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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밥벌레

'시를 써도 되겠는가'에 토를 달다(195)

by 봄비전재복


비겁한 밥벌레 /전재복



한 시인이 말하기를


세상의 절반이 나머지 절반을 미워하는 이곳에서

시를 써도 되겠느냐고

탄식을 했다


진실을 알고 있는 척하는 사람들이

내 침묵 오해할까 고뇌하며


나무 아래서 주운 새 키우듯

그리움의 언어로

시를 써도 되겠는가

물었다


그리고 투사가 아니어서

미안하다고 했던가


밥벌레1.jpg


이어서 다른 한 시인이

발끈하여 쏘아붙이는

시에 날이 섰다


시를 써도 되겠는가

비겁한 중도라는 허울 뒤에 몸을 감추고


극단 된 양극을

자신만의 안위로

모두 끌어당기며


서로를 할퀴는 모국어의 썩은 뿌리에서

펄펄 살아 날뛰는 정신의 언어 하나 캐내지도 못하고


시인아! 시를 써도 되겠는가

문을 닫아야지

모든 문을 닫아야지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촛불1.jpg


두 시인의 설전 앞에

보탤 입이 없다

나는 비겁한 중도에 숨었고


참으로 같잖은 세상에서

나 따위가

껍데기로 소통하는 척했으며


펄펄 살아 날뛰는 정신의 언어 하나

캐내지도 못했으니


시를 써도 되겠는가

염치없어 차마 묻지 못하겠다

문 닫을 용기마저 없어서

아직도 언어의 쓰레기나 보태는

아! 나는 비겁한 밥벌레구나!



[시인 '류시화'와 '이선정'의 <시를 써도 되겠는가>에 토를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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