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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Jul 26. 2024

*은성이랑 할머니 단호박빵 만들었어요

내 입맛은 아니에요(171)

*은성이랑 할머니 단호박빵 만들었어요


뒤꼍 밭에 서너 개 심은 토마토는 붉어지기 무섭게 새들이 먼저 찍어보고 쪼아 먹고, 옥수수 열 개는 심었더니 한 나무에 한 자루씩 달렸는데 어쩐지 덜 여문 듯 날씬하다. 두고 보다 수염이 마르기에 그저께 모두 따버렸다. 껍질을 벗겨보니 크기는 작아도 알이 새까맣고 야물차다. 열 개가 한 냄비에 쏙 들어간다.

누구 주고 말 것도 없이 수확이 참 알량하다.


오이는 장마에 물외 크듯 한다는 옛 어른들 말씀처럼 어찌나 잘 열리고 잘 크는지 아침마다 따서 우리도 먹고 지인들과 나눔 한다.

단호박은 딱 다섯 개 심었는데 얘들도 한 나무에 달랑 하나씩만 열린다.

처음 한 개는 따서 속을 파내고 꿀을 부어 쪄먹었더니 맛이 좋았다.

며칠 새 부쩍 큰 것 같아 4개를 따서  하나는 누굴 주고, 또 하나는 처음처럼 속을 파내고 꿀을 부어 쪄놓았더니 똑같은 방법밖에 없냐고 남편이 타박을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틀에 걸쳐 밥 대신 잘 먹었다.



방학이라 우리 은성이가 심심해서 못 견뎌한다.

엊그제는 마주 앉아 손톱 발톱에 봉숭아물을 들였다.

오늘은 무얼 할까? 궁리를 하다가 어떤 분이 밀가루도 설탕도 없이 단호박만으로 빵을 만들었다는 글을 올린 걸 생각해 냈다.

달걀도 있고 견과류는 캐쉬넛이 있으니 됐고, 건베리대신 곶감으로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제일 큰 단호박을 꼭지만 떼고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감자 삶기 코스로 한 번하고 조금 더 돌렸다. 

포근포근하게 잘 삶아진 호박에 만족해하며 달걀 네 개의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했다.


호기심 덩어리 은성이에게 거품기를 내밀며 한쪽으로 계속 저어보랬더니 너무 좋아한다.


그러더니 몇 번 휘젓고는 팔이 아파 못하겠단다. 이번에는 잘 삶아진 호박을 여러 조각으로 해체하여 씨와 껍질을 벗겨놓은 양푼을 내밀며 덩어리 없이 곱게 다지라고 했다. 덥석 덤비더니 절구공이에 차지게 달라붙는 호박을 어떡하느냐고 울상을 짓는다.


"쉬운 일이란 없는 거야"


"맞아요. 할머니!"


사진이나 찍으랬더니 물러나며 요 녀석 할머니에게 아부까지 할 줄 안다.


"와! 우리 할머니 대단하시다."


"할머니는 요리사 같아요."


초등 2학년인 은성이, 말도 잘하고 눈치가 빤하다.

기침이 멈추지 않아서 힘들어하는  내게 어제는 걱정 어린 표정으로


"에휴! 우리 할머니 기침이 나을 기미가 없네."


이런다. 어디서 그런 말은 주워듣고 적절한 곳에 써먹을 줄도 안다.

어쨌든 심심한 은성이와 할머니 둘이서 힘을 합해, 우리가 농사지은 단호박만으로 무가당 건강빵을 만들었다.

반죽한 것을 네모난 유리그릇 두 개에 부어서 전자레인지에 10분 돌렸더니 겉보기엔 근사한 빵이 나왔다.

한소끔 식힌 뒤에 잘라서 접시에 담아줬더니 맛있겠다며 한 조각 베어 물더니 반응이 시원찮다.


"맛없어? 할머니는 괜찮은데?"


"단맛이 너무 없어요. 내 입맛은 아니에요."


잠깐 눈치를 보더니


" 우리 둘이 수고해서 만들었으니까 그래도 먹을만해요. "


ㅎㅎㅎ~

건강빵이라고 우기려다가 딸기잼을 얹어서 먹으라고 할머니가 한 발 물러나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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