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꽃을 탐하다 (172)
*문헌서원 돌아, 옥구향교 다시 보기
사랑하는 이가 돌아올 때까지 백일동안 기다리며 피고 지고 또 핀다는 백일홍나무(배롱나무) 꽃이 마구마구 피고 있다고 예서 제서 사진을 찍어 올리며 마음을 들쑤신다.
다른 곳보다 한참이나 더딘 옥정리 배롱나무도 연보라꽃이 먼저 자잘 자잘 꽃송이를 피워놓자, 진분홍 꽃이 뒤따라 꽃차례에 줄을 선다.
흰색 배롱꽃도 점잔을 빼더니 못 이기는 척,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꽃들은 때를 알고 저렇게들 곱게 피는데, 삼복더위를 지나는 이 더위 속에 나는 감기와 열애 중이다.
한 달 가까이 고약한 기침이 나를 놓아주지 않아서 몹쓸 병이라도 들은 양 바깥출입을 삼가고 있었다.
불과 몇 달 전인 2월에도 한 달이나 된통 앓고 난 뒤라 이번에는 좀 수월하게 지나가려나 했는데, 약발도
듣지 않고 주리를 튼다.
변종 코로나인가 의심이 들어 검사를 하면 결과는 음성인데도 중병처럼 앓고 있다.
두어 달 컨디션이 좋다고 무리를 했더니 체력이 방전되어 바닥을 치는 모양이다.
배롱나무꽃이야 내 집 뜰에서 봐도 하겠지만, 다녀온 사람마다 입에 침이 마르게 칭송하는 옥구향교의 배롱나무꽃을 올해는 꼭 가서 보리라 벼르고 별렀다.
옥구향교에는 수십 년 된 배롱나무가 여러 그루 있는데 요즈음 한참 피어나 장관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강 건너 서천의 문헌서원에도 배롱나무꽃이 아름답게 무리를 이루고 있다니 좀이 쑤셨다.
마침 아들이 여름휴가를 받아 내려와서, 가야지 가야지 말만 하던 문헌서원으로 먼저 길을 놓았다.
자동차전용도로를 타니 불과 30분도 채 걸리지 않아 목적지에 닿았다.
그런데 열 시쯤에 도착했는데도 주차장이 만차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아침부터 밤 아홉 시까지 종일 드라마 촬영을 한단다. 여기저기 세트를 지어놓고, 길을 막고 통제한다. 이런 낭패가!
촬영팀이 머무는 곳을 피해 대충 수박 겉핥기로 둘러보며 사진만 몇 장 찍고 돌아왔다.
너무 더워서 옥구향교는 다음 날로 미루고 군산으로 건너와 이른 점심을 먹고, 과일빙수와 팥빙수를 포장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아홉 시 즈음 옥구향교로 향했다. 우리 집에서 차로 십여 분 거리라 일도 아니다.
하마비 앞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홍살문으로 들어서니 이른 시각임에도 벌써 사진 찍는 사람들이 여러 명이 와 있다.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풍경을 여러 각도에서 렌즈에 담느라 열심이다.
높낮이가 다른 여러 채의 기와집, 외삼문 내삼문 등 솟을대문과 둘러친 담장이 임금님 행차 시에 받쳐든 커다란 일산인 양 화사한 진분홍 배롱나무꽃과 조화를 이루니 너무 아름다웠다.
향교나 서원을 둘러보며 그곳에 담긴 역사적 가치는 덮어두고 오늘은 오직 배롱나무 꽃가지에 마음을 다 주고 왔다.
가깝기도하고 이곳이 더 좋은 이유는 이곳 옥구향교에 오면, 명륜당, 동재, 서재, 제향각 등 공자와 성현들의 제사를 지내고 공부하던 향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시조인 단군을 모신 단군성묘가 담장 하나로 잇대어 있다.
그 옆의 대문 하나를 열고 들어가면 최치원선생을 기리는 문창서원이 있으며 서원 마당 남쪽에는 최치원선생이 어려서 그곳에 올라가 글을 읽었다는 자천대(누각)가 있다.
자천대는 원래 그 자리가 아니었으나, 나중에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어린 최치원이 낭랑한 목소리로 글을 읽으면 바다 건너 중국에까지 글 읽는 소리가 들렸다고 전한다.
이틀간 꽃을 탐하여 강 건너 고려말 충절인 목은 이색선생을 기리고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는 문헌서원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옥구향교까지 휘휘 다녀왔다.
참고로 고려말 충절로 三隱을 꼽는데 포은 정몽주, 목은 이 색, 야은 길 재 선생이다.
내 집 뜰에 있는 배롱나무들도 연보라, 진분홍, 하얀색으로 어여쁜 꽃을 피워내느라 깜냥에 애를 쓰고 있는데 다른 곳에 한눈팔고 돌아다녀서 나무들에게 미안하다.
이제 차분히 앉아서 향교와 서원의 차이점이나 인터넷선생님께 물어보고 간단히 요약하여 붙인다.
*향교
향교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전국의 각 지방에 설립된 관립교육기관으로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인재를 양성했다. 오늘날의 국립 중등교육기관으로 성균관과 더불어 전통교육의 중추를 맡아서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배출한 곳이다.
반면 서원은 조선시대 지방 향촌에 근거지를 둔 선비들(士林)이 성리학이념을 바탕으로 설립한 사립교육기관으로 선현에 대한 제사와 학문의 연구, 후학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였다.
지척에 있는 옥구향교는 다른 어느 지역의 향교나 서원과 차별화된다. 한 담장 안에 단군성조를 모신 곳은
흔치 않다고 들었다. 게다가 담장으로 구분된 대문 하나만 열고 들어오면 만나는 문창서원까지 한자리에 있으니 얼마나 귀한 명당자리인가?
군산시와 문화재청에서는 옥구읍성의 복원과 함께 향교의 활성화를 위해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지원도 충분히 해줘서,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고 사라져 가는 문화유산의 뿌리를 찾아 북돋아주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