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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Jun 23. 2024

*보리수가 익을 무렵

*딱 이맘때쯤(166)




모내기를 끝낸 들판이 초록 융단처럼 윤기를 더해가는 시기, 나무들의 짙푸른 그늘은 더 넓어지고 더 두꺼워지고, 꽃송이 앉았던 자리마다 애기사과 애기감들 조잘대며 토실토실 살 오르는 때, 생각만으로도 입 안에 군침 도는 자두랑 살구랑 바알갛게 익어가는...



딱 이맘때쯤이네요. 연거푸 아스라이 사라져 간 날들이 표면 위로 떠오릅니다.

울컥울컥 그리움에 목이 멥니다.

그깟 지난 추억 몇 꼭지에도 감정이 출렁거리다니 나이를 많이 먹었습니다.

나는 원하지 않았는데, 세월이 들어와 도리질 치는 내게 욱여넣었나 봅니다.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도 뼈마디가 아립니다. 뼈마디만 애린 것이 아니라 가슴을 휩쓸고 가는 이 눔의 시린 바람이 아픕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날들이, 몇 해가 며칠 같이 휙휙 지나가서 낡은 기억 속에 파묻혀 갔네요.

시간은 속절없이 쌓이고 금쪽같은 오늘은 가속도가 붙어 자꾸 뒤로 달아납니다. 사람도 정도 푸석푸석 삭아져 내립니다. 6~7년이 꿈결같이 지나갔네요.

그동안 곁을 떠난 사람도 많았구요, 고장 난 육신을 땜질하느라 병원과 친구 먹은 지인들도 많습니다. 시나브로 잊혀져 가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다시 깊어진 유월~

올해도 오디의 계절은 흐지부지 지나가고, 뜰에는 아직 보리수가 홍옥처럼 붉습니다.

전처럼 모임을 갖지 못하는 대신 손 닿는 데로 조금씩 따 나릅니다.

쨈도 발효액도 이젠 귀찮아서 들며 나며 몇 개 입 안에 넣고 맙니다.


(올해는 그나마 정다운 글동무들과 밖에서 점심 먹고, 집에 몇 명 데리고 와서 보리수 

주렁주렁한 가지를 몇 가지씩 잘라 안겨 보냈네요. 보수공사 중이어서 어수선하다는 핑계로...)


사라지는 것, 잊혀지는 것~

그렇게 오늘도 지나갑니다.




***

지난 이야기입니다.


(그날, 한 꼭지)



어제는 옥정리 우리 집에서 나루 문학동인들이 모였습니다.

보리수열매가 새빨간 보석처럼 익어서 모임을 앞당겼지요. 각자 준비한 봉지에 보리밥(보리수 열매)도  따고, 끝물인 오디도 따면서 하하 호호~ 즐거웠답니다.


보리밥 따기를 마치고, 저녁은 총무님이 준비해 온 찰밥, 김, 김치, 미역국과 다른 회원이 준비한 밑반찬 5종세트를 펼쳐놓고 즐겁고 맛있게 먹었답니다.

후식으로 또 다른 분들이 사 온 빵과 수박과 차를 마시며,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토론도 하고 자작시 낭독과 감상도 했답니다.


길어진 해 덕분에 5시부터 모여 8시가 넘도록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옥정리엔 고운 추억이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는....




***

(그날, 다른 한 꼭지)


장미의 향연이 펼쳐지고 나면 오디는 까맣게 익어 누가 손대지 않아도 후드득 후두둑 낙하를 시작해서 새까맣게 바닥을  덮습니다.

보리수열매 꽃처럼 익어, 가지마다 힘에 부쳐할 때 옥정리에선 나루문학회 연례행사를 치릅니다.


어제 모처럼 반가운 손님들로 웃음소리 가득했네요.

보리수열매를 따고 오디도 따 보고...

웃음의 여운을 물고 방죽가 <멍 때리는 방>으로 옮겨 맛깔스럽고 건강한 저녁식사를 했구요.


즉석에서 원두를 갈아 커피도 내려마시며 달달한 이야기꽃도 피웠네요. 신작시 낭독도 빠지지 않았지요. 

저야 장소만 빌려주고 푸짐한 행복은 덤으로 받았구요.

저녁나절 모임이어서 어둠이 내릴 때(9시 가까이)까지 옥정리엔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는 소식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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