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기픈詩문학동인> 모임을 올해는 서울에서 한다는 안내를 받고 고속버스표를 예매했다. 강남터미널까지 가는 일이야 문제가 아니었지만 그다음 지령이 난제였다.
서울 시민이나 지하철을 일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혼자서는 한 번도 서울에 가 본 적 없는 시골 할매 셋이 대중교통 만을 이용하여 만남의 장소를 찾아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터미널까지야 고속버스가 쪼르르 데려다 주니 문제가 없지만, 도착해서 정해준 노선의 지하철을 타고 몇 정거장을 가라, 지정한 곳에서 내려라, 밖으로 나와 몇 번 마을버스를 타고 가다가 지시한 곳에서 내려라!
이 복잡한 지령을 수행하기 위해세 명의 촌할매(80세,77세,75세)는 두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10시 20분 버스를 탔는데 강남터미널에 도착하니 12시 50분, 점심부터 해결해야 했다.
터미널 안에서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북적북적한 사람의 물결을 헤치며 지하철 탑승구를 찾아갔다.
*지령1. 지하철 승차권 구매하기
자동 발매기 앞에서 각자 신분증을 꺼내 들고 경로우대 티켓 구매에 성공! 누구의 도움 없이 자기 손으로 자동발매기에서 티켓을 사고 탑승구를 통과하는 일도 세 사람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다른 노선을 타고 엉뚱한 곳으로 가버릴지도 모르니 바짝 긴장을 하고 지하철에 탑승했다.
*지령2. 지하철에서 내리다
아홉 개의 역을 지나 지령대로 내려서 역사바깥으로 나왔다.
*지령3. 마을버스 타기
알려준 번호의 마을버스를 타야 한다. 세 사람 중 한 명이 교통카드가 있어서 버스에 탔는데, 빨리빨리 카드로 요금정산을 못한다고 버스기사가 퉁박을 준다.
*지령4. 호텔 후문에서 하차
얼마큼 가다가 접선장소(?)인 호텔후문에서 내렸다.
드디어 촌할매 세 사람은 세 가지의 대중교통을 갈아타며 목적지에 무사히 안착했다.
기픈시문학회는 26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백제권 여성들만의 詩문학동인이다. 전남 광주에서 태동하여 지금은 전남 전북 경기 서울 등에 살고 있는 시력이 짱짱한 여성문인들로 1년에 한두 번 모임을 갖고 매년 테마가 있는 시를 모아 동인지를 만들어 오고 있다. 작년에 스물다섯 번째 동인지를 발간했다.(회장 이향아 시인)
피치 못할 사정으로 네 명의 불참회원이 있어서 아쉬웠지만, 정다운 만남과 만찬 후에는 차와 다과를 놓고 정담을 나누었다. 각자의 시 한 편을 낭독하고 작품의 배경이 되는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어떤 드라마보다도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 자정이 가깝도록 함께 웃고 공감하고 서로서로 마음을 어루만졌다.
둘째 날은 청와대 방문과 인사동거리에서 쇼핑과 점심식사를 했다.
경복궁 주차장에 주차하고 셔틀버스를 타고 청와대에 입장했다.
대부분 청와대를 다녀간 분들이었지만 나처럼 초행길인 몇 분도 있었다.
대통령의 집무실과 귀빈을 영접하던 접견실, 영부인의 집무실 등 건물의 내부도 잠깐 다녀 나왔지만, 잘 가꿔지고 관리받는 널따란 청와대 안뜰과 나무들이 나는 너무 좋았다. 본관건물 뒤쪽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올라가지 못했지만, 안뜰만 천천히 거닐어도 일만 보는 족히 채우리라 생각되었다.
바람도 없고 따사로운 볕이 내리쬐는 오늘, 사방이 아늑하고 평화로워서 시간 여유만 된다면 두어 시간쯤 쉬엄쉬엄 걷다 쉬다 머물고 싶었다.
다음 코스는 인사동, 말로만 듣고 TV 화면으로만 보던 인사동거리는 참으로 활기가 넘쳤다.
외국인들도 많고 생동하는 사람의 물결로 가득 찼다. 길거리 음식뿐만 아니라 오가는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홀릴 만한 것들이 엄청 많았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걷다가 눈에 띄는 개량한복을발견했다. 점심 먹고 되돌아 나오면서 4만 원이나 깎는 흥정 끝에 한 벌을사고 말았다.
오늘은 맘에 들어서 샀지만 과연 몇 번이나 입을 것인지...
1박 2일, 좋은 사람들과 여유로움을 즐기며 추억을 쌓은 멋진 시간이었다. 함께한 촌할매 세 사람에겐 색다른 도전, 쉽지 않은 미션을 훌륭하게 수행한 역사적인(?) 나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