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비 속 백일장대회(154)
해마다 4월 이맘때 열리는 군산문인협회(지부 회장 문 영) 주최 전북백일장대회(제26회)가 월명체육관 정문 안쪽 야외에서 열리기로 한 날, 하필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실은 어제부터 비 예보가 있어서 장소변경 공지가 뜨겠지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아침 일찍이 대회장소를 게이트볼 실내경기장으로 옮긴다는 문자가 떴다.
주최 측에서 참가신청을 한 사람들에게 모두 안내를 했겠지만, 옮긴 장소가 원래 하려던 장소에서 50여 미터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어서 참석하는 사람들이 크게 혼선을 빚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었다.
비가 내려서 참가신청을 하고 오지 않는 사람도 있겠다 싶으니 지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회시작 시각인 10시가 가까워지자 걱정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간단한 식이 진행되고 모두가 기다리던 오늘의 詩題가 공개되었다. 초 중 고 일반을 대상으로 운문, 산문 같은 주제가 내걸렸다.
'목련' '소풍' '어머니'
글짓기에 주어진 시간은 10시부터 12시까지 두 시간.
완전히 개방된 야외에서 하는 것보다 넓은 실내에서, 그것도 사방이 유리로 되어있어서 전혀 실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곳이라 좋았다. 적당히 시원한 날씨와 솔솔 뿌려주는 이슬비가 한몫을 단단히 해주기도 했다.
대회날짜가 중 고등학생들의 중간고사 시험기간과 맞물렸고, 학교에서도 옛날보다 글짓기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니 정말 안타깝다. 그래도 옛날만은 못하지만 오늘 참가자수가 80여 명쯤 된다 하니 여러 가지 형편을 고려해 볼 때 아주 나쁘지는 않다고 한다.
이번에는 특히 일반인들의 참가자수가 많아서 놀라면서도 반가웠다. 전에는 학생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일반인은 구색 맞추기 정도였는데, 지역사회에서 글쓰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어나고, 글짓기 대회에 학생 아닌 일반인의 수가 30명 넘게 참가했다는 것은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몇몇 회원들과 심사를 위촉받아서 대회과정을 관심 있게 눈여겨보면서 현장을 지켰다. 미래의 문사들이 주어진 주제로 어떤 생각을 펼칠까 한껏 기대를 하면서.
대회가 끝나고 심사를 맡은 우리는 자리를 옮겨서 그룹을 분담하여 심사를 했다. 여러 차례 돌려 읽고 의견을 나누며 엄정한 심사를 하려고 애썼다. 작품심사를 마치고 수상자의 순위를 정하는 일까지 마무리지었다.
옛날부터 백일장대회라 하면 화창한 날씨에 너른 마당에서 당일 내걸린 시제로, 즉석에서 글을 써서 우열을 가리는 것이라 날씨가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오늘 비록 비가 내리기는 했지만 개방감 느껴지는 장소에서 대회를 치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벚꽃이 만개한 봄날이었으면 더 좋았을까? 꽃잎들이 눈송이처럼 날리는 날이었어도 좋았겠지?
그러나 오늘은 오늘대로 너무 좋았다.
화창히 개인 날은 아니었지만, 온통 유리로 되어있는 실내경기장에서 유리벽 가득 들어오는 빗물에 젖은 초록을 내다보며 글을 쓸 수 있다니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보슬비 사분사분 내리는 봄날 유리온실 같은 높고 넓은 실내! 정말 괜찮았다.
산수유 목련 벚꽃 개나리 등 일찍 핀 봄꽃들은 꽃자리를 내어주고, 꽃이 진 빈자리를 잎새들이 빠르게 달려와 채워준다. 눈길 돌리는 곳마다 아름다운 연초록 물결이 싱그럽다.
딱 이맘때, 4월이 끝자락을 펼치고 5월이 살포시 매무새를 다듬으며 문 앞에 다다를 때, 짙어가는 봄의 향연은 더욱 향기롭고 눈부시다.
샛노란 유채꽃, 붉은 영산홍, 우아한 모란, 라일락과 싸리꽃의 달큰한 향기, 가슴 뛰는 들판의 청보리 물결, 연두로 시작하는 초록의 물결은 아주아주 조금씩 진하기를 달리하며 하마 열두 가지 색깔쯤으로 줄을 서는 것 같다.
이렇게 좋은 계절, 이렇게 좋은 날에
봄을 여는 꽃 등 같은 <목련>,
설렘으로 기다리던 <소풍>,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 <어머니>
세 가지 주제로 저마다 제 나름의 사유의 뜰을 거닐었을 오늘의 글벗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