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3일 새벽3시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아내가 휴대폰 기사를 검색하더니 큰아이를 불렀다.
"오늘 밤 11시 반에 유성우가 떨어진데, 우리 이거 볼까?"
그 말을 들은 큰아이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엄마, 그럼 우리 저녁 먹고 허망각기 놀이 좀 하다가 보러 가자!"
요즘 말이 많이 늘고있는 둘째는 "도망가기"를 "허망각기"라고 발음을 하였다. 이것도 점점 도망가기라는 말에 가까워져서 이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끼리 둘째가 안보는 틈을 타서 다른 방에 몰래 숨는 놀이를 허망각기라고 불렀다.
저녁을 먹고 거실의 무드등을 뺀 나머지 불을 껐다. 둘째의 시선을 엄마가 돌리는 사이 허망각기 놀이가 시작되었다. 첫째와 나는 우리를 찾는 둘째의 눈을 피해 옷방에 숨었다가 냉장고 뒤에도 숨었다가 커튼뒤에도 숨었다. 에어컨이 신나게 돌아가고 있어서 다행히 땀이 나진 않았다. 바깥온도는 깜깜한 저녁이 되어도 25도가 넘었다.
"자, 이제 그만 놀자! 아빤 자야 돼."
아이들이 엄마와 유성우를 보든말든 관심 없는 아빠는 아이들과 1시간을 놀아주다가 내일도 있을 업무를 위해 먼저 잠을 청했다.
부스럭 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 3시였다. 깬 김에 화장실에 갔다가 나오니 에어컨이 꺼져있고 거실 통창이 열려있었다. 통창과 마주 보는 출입문도 열려있었다.
'왜 문을 열어뒀지?"
컴컴한 밖에 뭐가 있는지 쳐다보며 문으로 다가가니 센서등이 켜졌다.
문밖에는 애들 엄마가 돗자리를 깔고 하늘을 보며 앉아있었다.
건물 옥상에 위치한 우리 집은 텃밭과 집사이에 마당이 있는데 거기에 돗자리를 깐 것이었다.
"뭐 하세요?"
"별똥별 떨어지나 보고 있지요!"
"어제 보고 잔 것 아니에요?"
"신랑 자고 나서 피곤했는지 애들도 곧 잤어요. 나도 10시 되어서 자버렸고요."
"지금 하늘을 보는 건 너무 늦은 거 아니에요?"
"그 시간에 많이 떨어진다는 말이지 유성이 꼭 그 시간에만 떨어지는 건 아니에요."
내 질문에 대답하면서 아내는 돗자리에 누웠다. 그리곤 도시의 밤하늘에 몇 개 보이지 않는 별을 계속 쳐다보았다.
'새벽에는 밖에 있을만하네.'
밤공기가 많이 선선해져서 밖에 나와 돗자리 위에서 누워있을 만했다. 그렇게 나도 아내 곁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는데 방 안에서 누가 나오는 소리가 났다. 첫째였다.
"일어났어? 여기 나와봐 별똥별 떨어지나 같이 보자."
아내가 아이에게 말을 건네자 실눈을 뜨고 눈을 비비던 아이가 엄마 옆에 누웠다.
"엄마, 유성우 봤어? 어제 11시 반에 왜 나 안 깨웠어?"
"엄마도 잤어 그때"
"왜 잤어, 내가 깨워달라고 했잖아."
잠이 덜 깨서 투정을 부리는 첫째를 아내가 살살 달랬다. 투정이 끝나고 완전히 잠이 깬 첫째도 우리 부부의 사이에 누워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때 내가 보던 하늘의 끄트머리에서 흰빛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직선을 그으며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우와!"
우리 셋은 동시에 작은 탄성을 질렀다.
"봤어?"
"어 아빠, 내가 보고 있는 곳으로 별똥별이 지나가더라."
유성을 볼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가 보니까 짜릿했다.
'밤에 별똥별 모습을 언제 보았더라?'
내가 첫째 만할 때쯤 보았던가? 아니면 TV에서 본 것을 봤다고 착각하는 건가? 어른이 되어 처음 경험하는 별똥별 관측이었다.
그렇게 30분을 누워 몇 개의 별이 더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으니 둘째도 잠에서 깨어 소리가 나는 쪽으로 자박자박 걸어왔다.
"아기 잘 잤어?"
아기라기엔 벌써 30개월이 넘은 둘째지만 우리 집에서는 아직 주된 호칭이 아기였다.
"아~빠~, 같이 가자. 코자자!"
밖에 누워있는 우리를 보고 같이 가자고 하는 둘째를 안아서 옆에 뉘었다.
"아빠랑 엄마랑 형아랑 같이 여기서 별똥별 보자!"
우리 네 식구는 나란히 누워서 또 30분을 더 밤하늘과 간간히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았다.
매년 7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지구를 찾아온다는 페르세우스 유성우. 페르세우스 자리 방향에서 방사되어 나오는 듯 보여서 페르세우스 유성우라 지칭하는 이번 유성을 제시간에 챙겨 관측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덕에 온 식구가 중간에 일어나 새벽 별똥별을 같이 볼 수 있었다.
선선한 바람과 맑은 하늘, 함께 하는 가족, 같이 놀이처럼 찾는 별들
화려한 유성우를 보지 못해도, 너무 빨리 떨어지는 별똥별이라 보고도 소원하나 빌지 못해도, 우리만의 한밤의 소풍을 즐겼다. 행운이 모두 사라진 것 같아도 다른 행운을 발견한다면 인생은 의미 있는 것들 투성이었다.