 골목은 과거 산업화 이후 철저하게 파괴하고 무시받아왔다. 그런 골목길이 이제야 각광받기 시작했다. 물론 앞서 언급된 거리의 특징을 몇 개 담아서 사랑받는다.  

요즘 사랑받는 거리+골목의 대표적인 전형이다.


"거리+골목의 100% 성공 공식"


위에서 떠올린 거리와 골목을 적적히 섞어보자. 상상하기 힘든가? 그렇다면 위 사진을 보자.

좁은 도로와 즐비한 가게들, 사람과 차가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이 혼재되어있다. 거리와 골목길의 특성을 적절하게 잘 섞었다. 핫플레이스 경리단길의 모습이다. 거리와 골목을 섞은 전국의 수많은 장소가 새로운 도시 거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휴먼 스케일의 대두"

O리단길과 같은 거리와 골목길 혼재된 장소가 각광받는 이유는 다양하다.

대표적으로는 "휴먼스케일"과 관련되어 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한마디로 인간이 경험하고 통제할 수 있는 어떠한 공간이나 사물, 장소의 범위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앞서 말했듯이, 도시의 번화가는 많은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문제점이 하나 있다면 사람에 비해 지나치게 너무 크다는 점이다.  

도시의 정주의 상징인 동시에 엄청난 경제적 요소의 상징이다. 그런 도시에는 한정된 토지에 최대한 많은 이익을 창출한다는 경제적 논리가 반영되어 크기와 규모가 "휴먼스케일"을 아득히 뛰어넘는 거대한 빌딩과, 상가, 거리, 도로가 나타났다.

새로 조성될 광화문 광장의 조감도. '사람'을 위한 광장이지만, 사람은 매우 작은 도시의 부속품에 불과하다.

 정말 많은 사람이 도시에 정주하지만, 정작 거대한 도시에서는 자신이 이 도시의 이용자이자 주인이라는 생각을 들기 어렵게 한다. 우리로 하여금 거대한 빌딩과 도로에 묻힌 작은 부속품이라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공기질은 어찌나 나쁜지, 직장에서 마주하는 상황들은 왜 이리 절망적인지  빨리 안락한 집으로 탈출하고 싶게 만드는 신기한 매력(?)이 있다.


한국인의 대부분의 도시의 거대한 빌딩과 다를 바 없는 곳에 거주하고 있다.

거대한 도시에서 벗어난 집으로 왔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도시의 거대한 빌딩과 다를 바 없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 대출받은 은행 이자는 무섭고, 들어오는 상가 부동산에 보이는 아파트 가격이 내려갈라 노심초사다. 집에서도 도무지 "휴먼스케일"을 느낄 수 없다. 여기가 안락한 나의 집인지, 나를 감싼 도시의 포장지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은 "휴먼스케일"을 느끼는 공간을 갈망하기 시작한다.


노래방의 모습

"방 문화의 퇴락과 객관화된 자아"


노래방, 찜질방, PC방 모두 여전히 한국인이 사랑하는 공간이지만, 노래방부터 시작되어 일부 '방'은 퇴락의 길을 걷고 있거나 여가와 문화의 공간으로 젊은 층에게서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공간들이다.

한국인의 '방 문화'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한마디로 어떠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아를 표상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여러 명이 단체로 몰려가 같은 콘텐츠를 즐기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은 한국인의 대표적인 여가 활동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경제성장이 정점을 찍고 각종 사회문제의 대두와 어두운 전망 그리고 개인주의 확산으로 한국인은 더 이상 '방'을 찾지 않는다.


황리단길의 모습

"글을 마치며..."


이제 사람들은 "휴먼스케일"을 느끼는 아늑한 거리+골목으로 찾아오고 있다.

이런 거리+골목에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편하게 개별적으로 다양한 콘텐츠와 경험을 즐긴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사람이 있는 공간이다. 자신이 사회적 상황을 완전히 탈출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이런 연유로 사람들은 거리+골목을 찾는다.

하지만, 그들이 있는 곳은 여전히 '길'이다. 길은 항상 A와 B사이를 이어주는 목적 지향의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 휴먼스케일을 느끼고픈 사람들, 다양한 경험을 갈구하면서도 사회 속에 내재한다는 편안함. 그리고 그 순간에도 어떠한 목적을 성취하고자 하는 '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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